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미술ㅣ교회건축

건축칼럼: 회중석은 움직이는 배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4-11 ㅣ No.849

[건축칼럼] 회중석은 움직이는 배

 

 

우리는 성당에서 긴 등받이 의자가 놓인 자리를 보통 신도석, 신자석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도나 신자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를 이르는 말이므로 엄밀하게는 ‘평신도석’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런데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전례를 거행하려고 ‘모여 온’ 하느님 백성을 ‘회중(會衆, populus congregatus)’이라고 가르칩니다. 미사를 드리는 하느님 백성의 자리이니 이 자리를 ‘회중석’이라 불러야 합니다.

 

회중석은 성당 안에서 면적이 가장 큽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전례가 거행되는 동안, 하느님 백성은 제대를 둘러싸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몸을 모시며 회중석에 머뭅니다. 유대인의 성전으로 말하면 이 자리는 사제들만 들어가던 성소에 해당하는데, 이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는 대단한 자리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회중석은 영어로 ‘네이브(nave)’라고 합니다. ‘배’라는 뜻입니다. 해군을 뜻하는 네이비(navy)와 어원이 같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성당에서는 신자들이 앉는 부분을 배라고 여겨 이를 라틴어로 ‘나비스(navis)’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도 그리스어 나우스(naus)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 박공지붕을 안에서 올려다보면 뒤집힌 배처럼 생겼다고 신전을 이렇게 불렀다고 하는군요. 그러면 교회는 왜 회중석을 ‘배’라고 부르고, 회중은 ‘배 안’에 있다고 여기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교회를 격랑을 헤쳐 가는 작은 배로 표상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소용돌이치는 물 위에 떠 있는 노아의 방주이고, 회중석에 앉은 사람들은 세상의 죄에서 벗어나 하느님 나라를 향해 순례의 여정을 떠나는 이들이라고 여겼습니다.

 

독일 벤젠바흐의 성 베드로 성당.

 

 

교부 히폴리투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다는 세상이다. 교회는 배와 같고 물결에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가라앉지는 않는다. 사실 그 배에는 뛰어나신 선장 그리스도가 계시다.” 또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교회는 ‘화해를 이룬 세상’이며, ‘주님의 십자가의 돛을 활짝 펴고 성령의 바람을 받아 이 세상을 잘 항해하는’ 배다. 교부들이 즐겨 쓰는 또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교회는 홍수에서 유일하게 구해주는 노아의 방주에 비유된다.”(845항) 그래서 성당은 배가 되고 이로써 회중석을 ‘네이브’라 불렀습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센강 한가운데 있는 시테섬에 서 있습니다. 독일 벤젠바흐(Wenzenbach)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2003년)은 천장을 나무배의 모양으로 만들었고, 회중석은 깊은 바닷물을 항해하는 ‘배’라는 의미를 현대적으로 표현하여, 아래로 내려갈수록 짙어지는 창과 짙은 푸른빛의 벽으로 지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말 ‘회중석’은 ‘배’라는 의미를 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회중석에 머물 때마다 성당이라는 배를 함께 타고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노 저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늘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2022년 4월 10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서울주보 7면, 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1,47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