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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가정 안에서의 환대: 부부 갈등 - 부부상담에 실망하는 내담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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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안에서의 환대] 부부 갈등 02 – 부부상담에 실망하는 내담자들
부부상담실을 찾는 부부들을 살펴보면, 대개 한 사람이 먼저 상담을 제안한다. 나머지 한 사람은 흔쾌히 동의하여 함께 오기도 하지만, 마지못해 이끌리듯 상담실 문을 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담을 먼저 제안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대개 비슷한 기대가 자리하고 있다. 전문가의 힘을 빌려 좀처럼 변하지 않는 배우자를 설득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아무리 말해도 달라지지 않던 그 사람이, 상담자의 입을 통해서라면 마침내 변화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다.
반면, 따라온 배우자는 이미 마음속에 방어막을 치고 오는 경우가 많다. 상담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어렴풋이 짐작이 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십중팔구 자신을 향한 불만이나 지적일 것이다. 굳이 장소만 바꿔 그런 말을 들어야 하나 싶으니, 상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다.
그런데 막상 상담이 시작되면, 부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간다. 이 지점에서 많은 부부가 당황한다. 상담자가 자기 편을 들어줄 것이라 믿었던 사람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태도에 실망하거나 서운함을 느낀다. 반대로 비난을 각오하고 왔던 배우자는,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 대화의 흐름에 오히려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내가 만났던 한 부부도 상담 초반에 이런 경험을 했다. 아내는 남편의 욱하는 성격을 반드시 고치고 싶어 했다. 아무리 차분하게 말을 건네도 남편은 이내 화를 낸다며, 상담자가 자신의 입장에 힘을 실어 남편의 문제를 분명히 짚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상담사는 판사가 아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가리는 자리도 아니다. 상담의 관심은 시시비비가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 그래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보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준다. 첫 상담이 끝났을 때 아내는 적잖이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반면 남편은 자신의 이야기를 존중받았다는 느낌에 한층 가벼운 표정으로 상담실을 나섰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첫 상담 이후 발길을 끊는 부부도 많다. 그런데 이 부부는 두 번째 상담에 나란히 나타났다. 더 놀라운 것은 아내의 얼굴이었다. 지난번과 달리 한결 밝고 가벼워 보였다. 남편이 주차를 하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는 지난 한 주의 변화를 조용히 들려주었다. 30년 동안 말만 꺼내면 욱하던 남편이 요즘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이해하려 애쓴다는 것이었다. 남편도 지난 상담이 자신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했다. 판단받지 않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이 무척 편안했고, 미처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상담자가 대신 짚어주자 응어리졌던 마음이 풀렸다고 했다. 마음이 가벼워지니 아내의 말이 이전보다 훨씬 잘 들렸고, 늘 관계를 위해 애써온 아내의 진심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은 지적이나 비난으로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내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오랜 세월 동안에 쌓인 불만과 지적이 켜켜이 담겨 있었다. 남편을 움직인 것은 비판의 날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따뜻한 관심과 존중이었다.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상담의 방식이 결국 가장 깊은 변화를 이끌어냈고, 그 변화의 온기는 두 사람 모두에게 고루 스며들었다. 관계는 상대를 바꾸려는 힘이 아니라, 마음을 이해하려는 조용한 태도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 이레지나 : 심리학박사, 부부가족치료전문가, 서울부부가족치료연구소 소장,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
[2026년 6월 14일(가해) 연중 제11주일 인천주보 2면, 이레지나] 0 3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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