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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문학과 그리스도교 영성13: 틴턴 수도원(Tintern Abbey) - 자연을 통한 인간 조건의 초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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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그리스도교 영성] (13) <틴턴 수도원(Tintern Abbey)> : 자연을 통한 인간 조건의 초월 허물어진 인간의 한계 너머…자연의 품에서 공감하고 성장한다
도널드 위니컷의 대상관계 이론에 따르면, 유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을 돌보는 대상과의 관계 경험을 바탕으로 관계방식을 내면화한다. 살아가면서 대상은 바뀌지만, 대상과의 관계를 통하여 삶의 의미를 형성한다. 즉,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내가 아닌 다른 어떤 대상(사람, 돈, 취미생활, 학문, 종교, 자연, 직업 등)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내적 충만함을 갈망하는 존재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불안한 존재로 인식한다.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마음이 안달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을 향하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이 신이라는 대상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결코 완벽한 내적 평화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18세기 말, 콜리지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 시대를 열었던 워즈워스 시인은 <틴턴 애비>(Tintern Abbey, 틴턴 수도원)라는 시에서 내적 갈망의 여정을 자연과의 관계를 통하여 매우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묘사하고 있다. 시인에게 자연은 단지 아름다운 대상일 뿐만 아니라, 내면의 온전한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다.
16세기에 영국국교회를 확립한 헨리 8세는 수많은 가톨릭 수도원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폐쇄하는 ‘수도원 해체’를 단행하였다. 그 이후 오랜 시간 동안 폐허로 남아있던 수도원들은 18세기 들어서면서 여행지나 예술가들의 영감으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웨일스 남동쪽에 있는 틴턴 마을의 시토회 수도원도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여전히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워즈워스는 5년 만에 다시 찾은 틴턴에서 자연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자연의 모습을 ‘다시 바라본다.’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변화된 현재의 자신을 확인하고, 변화될 타인의 미래를 희망한다. 「틴턴 애비」는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시인은 ‘청춘기’에 감각적 대상을 갈망하였다. 오 년 전 “처음으로, 이 작은 산들에 와서,” 그는 한 마리 “노루처럼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그리고 커다란 바위, 산과 속이 깊이 팬 음침한 나무들의 색과 모양들은 젊은 시인에게 일종의 욕구였다. 굶주린 사람이 음식을 탐하듯, 시인은 그렇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꼈다. 자연으로부터 즉각적이고 충동적인 자극을 추구하였다.
워즈워스는 자연이라는 대상과 관계를 맺은 이러한 과거의 모습을 “생각 없는 청춘기”였다고 고백한다. 자연 안에서 경험한 느낌은 성찰이 아니라, 감각적인 신체적 차원에 머물게 된다. 평정이나 균형 없이, 마음은 쉽게 동요된다. 시인의 갈망은 자연과의 직접적인 감각적 만남에 의존하기에, 자연과 떨어지게 되면 내적 충만함을 유지할 힘이 없다. 그래서 비록 자연을 통하여 기쁨을 맛보지만, 그 기쁨은 “서글픈 기쁨”이며, 환희도 “어질어질하던 환희”였다.
자연 안에서 무언가 강한 느낌을 체험하지만, 아직 그러한 감정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내면화에 이르지 못했다. 나이를 먹어간다고 해서 저절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섯 번의 여름과 그 길이만큼 다섯 번의 긴 겨울”을 보내면서, 시인은 젊은 시절의 서글픈 기쁨에 대한 상실을 겪는다. 과거의 “그 시절은 지나갔다.”
“생각 없던” 젊은 날의 시인은 여러 해가 지나면서, 세상의 열병과 약간은 슬프고 당혹스러운 수많은 인지를 맛보게 된다. 육체적 감각에 묻혀 있던 내면의 마음은 고통, 죽음, 그리고 인간 삶의 복잡성과 대면하면서 깨어나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를 더욱 깊게 만들고 과거의 갈망과 서글픈 기쁨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든다.
