레지오ㅣ성모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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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본 다시 읽기: 우리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돌봄과 위로의 손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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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본 다시 읽기] 우리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돌봄과 위로의 손길
레지오 마리애 공인 교본 제5장의 4번(41쪽)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내용이 나온다. 그것은 우리의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역할에 관한 묘사이다. “우리가 참으로 성모님의 자녀라면 이에 맞갖은 행동을 해야 하며, 어린이들처럼 어머니께 온전히 의탁해야 한다. 성모님이 우리를 먹여 주시고, 이끌어주시고, 가르쳐 주시며, 병을 고쳐 주시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위로하여 주시고, 의심이 들 때 깨우쳐 주시고, 방황할 때 붙들어 주시기를 바라야 한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며, 동시에 교회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로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들을 언제나 돌보시고 이끄신다. 마리아께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시는 것은, “성모님은 인류가 영신적으로 태어나는 일에 동의하며 그 고통에 동참하심으로써 가장 완벽한 의미의 우리들의 어머니가 되셨기”(41쪽) 때문이다.
이처럼 자녀인 우리를 인도하시는 거룩한 어머니, 그 통교의 손길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자녀인 우리와 어머니 사이에 이루어지는 통교의 손길이 없다면 우리는 깊은 외로움을 느끼며 좌절하게 될 것이다. 특히 성모 마리아의 손길에는 그 성심(聖心)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와 나약한 인간의 가장 깊은 마음을 건드리는 따뜻함과 호소력이 있다. 사실, 어머니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는 명시적인 언어적 통교 이전에 침묵과 몸짓의 통교가 먼저 존재하기 마련이다.
세계적인 불후의 명곡으로 기억되는 비틀즈(The Beatles)의 노래(Let It Be) 가사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내가 시련의 순간에 처해 있을 때, 어머니 마리아께서 내게 다가오시며 지혜의 말씀을 해주신다. 모든 걸 순리대로 그냥 놔두라고. 또한 내가 어둠의 시간 속에 있을 때, 어머니 마리아께서 내 앞에 똑바로 서 계시며 지혜의 말씀을 해주신다. 모든 걸 순리대로 그냥 놔두라고.”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And in my hours of darkness, she is standing in front of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이처럼 곤경과 어려움 속의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머니의 손길, 그 공감과 돌봄의 손길을 우리는 얼마나 간절히 구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 모두의 어머니, 자비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손길은 바로 이처럼 “구름이 가득한 밤에”(When the night is cloudy) 깊은 시련과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진정한 위로의 손길이다. 특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the broken hearted people living in the world)에게 성모 마리아께서는 자비로운 위로와 치유의 손길로써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신다. 그래서 깊은 밤 어둠 속의 시련에 처하더라도, “아직도 나를 밝게 비추는 불빛이 있음”(There is still a light that shines on me)을 우리는 굳게 믿는 것이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시련 속에 아파하며 이러한 돌봄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가?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깊은 시련과 고통을 체험하게 된다. 큰 고통을 마주한 사람들은 마치 함정에 빠진 듯 무력감에 빠지고, 자신의 위기 상황으로부터 도저히 헤쳐나올 수 없다고 느끼며 좌절한다.
많은 경우, 고통은 상실 체험과 관련된다. 사별의 아픔으로 인한 정신적 상실이나 인간관계 차원의 사회적 상실일 수 있고, 혹은 경제적 차원의 상실일 수도 있다. 나아가, 불의의 사고로 인해 혹은 질병으로 인한 수술의 결과로 겪게 되는 자기 신체의 한 측면에 대한 물리적, 생물학적 상실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극적인 상실 체험을 하는 사람은 마치 모든 게 부수어져 산산조각 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어, 암을 선고받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를 겪게 되면, 사람들은 자기 삶의 운명에 대한 비탄과 탄식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이처럼 고통은 심각한 정서적 위기를 초래한다.
고통은 대부분 ‘왜(why)?’라는 질문과 연관되어 다가온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 매우 부당하게 발생한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거리를 지나가는 저 수많은 사람 중에서 왜 하필이면 내게만 이런 불행이 닥쳐오는가? 온갖 악을 저지르는 자들도 별 탈 없이 잘 살아가는 것만 같은데, 왜 하필이면 나만 비참하게 죽어가야 하는가?
인간의 고통은 단순히 이해되거나 합리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실존적으로’ 견디어내야만 하는 것이 바로 고통이다. 고통이 제기하는 수수께끼와 난해함에 답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뇌해 왔는가? 고통과 악은 이성적으로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현실에 대해서 단지 합리적이고 지적인 해석의 틀만을 지녔던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심각한 정서적, 실존적 압박감에 시달릴 수 있으며, 자신이 갖고 있던 삶과 세상에 대한 전망이 송두리째 무너짐을 느낄 것이다. 인간은 고통에 마주하여 자신이 살아온 인생 여정을 되돌아보게 되고, 그 삶의 목적에 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만일 거기에서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이는 우리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우울감이나 이탈 현상으로 이끌게 된다. 특히, 심각한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죽음의 위협을 겪는 사람은 무의미함과 무가치함, 또한 외로움이나 공허함 등을 느끼며 자신의 영적인 아픔과 고통을 드러낸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의 위협을 겪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체험하는 고통과 불확실성의 의미를 발견해 나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실존적 고통 속에 정신적으로 방황하며 헤매고 있다.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어머니의 손길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사람들을 향해서 우리는 성모 마리아처럼, 성모 마리아와 함께 가까이 다가가야 할 것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내미는 우리 레지오 단원들의 따스한 손길 안에서 사람들은 잊어버린 어머니의 손길, 그 자비의 손길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수난의 여정을 가장 가까이서 함께했던 성모 마리아의 삶,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조각상 ‘피에타’가 묘사하듯이 마침내 십자가에서 내려진 외아들의 주검을 안고 비탄에 빠진 마리아의 깊은 고통은 우리 모두를 시련 속에서도 영적 성장으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모범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심연의 아픔과 시련을 몸소 겪으셨으며, 마침내 인류 구원의 아름답고 위대한 전망 안에서 그것을 온몸으로 수락해 살아내고 봉헌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고통 속의 우리에게 아름다운 영적 위로와 희망을 선사한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5월호, 박준양 세례자 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교수, 전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영적 지도자)] 0 5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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