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9일 (화)
(백)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의 샘: 성모님과 함께 걷는 마음의 순례 (9) 영적 투쟁 - 마음을 지키는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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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9-27 ㅣ No.2313

[영성의 샘] 성모님과 함께 걷는 마음의 순례 (9) 영적 투쟁 : 마음을 지키는 싸움

 

 

피정이나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면 한동안은 모든 것이 새롭게 보입니다.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며 받은 은총이 오래도록 이어질 것만 같습니다. 미워하던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고, 이제는 매일 기도하며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도 생깁니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오면 마음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사소한 말에도 상처받고, 기도하려고 앉았다가 어느새 휴대전화를 먼저 들여다봅니다. 다른 사람의 기쁜 소식을 함께 기뻐하기보다 자신도 모르게 비교하고, 해야 할 일을 미루면서 마음은 더욱 무거워집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때 받았던 은총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이런 싸움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싸움의 장소는 세상이 아니라 내 마음 안이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도 같은 체험을 고백합니다. 나는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로마 7,19) 바오로는 선이 무엇인지 몰라서 악을 행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느님의 법을 사랑했지만, 자신의 안에서 그것을 거스르는 또 다른 힘이 움직이고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싶으면서도 뜻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초기 이집트 수도자들은 세상의 유혹을 피하고자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세상의 유혹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동방의 수도 전통을 서방 교회에 전해 준 요한 카시아누스(약 360~435년)는 이러한 수도승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마음을 흔드는 여덟 가지 주요 악덕을 정리하였습니다. 곧 탐식, 음욕, 탐욕, 분노, 슬픔, 게으름(아케디아, Acedia), 허영심, 교만함입니다. 그는 이 악덕들이 마음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또 다른 죄를 낳는다고 보았습니다. 이 악덕들은 인간의 내면에 스며들어 마음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바이러스와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세 가지 악덕인 탐식, 음욕, 탐욕은 육체와 물질을 직접 겨냥합니다. 음식과 생존, 소비와 만족을 추구하는 방식에서 시작됩니다. 다음 세 악덕인 분노, 슬픔, 게으름은 정신적이고 관계적인 삶을 공격합니다. 타인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삶과의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두 악덕은 영적으로 어느 정도 성장한 사람을 노립니다. 허영심은 자신의 덕행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며, 교만함은 자신의 성취를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 힘의 결과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이 여덟 가지 악덕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탐식을 다스리지 못하면 육체의 욕망을 절제하기 어렵고,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면 소유욕이 커집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분노가 생기고, 분노가 오래 지속되면 슬픔과 낙담에 빠지며, 마침내 게으름, 곧 영적 권태와 무기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카시아누스는 게으름을 이기려면 슬픔을, 슬픔을 이기려면 분노를, 분노를 이기려면 탐욕을, 탐욕을 이기려면 음욕을, 음욕을 이기려면 탐식을 먼저 다스려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카시아누스는 이렇게 단계적으로 영적 성장을 이룬 사람도 다시 처음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계합니다. 특히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교만을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죄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이제 높은 경지에 이르렀어”라는 교만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성장은 자신의 노력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진 것인데도,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이루었다고 여기게 되면 다시 가장 낮은 단계의 유혹으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전투는 하나의 악덕을 이겼다고 끝나는 싸움이 아니라, 평생 하느님을 향해 성장해 가는 여정입니다.*

 

 

성모님은 영적 전투에서 가장 확실한 길을 보여 주시는 어머니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힘만으로는 결코 마음을 온전히 다스릴 수 없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 주십니다.

 

탐욕이 더 많이 가지라고 마음에 속삭일 때는 가난과 단순함을 선택하셨고, 허영이 사람들의 시선을 바라보게 할 때는 나자렛의 숨은 삶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교만이 자신의 뜻을 앞세우라고 유혹할 때는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고 고백하셨습니다. 또한 게으름이 머물러 있으라고 속삭일 때는 엘리사벳을 찾아 산악 지방으로 서둘러 길을 떠나셨고, 십자가 아래에서는 끝까지 아드님 곁을 지키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유혹이 없는 삶을 사신 분이 아니라, 모든 순간 하느님을 선택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영적 전투에서 가장 확실한 길을 보여 주시는 어머니이십니다.

 

우리의 노력만으로 완덕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자유로운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노력은 언제나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다가오신 은총에 응답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내적 갈등 앞에서 탄식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로마 7,24) 그러나 그의 고백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로마 7,25)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희망입니다. 영적 전투의 승리는 의지가 강해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그리스도께 돌아가는 데 있습니다.

 

성모님과 함께 걷는 마음의 순례는 유혹이 전혀 없는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움직임을 분별하고, 그때마다 다시 하느님을 선택하는 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 대신 싸워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도록 곁에서 손을 잡아 주시는 어머니이십니다. 오늘도 우리 마음에는 더 많이 가지라고, 더 인정받으라고, 미워해도 된다고, 이제는 포기하라고 속삭이는 여러 목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그 순간 성모님의 한마디를 다시 마음에 새겨 봅시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짧은 고백 안에서 탐욕은 나눔으로, 분노는 온유로, 게으름은 충실함으로, 교만은 겸손으로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영적 전투는 평생 계속되지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을 받아들이며 걸어가는 사람에게 오늘의 작은 선택 하나하나는 이미 하느님 나라를 향한 승리의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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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미켈리나 테나체, 「그리스도인이 되다」, 전인걸 옮김,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026, 245-288쪽.

 

[성모님의 군단, 2026년 9월호, 전인걸 요한 보스코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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