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9일 (목)
(백)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묵주기도 학교: 기도의 숨, 묵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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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4-07 ㅣ No.2263

[묵주기도 학교] 기도의 숨, 묵주기도



기도의 숨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서시어 숨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요한 20,22). 그 숨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두려움에 갇혀 있던 제자들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생명의 시작이었습니다. 숨이 들어오면 사람이 살아나고, 숨이 막히면 모든 것이 멈춥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움직이는 듯해도 기도의 숨이 끊기면 마음은 점점 굳고, 삶은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묵주기도를 “제대로” 바친다는 말은, 기도의 숨을 다시 고르게 쉬며 영혼을 살리는 힘을 얻는다는 말과 맞닿아 있습니다. 

 

어느 주교님의 이야기가 이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유학 중 건강이 크게 악화되어 학업을 이어 가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상태였는데, 그분이 살기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숨 쉬는 것을 아는 것”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숨을 제대로 쉬기 시작하자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호흡은 그저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해야 하는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

 

레지오 마리애 교본은 묵주기도를 ‘인체의 호흡’에 비유할 만큼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기도로 설명합니다(19장 14항 참조). 호흡은 너무 일상적이어서 의식하지 않고 지나가지만, 결국 생명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입니다. 숨은 한 번 크게 들이마신다고 며칠을 버티게 해 주지 않습니다. 매 순간, 매일, 꾸준히 이어질 때 몸을 살립니다. 묵주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날은 경건함이 넘치고, 어떤 날은 분심이 들고, 어떤 날은 입술만 움직이는 것 같아도, 그 호흡이 이어질 때 신앙은 살아 있게 됩니다. 신앙의 호흡이란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끊기지 않는 관계의 지속입니다.

 

 

묵주기도는 축적된 경험의 소산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묵주기도는 목표 그 자체가 아니라 목표에 이르는 ‘수단’이라는 점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2002년 10월 16일)에서, 묵주기도는 “목표에 이르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며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다”라고 분명히 하시면서도, “수 세기 동안 축적된 경험의 소산인 이 방법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합니다(교서, 28항). 다시 말해, 형식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형식이 사라지면 오히려 마음이 흩어지고 기도의 리듬이 무너질 수 있기에 교회는 유효한 길을 제시합니다. 

 

이는 ‘숨을 쉬기만 하면 된다’라는 말이 옳다 하더라도, 건강을 위해서는 호흡의 질과 리듬을 돌보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교서는 묵주기도를 더 깊이 살아있게 바치도록 순서와 방법을 제안하며(교서 27–38항 참조), 그 기본 구조를 ‘시작 기도–본기도–마침 기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각 단계는 우리 안의 ‘기도의 숨’을 고르게 하여, 묵주기도를 통해 관상에 이르는 길을 가게 됩니다.

 

 

묵주기도는 관상의 여정

 

시작 기도는 관상 여정을 여는 ‘첫 호흡’입니다. 묵주의 십자가를 잡고 바치는 성호경은 기도를 삼위 하느님의 은총 안에 두는 첫 동작이며, 이어 바치는 신경(사도신경)은 신앙고백으로 관상 여정의 토대를 세웁니다. 지역 관습에 따라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나 ‘시편 70편’ 첫 구절로 대신할 수도 있습니다. 첫 신비 선포 전의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첫 청원이며, 이어 바치는 ‘성모송’ 세 번은 마리아 공경이 결국 삼위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뜻을 드러냅니다(「묵주기도의 비밀」, 71). ‘영광송’과 ‘구원을 비는 기도’로 시선을 하느님께 고정한 채 본기도로 들어가며, 이 시작은 마음과 호흡을 가다듬어 묵주기도 첫머리에서 영혼의 자세를 갖추게 해줍니다.(이하 ‘구원을 비는 기도’는 레지오 회합 중에는 바치지 않습니다.) 

 

본기도는 ‘신비 선포–성화상 묵상-말씀 봉독–말씀 묵상-침묵 기도’로 이어지는 호흡의 리듬입니다. 상황에 따라 일부는 선택하거나 생략할 수 있지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각 단의 소리 기도의 기본 구조는 ‘주님의 기도 한 번, 성모송 열 번, 영광송 한 번, 구원을 비는 기도 한 번’입니다. 묵주기도는 이 리듬으로 우리의 하루를 붙들고, 희로애락의 현실을 하느님 앞에 다시 놓게 합니다.

 

마침 기도는 기도의 마무리를 ‘감사와 파견’으로 묶는 단계입니다. ‘성모찬송’으로 마치거나, 관습에 따라 ‘성모 호칭 기도’ 또는 ‘교황님의 지향을 위한 기도’로 대신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성호경을 바치며 기도를 마칩니다. 마침은 끝이 아니라 파견입니다. 묵주기도의 마지막은 삶으로 돌아갈 힘을 남깁니다. 기도로 정돈된 마음으로 현실을 다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봄

 

묵주기도를 바칠 때 우리는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봅니다(교서, 3항 참조). 묵주기도의 목적지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제대로 바친다’라는 말은 분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분심이 와도 다시 그리스도께 시선을 돌리는 선택을 한다는 뜻입니다. 숨이 가빠지면 다시 숨을 고르듯이, 마음이 흩어지면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냥 늘 숨 쉬듯 바치는 기도인데, 내가 묵주기도를 알아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몰라도 됩니다. 바쳤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도는 이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바라고 싶습니다. 묵주기도의 의미를 알면, 더 열심히 바칠 이유가 생깁니다. 살아 있는 기도가 됩니다. 그때 묵주기도는 ‘형식’이 아니라 ‘우리의 숨’이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셨듯이, 묵주기도는 오늘 우리에게도 숨을 불어넣어 줍니다. 지친 마음이 다시 살아나고, 흩어진 생각이 다시 모이고, 무뎌진 사랑이 다시 뜨거워집니다. 묵주 한 알 한 알을 넘기는 일은 영혼이 하느님 안에서 숨을 쉬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숨이 이어질 때, 우리는 단지 기도하는 사람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 있는 신앙인으로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3월호, 박상운 토마스 신부(전주교구 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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