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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52: 안중근 의사 복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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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 (52) 안중근 의사 복권 84년 만의 의거 현양… 민족사 아픔 보듬지 못한 과오 성찰
“일제 수탈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암살해 일제 치하의 제도교회에 의해 단죄됐던 안중근(토마스) 의사가 84년 만에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공개 사과로 의거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한국 가톨릭교회 역사상 첫 공식미사로 김수환 추기경과 사제단이 공동 집전하여 8월 21일 오후 6시 서울 혜화동 가톨릭교리신학원 성당에서 봉헌된 안중근 의사 추모미사는, 안 의사 의거의 정당성을 기원하는 300여 명의 신자들과 학계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안 의사의 의거를 현양했다.
이날 안 의사 추모미사를 주례한 김 추기경은 미사 강론에서 ‘안 의사의 의거는 가톨릭 신앙과 상치된 것이 아니며 그 안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인정하고, ‘신앙심과 조국애는 분리될 수 없으며 일제의 무력 침략 앞에 민족의 존엄과 국권을 지키기 위해 행한 모든 행위는 정당방위와 의거로 보아야 한다’고 엄숙히 선언했다.”(가톨릭신문 1993년 8월 29일자 1면)
안중근 의사 의거, 84년 만에 정당성 인정
일제 강점기, 식민 지배하에서 독립에 대한 민족적 열망과 신앙에 바탕을 둔 의거를 행했던 안중근(1879~1910) 의사에 대한 공식적인 복권이 1993년 처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8월 21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봉헌된 안중근 의사 추모미사에서 안 의사에 대한 교회의 단죄를 두고 84년 만에 공개적으로 사과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이토 히로부미 암살 후 뮈텔 주교에 의해 살인죄로 단죄받았던 안 의사와 관련해, “가톨릭교회는 민족과 조국을 불의의 폭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전쟁 중에 행한 살인 행위는 범죄로 단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따라서 안 의사의 의거는 정당한 행위였으며, 우리는 그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날 미사는 제도교회를 대표하는 현직 교구장이 공식 집전한 첫 번째 추모미사였습니다. 일제 치하의 한국교회가 범한 과오를 사과하고 바로잡은 이 사건은 한국 현대교회사의 일대 전환점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이날 미사에 앞서 한국 가톨릭 문화사 연구회는 ‘안중근의 신앙과 민족운동’ 심포지엄을 가톨릭신문사와 한국 가톨릭 문화선양회의 후원으로 개최했습니다. 한국교회사연구 발표회 100회를 기념해 열린 심포지엄은 안 의사의 신앙과 민족운동을 학술적으로 재평가하고, 민족사 앞에 친일 행각의 과오를 범했던 한국교회에 올바른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신앙인 안중근의 의거와 교회의 단죄
신앙인 안중근에게 있어서 조국의 국권 회복은 신앙적 양심과 분리될 수 없는,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도정이었습니다. 그는 조선 천주교회의 존재 양식이 고통받는 민족을 구원하는 실천적 행동과 결부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하느님이 부여한 인류 공동의 평화를 파괴하고 대한의 독립을 짓밟는 일본 제국주의의 폭압을, 신앙인으로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죄악으로 인식했습니다.
따라서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결행된 이토 히로부미 처단은 개인의 사사로운 원한이나 이념적 맹신에서 비롯된 단순 살인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을사늑약과 정미7조약이 황제와 국민의 동의 없이 군사적 위압으로 체결된 원천 무효의 조약임을 직시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의거는 국외에서 조직된 의병 부대인 ‘대한의군’의 일원이자 ‘의병 참모중장’ 자격으로 국권 회복과 동양 평화의 수호를 위해 감행한 전쟁의 일환이자 전술적 작전이었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사법 재판과 신문 과정에서도 자신을 단순 살인범이 아닌 국제법상의 ‘전쟁포로’로 대우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교회는 그를 단죄하고 자동파문의 죄를 범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뮈텔 주교는 안 의사의 거사를 살인 행위로 단죄했고, 그가 살인자로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공적인 참회의 표지를 보여주지 않는 한 가톨릭교회의 자녀로서 어떠한 성사도 받을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당시 원산본당의 브레 신부 역시 독립운동이라는 정치 활동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안 의사에 대한 성사 집전을 거부했습니다. 다만 빌렘 신부는 1910년 3월 초 뤼순 감옥으로 직접 찾아가 안 의사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그의 마지막을 지켰습니다. 빌렘 신부는 이로 인해 성무집행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안 의사에 대한 단죄는 일제강점기 후반기로 갈수록 심화된 천주교회의 조직적 친일 행태와 궤를 같이합니다. 당시 제도 교회는 식민지 통치 질서 안에서 교회의 안녕과 선교의 자유만을 확보하려는 ‘교회보호론’적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웠으나, 이는 실질적으로 일제 군국주의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과 굴종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일제 전시 체제기 경성교구에서는 수많은 친일 부역 행위가 자행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일제 강점 말기의 천주교회는 안 의사의 독립 투쟁을 철저히 외면한 것을 넘어, 식민 정권의 전쟁 수행을 적극적으로 보필하는 가슴 아픈 과오를 범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자기 성찰과 반성
1993년의 안중근 의사 복권은 한국교회 역사에서 획기적인 이정표를 제시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일제하 친일 행위’라는 교회의 뼈아픈 역사를 감추거나 변명하려 하지 않고, 진실 앞에 마주 서서 철저히 반성하고 사죄하는 용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교회가 민족사의 고통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음을 선언한 사건이었으며, 굴절된 교회사적 평가를 정상화함으로써 민족 복음화의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복권으로 시작된 한국교회의 ‘기억의 정화’ 작업은 새로운 천년기를 여는 2000년 대희년을 맞아 민족사 속 교회의 잘못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습니다. 주교회의는 2000년 12월 3일, 200년 한국교회사 안에서 범한 잘못을 고백하는 과거사 반성 문건 「쇄신과 화해」를 발표했습니다. 총 7개 항으로 구성된 과오의 성찰 중 제2항은 일제 식민 지배하에서 정교분리를 빌미로 독립운동에 나선 신자들을 제재한 데 대한 안타까움을 표명하고 용서를 청했습니다.
[가톨릭신문, 2026년 6월 14일, 박영호 기자] 0 2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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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신문 1993년 8월 29일자 1면.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1993년 8월 21일 안중근 의사 의거 84년 만에 의거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김수환 추기경이 안중근 추모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