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6일 (화)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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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교회 사람들: 벽동 김치 가게 최조이 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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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07:31 ㅣ No.2026

[초대교회 사람들] 벽동 김치 가게 최조이 모녀

 

 

신유박해 당시 정광수의 교회가 있던 벽동(지금의 종로구 송현동, 사간동 일대) 인근은 요즘으로 쳐서 술집과 기생집이 즐비한 고급 유흥가였습니다. 이 거리에 장과 김치를 담가 술집에 대던 최조이네 김치 가게가 있었습니다. 신자들이 자주 모이다 보니 음식 장만에 쓸 시간이 아까워 정광수 집 어린 계집종 금이(今伊)가 이 가게에서 대놓고 장과 김치를 사가곤 했습니다.

 

연말에 금이가 주인 마님의 뜻이라며 비싼 면화솜 뭉치를 선물로 내밀자, 최조이는 장과 김치를 답례로 들려 보냈습니다. 이튿날 계집종이 다시 와서 마님이 한번 보자신다는 전갈을 전해옵니다. 이렇게 전교의 첫 단추가 꿰어졌습니다.

 

최조이는 윤운혜 루시아를 찾아와 무심코 “나무아미타불! 솜도 주시고 이렇게 불러주기까지 하시니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질색한 윤운혜가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 지옥 간다며 다급하게 제지했지요. 대신 천국에 가려면 이걸 외우면 된다면서 십계명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최조이와 그녀의 딸 성조이는 천주교 신자로 입교했습니다. 교회는 인근에 든든한 한 거점을 마련하게 되었던 셈이고요.

 

두 사람은 1801년 3월 26일, 여종의 고발로 체포되어 포도청에 끌려갔습니다. 고문이 두려웠던 어린 여종이 술술 불어버린 것입니다. 금이는 최조이가 교리 공부를 해서 이사벨(二四發)이란 세례명을 받았고, 딸 성조이도 마르타(馬達)란 세례명으로 정식 입교하였다고 진술했습니다. 당시에 주문모 신부에게 직접 세례명을 받는 것은 대단한 신심을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나이가 많았던 최조이는 좀체 십계명을 외우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십계명은 단순히 10조목만 외우는 것이 아니어서, 각 조목에 딸린 수십 가지 항목들도 알아야 했기에 공부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세례를 받으려면 최소한 이것만큼은 외워야 했습니다.

 

답답했던 윤운혜는 고기를 먹지 않아야 정신이 맑아져서 외울 수 있을 거라고 훈수를 두었습니다. 딸 성조이는 어머니가 밥상에 오른 고기에 젓가락을 대지 않자 그 이유를 묻고 놀라 다시는 윤운혜의 집에 못 가게 했다고 심문장에서 대답합니다. 그녀는 자신들의 세례 사실조차 완강하게 부인했지요.

 

《사학징의》에 실린 딸 성조이의 판결문에는 “최씨 노파의 진술은 지극히 순박하고 진실되고, 그 딸이 능히 그 어미를 악에 빠지지 못하게 한 것은 죄가 없을 뿐 아니라 또한 지극히 가상하다 하겠다.”라고 나옵니다. 다른 증거물도 없으니 즉각 석방하여 편안히 어미를 봉양케 하라는 당부도 보입니다. 두 모녀는 이튿날인 3월 27일에 바로 석방되었습니다. 순박한 체 어리숙하게 행동했던 모녀의 태도에 포도청의 심문관이 깜빡 속았던 걸까요? 어쩌면 박해 초기라 사건의 과도한 확대를 막으려는 뜻도 있었을 겝니다.

 

하루 만에 신앙을 부정하고 풀려난 모녀는 이후 어찌 되었을까요? 인근의 천주교 조직이 일거에 와해되고 지도자들이 끌려가 처형되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 일 없었던 듯이 김치 가게를 그대로 운영했을까요?

 

[2026년 6월 14일(가해) 연중 제11주일 서울주보 7면,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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