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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한국의 주교좌 성당: 1956, 1998, 2013 세 번의 전환 -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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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7-16 ㅣ No.869

한국의 주교좌 성당 (5) 1956, 1998, 2013 세 번의 전환 :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동 성당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동 성당(주보 : 예수 성심)은 골롬반회가 건축한 석조 성당의 대표작이다. 정면 중앙 종탑이 강조된, 폭 11m, 길이 43m로 높이나 폭에 비해 종축이 매우 긴 더블 트랜셉트(double transept) 평면은 영국 고딕의 전통인데 골롬반회가 한국 선교 중에 채택했다. 외벽은 화강석 조적으로 지금도 흠잡을 데 없이 튼튼한 석재는 멀리 홍천 발산리 강가에서 실어 왔다. 1950년대 초 ‘우리나라 양식 성당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된다.1)

 

1) 1956년 : 1940년 제2대 춘천 지목구장이 된 퀸란(T. Quinlan, 具仁蘭) 신부가 성전 건립을 추진했다.2) 1949년 4월 5월 기공식을 하고, 화강석으로 외벽을 쌓고, 동판 지붕을 덮었다. 내부 공사만 남았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1951년 5월 유엔군의 공습으로 파손되었고, 1951년 13대 주임으로 부임한 코머포드(T. Comerford, 孔) 신부가 복구 작업에 착수해 1953년에 이르러는 대부분 완료할 수 있었다. 성전 봉헌식은 1956년 6월 8일 거행되었다.

 

2) 1998년 : 춘천교구 최초로 한국인 교구장이 된 장익(張益, 십자가의 요한, 1933~2020) 주교는 ‘교구 설정 60주년’을 준비하면서 교구의 상징인 죽림동 성당의 모습을 일신하기 위해 1998년 4월 착공, 9월 14일 중창(重創)식을 거행했다. 이때 가톨릭 미술가회 중진 작가들이 대거 참여해 ‘한국 가톨릭 미술의 보고(寶庫)’로 거듭났다. 그리고 2003년 6월 25일 “우리나라 1950년대 석조 성당 건축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인정되어 등록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되었다.

 

3) 2013년 : ‘성당 축성 60주년’을 앞둔 춘천교구는 ‘죽림동 성당 성역화 사업’을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를 맡은 건축가 임근배(야고보)는 성당 앞 공간의 복잡한 현황 요소들과 넓은 앞마당의 필요성을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으로 인공대지를 덮어 입체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존 도로의 구배를 완만하게 낮추고 성당 앞마당의 레벨로 약사고개길까지에 이르는 널찍한 앞마당을 만들었다. 그 하부는 지하 주차장을 계획해 경사로, 엘리베이터, 계단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마당에 이를 수 있게 했다. 성당에 들어가기 전 또는 성당에서 나와서 맞게 되는 폭 30m, 길이 60m의 바닥 면은 전정(2,119.5㎡), 중정(1,179.06㎡), 회랑(301.76㎡)으로 조성해 신자들이 진입 과정부터 경건한 마음으로 묵상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주변을 따라 회랑을 둘렀다. 지붕은 있고 벽은 없는 회랑은 영역을 구획해 주고 포근함도 주지만 시야는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회랑의 주입구에는 세 개의 아치로 된 대문을 가운데 두고, 양 모서리에는 탑을 세워 죽림동 성당의 외관적 표식들 즉, 출입구 아치 및 종탑 지붕의 모티브를 회랑 대문과 탑에 부여했다. 먼발치에서도 ‘주교좌 죽림동’임을 직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2013년 6월 14일 기공식을 하고 5개월여 만인 12월 1일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2017년 9월 한국전쟁 순교자들이 묻혀 있는 죽림동 성당 순교자 묘역을 성지로 선포하였다.

 

“1956년 봉헌, 1998년 대규모 보수, 2013년 성역화 사업”을 거쳐 현재에 이른 죽림동 성당. 한 번은 내적으로 한 번은 외연에서, 교구 차원의 프로젝트가 거듭 실행됐음에도 원형(prototype)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교회의 대규모 재개발사업들과 비교해 봄직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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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방과 격동기(1945~1962년)에 지어진 한국 성당 건축은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주도된 일제 강점기보다 훨씬 단순하고 일률적이었다. 구조 체계와 관계없이 외벽을 화강석으로 치장하거나 성곽의 형태적 요소를 채용했다. 특히 종탑에 집중해 정면에서 양식적 형태와 상세를 고수했다. 대표적으로 춘천 죽림동 성당(1949-1953년), 의정부 성당(1953년), 용산 성당(1954년), 원주 원동 성당(1954년), 강릉 임당동 성당(1955년), 돈암동 성당(1955년), 횡성 성당(1956년), 김포성당(1957년), 안동 목성동 성당(1957년), 제기동 성당(1957년), 홍천 성당(1957년) 등이 있다(김정신, 『한국 가톨릭 성당 건축사』, 1994 참조).

 

2) 중국인 가(哥) 요셉이 설계와 시공을 맡았다고 전해진다. 골롬반회가 일찍이 중국에서 포교했기 때문에 성당 건축 경험이 많은 중국인 신자가 영입된 것으로 보인다. 본지 3월호에 소개된 광주 북동(北洞) 성당(1938년 준공) 퀸란 신부가 광주 지역에서 사목할 때 중국인 가 요셉과 보여준 파트너십이다.

 

[교회와 역사, 2022년 5월호, 이오주은 미카엘라(한국교회사연구소 미디어콘텐츠사업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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