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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의 샘: 성모님과 함께 걷는 마음의 순례 (3) 기도, 청원과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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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성모님과 함께 걷는 마음의 순례 (3) 기도, 청원과 감사
삶은 언제나 고단하고 예기치 못한 일로 가득하기에, 우리 힘만으로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매일 빠지지 않고 기도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살펴 주시고, 이끌어 주시기를 청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도는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가장 소박하면서 아름다운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정말 기도가 절실한 순간’,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기도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많은 이들이 ‘묵주기도’를 떠올릴 것입니다. 매일 기도를 바치고 성사를 거행하는 저 또한, 마음이 다급해지거나 간절해질 때면 무의식적으로 묵주를 먼저 손에 잡습니다. 그리고 묵주기도를 봉헌하며 전구를 청합니다. 어쩌면 이 습관은 제 마음 안에 새겨진, 신앙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때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른 아침 잠결에 눈을 뜨면, 새벽 미사를 다녀오신 어머니께서 제 머리맡 의자에 앉아 계셨습니다. 성모상이 놓인 집안의 한구석 자리에서 묵주 알을 조용히 굴리며 기도하고 계셨지요. 어렴풋한 기억에 어머니께서는 그 시절 무엇이 그렇게 청할 것이 많으셨는지, 기도 지향을 적어 놓고, 봉헌하실 묵주기도 단수를 적어 놓으셨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기억이 있습니다. 유학 시절, 한동안 몸과 마음이 몹시 좋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급히 귀국해 치료에 전념했지만, 몸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습니다. 어찌 될지 모를 어둠 앞에서 아버지께서는 묵주기도 봉헌 단수가 빼곡히 적힌 쪽지 하나를 건네주셨습니다. 아파하는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는 일뿐이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그 종이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성모님께서 저를 기도하게 하셨구나”
사실 저는 성모 신심이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늘 하느님께 부족한 제 신심을 고백하며, 성모님을 향한 마음을 키워달라는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신학생 시절, 방학 때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머물 때의 일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동료 신학생이 저를 보러 왔습니다. 그 신학생은 이곳에 오기 전에 루르드를 다녀왔는데, 저를 만나서는 줄곧 “신학생이라면 어머니의 집에는 꼭 들러야 한다”라고 강하게 말을 하였습니다. 루르드를 아직 다녀오지 못한 저를 어찌나 타박하던지, 그 말이 계속 가슴에 남았습니다.
귀국이 가까웠지만, 저는 서둘러 기차표를 끊었습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루르드까지는 기차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먼 길이었습니다. 역무원은 환승 시간이 촉박하니 승강장을 잘 확인하라고 당부했지만, 저는 기차 갈아타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라며 조금은 귀찮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시련은 출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첫 기차가 달리던 중 갑자기 멈춰서더니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스마트폰조차 없던 시절이라, 환승을 놓치면 어디서 어떻게 밤을 지새워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막막함 속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손을 더듬어 묵주를 찾는 일뿐이었습니다. 저는 온 마음을 다해 매달렸습니다. “성모님, 제발 다음 기차를 타게 해주십시오.” 묵주 알을 굴리며 기도했지만, 첫 기차는 이미 도착 예정 시간보다 크게 늦어졌습니다. 저는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기차에서 내려 환승 열차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음 열차도 연착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간신히 그 열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 열차도 계속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연착했고, 그런데 마치 기적처럼 다다음 열차까지도 연착되어 있어, 저는 그날 밤 자정을 훨씬 넘어 결국 루르드에 도착했습니다. 그 순간 제가 느꼈던 것은 “기도를 이루어주셨다”라는 단순한 감사함을 넘어 “성모님께서 저를 기도하게 하셨구나”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준비 없이 길을 나선 저를, 성모님께서 기도의 자리로 이끄셨다는 느낌이 제 안에 강하게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루르드에서 보았던 광경들은, 성모님께서 왜 그 동료 신학생을 통해 저를 이곳으로 오게 하셨는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곳에는 병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치유의 기적을 바라며 모여 있었지만, 제 눈에는 묵묵히 봉사하는 수백 명의 봉사자가 보였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시대의 기적은 돌이 빵이 되고, 낭떠러지에서 천사들이 사람을 받쳐 주는 일이 아니라, 내 안에 없던 마음이 생겨 다른 이를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변화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부제품을 앞둔 저에게 참된 봉헌과 기도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해준, 매우 소중한 은총 체험이었습니다.
성모님께 청원이란 하느님의 뜻에 기대어 드리는 신뢰
전통적으로 기도는 크게 ‘청원’과 ‘감사’라는 두 기둥으로 이뤄집니다. 우리는 바라는 것들을 하느님 아버지께 청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하지 않으시기에,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십니다. 그러나 ‘받는 것’에만 마음이 머물게 되면, 주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알아차리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감사기도가 필요합니다. 감사는 단순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드리는 인사가 아닙니다. 감사기도는 지금 내게 주어진 모든 은총을 돌아보고, 그 사랑에 응답하며 내 삶을 기꺼이 봉헌하겠다는 다짐입니다. 때로는 고단하고 가파른 길 위에서도 “주님께서 이 길로 나를 이끄신다”라는 믿음으로 고백할 때, 우리의 기도는 비로소 깊고, 성숙해집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두 가지 기도를 삶으로 몸소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께서는 아드님께 포도주가 필요하다고 겸손히 청하셨고, 천사의 예고 앞에서는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시며 자신의 삶을 온전히 봉헌하셨습니다. 성모님께 청원이란 하느님의 뜻에 기대어 드리는 신뢰였고, 감사는 그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순명이었습니다.
레지오 단원인 우리는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며, 아버지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란 결국 성모님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굴리는 묵주 알 하나하나가 간절한 청원이 되고, 또 깊은 감사가 될 때, 우리의 영혼은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것입니다. 성모님과 함께 걷는 이 마음의 순례가 우리 모두를 참된 은총의 길로 인도해 주기를 소망합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3월호, 전인걸 요한 보스코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0 7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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