그래서 이제는 “억제하고 억누르는 / 넉넉한 힘을 간직한 채, 거칠거나 귀에 거슬리지 않는 / 인간의 고요하고도 슬픈 음악을 / 종종 들으면서, 자연을 관조하는 법을 / 배웠다”라고 노래한다. 이 음악은 물리적 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한계, 삶의 복잡성에 대한 고요한 자각을 의미한다. 자연은 인간 조건의 메아리로서, 삶의 버거움으로부터 도피하여 즉각적인 감각적 위로를 얻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그 버거움을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공감 능력과 인간 조건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얻게 된 시인의 깨달음은 영적인 차원에까지 이른다. 그는 “고양된 사고의 기쁨으로” 자신의 마음을 깨우는 어떤 존재를 느낀다. 눈으로 볼 수 있거나 의인화된 대상이 아니라, 내재적 신성의 한 형태이다. 이 존재의 형태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언어로 포착될 수 없는 초월적 존재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어떤 존재는 인간과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는 햇살과, 둥근 대양과, 생생한 공기와, 푸른 하늘과, 인간의 마음속에서” 살고 있다. 더욱이 이 “어떤 존재”를 인식하였을 때 느끼는 기쁨은 “숭고한 감각, 훨씬 더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어떤 것”이다. 따라서 이 존재는 인간의 마음과 자연과 다양한 관계들 안에 머물고 있다.
워즈워스가 자연 안에서 경험하는 신적 체험은 자연 신비주의로 분류된다. 어떤 비평가들은 이것을 범신론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결코 자연과 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신은 자연과 세상과 인간 삶에 현존하고 있다. 절대적 존재로서 세상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일상 안에 현존의 형태로 스며들어 있다.
여러 사상가는 자연을 제2의 성경으로 이해한다. 하느님은 두 권의 책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신다. 성경과 자연.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땅과 바다와 심연과 산들바람에게 “저의 하느님”이냐고 묻는다. 그들은 모두, “우리는 너의 하느님이 아니다”, “그분이 우리를 내셨다!”, “우리 위에서 찾아라”라고 답한다. 하느님은 당신의 피조물에 깃들어 계신다.
5년 전에 바라보았던 자연과 현재 바라보고 있는 자연은 같은 자연이다. 변화된 것은 시인 자신이다. 과거엔 감각적 만족을 갈망하였다면, 현재는 “인간의 슬픈 음악”을 들으며 관조와 성찰의 태도로 자연을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의 자연은 단순한 감각적 풍경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절대자가 머무는 거룩한 곳이다. 그리고 시인은 마침내 자연이라는 대상을 통하여, 그리고 더욱더 성숙한 관계 형성을 통하여, 삶의 충만함을 살아간다.
동시에 시인에게 기억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과거의 경험을 보존하고 다시 활성화한다. 그는 “외로운 방안이나, 읍과 도시의 소음 속에서” 자연에 대한 기억에 의지했다. 지칠 때마다 자연에 대한 경험의 기억을 “핏속에서 느끼고, 가슴으로 느낌”으로써, 평화를 회복하였다. 바로 기억을 통하여 현재의 장소와 시간을 초월하여 항상 자연과 일치를 이룬다.
흥미롭게도 워즈워스는 자신의 누이 도로시와의 관계를 통하여 현재의 깨달음을 미래로 확장한다. 그녀의 목소리와 열광적인 눈이 발하는 빛 속에서 자신이 지녔던 감각적 열정과 서글픈 기쁨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녀 또한 지금 자신이 도달한 깨달음에 이르기를 바란다.
“이 야생의 황홀한 경험들이 무르익어 / 차분한 기쁨이 될 때, 너의 마음이 / 사랑스런 모든 형상들을 위한 저택이 될 때…. 오! 그때가 되면, / 고독이나, 공포나, 고통이니, 슬픔이 / 너의 일부가 되더라도, 네가 다정한 기쁨의 / 온갖 치유하는 생각들과 더불어 / 나와, 나의 이 충고들을 떠올리게 되리라!”
시인은 자신의 경험에만 머무르지 않고, 타인에 대한 공감과 성장으로 나아간다.
[가톨릭신문, 2026년 6월 28일, 김치헌 바오로 신부(예수회 · 서강대학교 영문학부 교수)] 0 7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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