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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칼럼: 노매드랜드 - 내 쉴 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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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6-28 ㅣ No.1260

[영화 칼럼] 노매드랜드 - 2020년 감독 클로이 자오


내 쉴 곳은 어디인가?

 

 

집이란 무엇일까요? 독일 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차흐 대수도원의 사제 자카리아스 하이에스는 『내 안의 휴식처』(바오로딸 펴냄)에서 “‘집’이라는 단어는 매우 정서적”이라고 했습니다. 집은 누구에게나 가족, 추억, 감정, 냄새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가 말하는 집은 하우스(house)가 아닌 홈(home)입니다. 크기와 위치와 형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몸과 영혼이 편히 쉬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곳. 그 정서와 역할이 없다면 아무리 크고 화려한 집도 단순한 구조물에 불과할 것입니다.

 

캠핑카에서 생활하는 <노매드랜드>의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먼드 분)은 자신은 ‘홈리스’가 아닌 ‘하우스리스’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가족과의 추억과 가족을 향한 그리운 마음을 심어놓은 좁고 낡은 밴이 ‘내 집’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자기 집에서 같이 살자는 이웃과 여동생, 친구의 제안을 모두 거절합니다. 차라리 새 차를 사는 게 낫다는 조언을 무시하고 거금을 주고 고장 난 밴을 고칩니다.

 

올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노매드랜드>는 집을 잃거나 버리고, 대신 캠핑카를 타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펀과 그의 친구가 된 데이브(데이비드 스트라탄 분)를 제외하고는 모두 실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영화는 그들의 삶과 상처, 꿈과 위안에 대한 고백과 석고 공장이 폐쇄되면서 우편번호까지 없어진 마을을 떠나 유랑 생활을 시작한 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죽어라 일하다 벌판으로 쫓겨난 가축”에 비유합니다. 그들에게 지난 삶은 “돈의 멍에에 속박되어 인생을 망친 시간들”입니다. 황량한 벌판과 길 위에서의 유랑 생활은 그것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인생의 발견입니다. 가족의 죽음, 질병, 가난 등 저마다의 사연으로 혼자가 된 그들은 광활한 자연과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교감에서 치유와 안식을 찾습니다. 남편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상처와 기억으로 아파하는 펀 역시 그들과 동화하면서 성찰과 치유와 관조의 길을 찾게 되지요.

 

그 선택이 결코 낭만적이거나 여유롭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가축을 몰고 푸르고 광활한 초원을 떠돌아다니던 저 옛날의 유목민이 아닙니다. 서부 개척 시대에 정착의 꿈을 안고 거친 들판으로 나아가던 카우보이도 아닙니다. 자연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으며, 늘 불안한 노동과 고독한 시간 앞에 놓여있는 21세기 유목민의 삶은 불편하고 불안하며, 고단하고 애잔합니다.

 

펀과 달리 우리는 그들과 쉽게 동화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거주와 노동과 생활은 한곳에 머물러야 ‘안정적’이라는 관념, 영화가 의식적으로 외면한 그들을 길로 내몰아버린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선택이라고 하지만, 거기에는 2008년 금융 위기와 실업, 주택 투자 버블의 붕괴, 빈부격차가 스며들어 있으니까요.

 

이런 현실에서, ‘영끌’이라도 해서 내 집을 가져야 더 가난해지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에서 <노매드랜드>는 집착보다는 버림과 비움과 지움으로 자연과 자유와 내 삶으로 회귀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진정 ‘내 쉴 곳(집)은 내 마음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공허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2021년 6월 27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서울주보 5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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