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2025-07-20.....연중 제16주일 다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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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일 (다해) 창세기 18,1-10ㄱ 콜로사이 1,24-28 루카 10,38-42 2025. 7. 21. (농민주일.) 주제 :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사는가? 지난 주간, 며칠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비가 왔습니다. 기상청의 발표는 남쪽에서 밀어 올리는 태평양의 저기압과 북쪽에서 내려오는 고기압이 우리나라의 하늘에서 부딪히며, 남과 북으로 오르락내리락 움직인 결과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조화라는 막연한 해석을 들었습니다만, 사람의 힘으로 그 일을 다르게 바꿀 방법은 과연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지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다만 극한호우라는 말을 만나면서도 우리가 사는 곳에는 피해가 없고, 영향이 적기를 바라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 듯해서 사람의 힘은 보잘것없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오늘 연중 제16주일은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농민주일로 기억하고 지냅니다. 예전에 국민의 삶을 생각했을 때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한자를 써서 우리의 삶을 설명했습니다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된 이후, 공업과 수출을 중심으로 살다 보니, 농업과 농사에 관한 것은 그 중요성이 많이 달라져, 한쪽으로 밀려난 느낌을 주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먹고 사는 일의 중요성을 생각하여, 농산물이 무기로 바뀔 걱정을 생각하는 것이 사람이니, 사람은 두 가지의 일을 한꺼번에 해결하기는 힘든 존재로 삽니다. 농업의 중요성을 말하고, 도시는 농촌이나 농업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면, 오늘 농민주일이라고 말하면 우리가 다른 일은 하지 않아도 좋을까요? 도시에 사는 우리는 농업을 중요한 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농업이나 농사의 결실인 농작물이 없으면 우리의 목숨은 유지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방문하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고, 마르타는 예수님과 일행을 대접할 준비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둘 중에 어떤 사람이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말하겠습니까? 아쉽게도 예수님은 당신의 곁에 앉은 마리아를 중요한 일을 선택한 사람으로 말했습니다만, 먹는 일에 관하여 중요성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사람의 처지에서 우리가 마르타를 생각할 때, 그녀를 평가하는 일에 소홀한 점은 없었는지, 진지하게 돌이키자고 말하면 어떤 소리를 말하겠습니까? 예수님의 곁에 앉아, 마리아처럼 좋은 몫을 선택했다는 얘기를 듣는 일도 사실은 마르타처럼 희생하는 눈코가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둘 중에 어느 한쪽을 더 낫게 보는 것이 올바른 자세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세상에 사는 우리는 하나를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보입니다. 그렇다고 마리아를 낫게 보거나 좋게 본 예수님의 판단이 잘못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창세기의 독서는, 아브라함에게 파견된 세 천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천사는 하느님에게 받은 사명이 있어서 아브라함의 집에 방문했고, 그 일을 실행했습니다만, 아브라함은 천사들에게 음식을 먹게 하고, 손님을 모시는 일에 성실을 다했기에 하느님의 놀라운 계획을 실행하시기 전에 듣습니다. 그 놀라운 일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에 하느님의 선물인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는 소식과 소돔과 고모라에 하느님의 징벌과 심판이 내린다는 내용이라고 우리가 창세기를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계획은 아브라함과 대화하는 천사의 말에서 드러납니다. 없던 자녀가 생기는 일도 놀라운 일이지만, 많은 사람이 살았을 소돔과 고모라라는 두 도시에 착하거나 선하게 산 사람이 5명이 되지 않았다는 서글픈 소리는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나는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돌이키게 하는 내용입니다. 한 도시가 하느님의 축복을 누리려면, 그 도시에는 쉰 명의 선한 사람이 살지 않을까요? 그 숫자에서 모자란다면, 그 도시에 마흔 명의 선하거나 착한 사람이 살지는 않을까요? 거기에서도 모자란다면 그 도시에 서른 명이나 스무 명, 혹은 열 명의 착하거나 선한 사람이 살지는 않을까요? 사람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이루는 일과 그 결과가 한 도시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는 세상을 향해서 겸손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먹는 사람으로 세상에서 사는 일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를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겠지만, 나의 행동이 세상과 공동체의 구원에 좋은 역할을 하기를 청하는 방법도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내가 하는 일의 의미는 얼마나 크고 좋은 결과를 만든다고 하겠습니까? 무더운 여름철 좋은 생각도 함께 드러내고 실천하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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