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8일 (월)
(녹)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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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의 샘: 고통과 시련에 우리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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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9-27 ㅣ No.2312

[영성의 샘] 고통과 시련에 우리의 모습은?

 

 

신앙생활에 기쁨과 행복만이 늘 함께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하며 자기에게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 것은 웃자고만 함이 아니다.”

 

그분의 뜻이 무조건 기쁨에 있을까요? 물론 하느님 나라에서는 참 기쁨 안에 머물 수 있겠지만, 이 세상이 무조건 기쁨 안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삶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그리고 그분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렵고 힘들어도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한때 개그 프로그램을 즐겨 봤는데 어느 순간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다른 방송은 전혀 보지 않고 유일하게 보던 방송인데, 그것만 보다 보니 시시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신부에게 “요즘 이 프로그램이 재미없어졌어.”라고 말하자, 그 신부는 “그 방송만 봐서 그래. 아마 다른 방송도 봤었더라면 계속 재미있게 보고 있을걸?”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기쁨만 있다면 절대 신나게 살 수 없습니다. 기쁨도 필요하지만, 고통의 시간도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뜻과 그분의 의미를 찾는 삶입니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삶을 종종 묵상해 봅니다. 성모님 삶에 기쁨과 영광만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성전에서 시메온의 예언을 들었을 때부터 이집트로의 피난,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아래에서 아들의 참혹한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순간까지, 그 고통은 평범한 인간이 감당하기 벅찬 무게였습니다. 이 고통을 성모님께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이보다 훨씬 작은 고통에도 소란스러운 원망이나 분노를 드러내던 우리의 모습과 반대되는 모습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모든 고난의 순간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온전히 견뎌내셨습니다. 세상의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켜내는 침묵을 유지하십니다. 예수님 잉태 소식을 가브리엘 천사에게 듣고서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말씀하지요. 이 말씀을 변함없이 지키는, 강인하고 깊은 신앙을 보여 주십니다.

 

성모님의 고통이 위대한 이유는 끔찍한 슬픔을 피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아래에 서 계셨던 성모님의 모습은,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대신 짊어질 수 없는 무력함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그 곁을 지키며 함께 아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모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헌신과 끝없는 인내로 아들의 곁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을 통과하셨습니다. 그 깊은 어둠과 상실의 밤을 온전히 겪어냈기에, 부활이라는 고요하고 거룩한 새벽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는 가운데 성장해

 

고통과 시련이 없는 삶만을 바라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는 가운데 성장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의 라리사 둘리는 유방암 환자 122명을 대상으로 연구 조사를 했습니다. 먼저 자기의 암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민, 불안을 느끼는지를 묻고, 동시에 인생에서 가정, 학업, 일, 금전, 연애 등으로 얼마나 스트레스받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결과, 인생의 고비에서 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일수록 내성이 생겨서 유방암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훨씬 더 치료를 잘 받았고,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고통과 시련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피하는 것을 굳이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에 역시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더 성장시키기 위해, 그래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그러한 고통과 시련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잉태 순간부터 예수님의 죽음까지 엄청난 고통을 당신의 가슴으로 안으셔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인내하실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뜻을 계속 찾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을 사랑 그 자체이신 분이라고 많은 성인·성녀들이 말씀하셨습니다. 진짜 사랑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고, 상대의 선택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입장을 이해하시려고 했고, 그분의 선택을 인정하셨기에 진짜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그 결과, 모든 고통과 시련 끝에 영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의 삶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면서, 성모님과 같은 고통과 시련을 이겨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내가 어려운 순간에도 과연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요? 아픔의 순간에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칠 수 있을까요? 성모님처럼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 아버지께 찬양과 기쁨의 찬미를 드릴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성모님의 군단, 2026년 9월호, 조명연 마태오 신부(인천교구 성김대건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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