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1일 (일)
(녹) 연중 제12주일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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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 복음선포로만 두려움을 없앨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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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8:44 ㅣ No.190221

 

찬미 예수님! 오늘도 한 날을 잘 지내셨는지요. 연중 제12주일 복음 묵상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같은 말씀을 세 번이나 거듭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가장 끈질긴 적이 무엇인지를 알려 줍니다. 바로 두려움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명령하십니다.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7-28 참조)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을 이긴 다음에 선포하여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선포하여라, 그러면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라고 하십니다. 순서가 뒤집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두려움이 사라지면 그때 사랑을 고백하고, 두려움이 가시면 그때 복음을 전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리는 사람에게 그날은 영영 오지 않습니다. 두려움은 혼자 방 안에서 이겨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입을 열어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그 관계 안에서, 특별히 하느님을 선포하는 그 관계 안에서 비로소 부서집니다. 이 두려움이 사람을 어떻게 고립의 감옥에 가두는지,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 하나를 먼저 나누겠습니다. 어느 정신과 의사가 전한 한 청년의 사례입니다. 이 청년은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누구에게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보낸 안부 문자에도 "답장했다가 어색해지면 어쩌나, 귀찮아하면 어쩌나" 하며 며칠을 망설이다 끝내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둘 관계가 끊기자, 청년은 "역시 사람들은 나를 싫어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말했습니다. 그를 외롭게 만든 것은 사람들의 미움이 아니라, 미움받을까 봐 먼저 숨어 버린 그 자신의 두려움이었다고 말입니다. 두려움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혼자 있게 만들고, 혼자가 된 우리는 두려움을 이길 유일한 길인 '관계'마저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두려움은 점점 더 커집니다. 두려움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고립입니다. 거절이 두려워 진실을 혼자 편집해 버렸다가 평생의 사랑을 잃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한 병사가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었습니다. 고향에는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가 있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몰래 그녀의 집 앞을 찾아간 그는, 자기를 그리며 눈물짓는 그녀를 보면서도 이렇게 단정해 버립니다. "다리 없는 나를 보면 그녀가 떠나겠지." 거절이 두려웠던 그는 전우를 시켜 자신이 전사했다고 거짓 소식을 전합니다. 몇 해 뒤, 그녀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나마 축복하려 식장을 찾은 그는 그만 무너지고 맙니다. 그녀와 혼인 서약을 나누는 신랑은, 두 팔과 두 다리가 모두 없는 상이군인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가 두려움을 혼자 끌어안는 대신 그녀에게 다가가 "내 다리가 없어도 나를 사랑해 주겠소?" 하고 한마디만 건넸다면 어땠을까요. 그는 두려움을 관계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지 않고, 혼자 머릿속에서 결론을 내려 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잃었습니다. 이제 구약으로 들어가, 같은 두려움이 사람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보겠습니다. 시나이 산에서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산 아래 백성은 불안에 떨며 대사제 아론을 둘러쌌습니다. 아론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율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난 군중의 시선이 두려웠습니다. 거절당하고 버림받을까 두려웠던 그는, 군중의 비위를 맞추려 율법을 뜯어고쳐 금송아지를 빚어내고 맙니다(탈출 32장 참조). 보십시오. 아론을 무너뜨린 것은 군중이 아니라, 군중을 향한 그의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는 두려움 앞에서 하느님을 선포하는 대신, 두려움이 시키는 대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그날 하루에 삼천 명이 죽었습니다. 사람에게 미움받지 않으려고 진실을 가위질하면, 우리 영혼 한가운데에 파멸의 금송아지가 세워집니다. 그러나 같은 광야, 같은 두려움 앞에서 정반대의 길을 간 사람도 있습니다. 모세 자신입니다. 하느님께서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끝까지 두려워하며 핑계를 댑니다. "저는 본래 말솜씨가 없는 사람입니다."(탈출 4,10 참조) 혼자였다면 그는 결코 파라오 앞에 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두려움을 어떻게 없애 주십니까.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 3,12 참조) 하시고, 형 아론을 그의 입으로 붙여 주십니다. 모세의 두려움은 그가 혼자 극복한 것이 아닙니다. 함께 계시는 하느님과의 관계, 곁에 보내 주신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녹아 없어진 것입니다. 같은 떨기나무에 마주 선 두 사람, 모세는 함께 가시는 분을 믿고 두려움을 관계 속으로 가져갔고, 아론은 군중의 두려움을 혼자 끌어안다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두려움을 이기느냐 굴복하느냐는, 결국 그 두려움을 누구와 함께 마주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하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라고, 곧 두려움을 관계 한복판으로 끌고 나가라고 명령하셨을까요. 예언자 예레미야의 소명에서 그 까닭이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하리라."(예레 1,17 참조) 그러나 같은 자리에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겠다."(예레 1,8 참조) 곧, 선포하라는 명령과 함께 있어 주겠다는 약속이 한 짝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다가 거절당하는 것은 내가 거절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함께 계신 하느님께서 거절당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 나 혼자 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님 말고'의 영성을 배웁니다. 최선을 다해 사랑을 전하되, 상대가 거부하면 "아님 말고!" 하고 툭 털어 버리는 영적 배짱입니다. 이 배짱은 뻔뻔함이 아니라, 결과를 함께하시는 하느님께 맡기는 깊은 신뢰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가리옷 유다에게 끝까지 사랑을 내어 주셨지만, 그가 끝내 등을 돌리고 떠날 때 억지로 매달리지 않으셨습니다. 사랑은 선포하는 내 몫이고, 받아들임은 상대와 하느님의 몫입니다. 그 몫을 구분할 줄 알 때, 우리는 거절이 두려워 입을 닫는 감옥에서 풀려납니다. 이 자유가 한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실제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깊은 감명을 받은 한 옷가게 주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게에 들어오는 모든 손님에게 종교를 가리지 않고 "찬미 예수님!" 하고 인사하기로 결심합니다. 불쾌해하며 나가 버리는 사람도, 장사를 망칠 위험도 있는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내 인사가 싫으면 아님 말고!' 하는 배짱이 있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그다음입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입을 연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손님의 눈치를 보는 외로운 장사꾼이 아니라, 만나는 모든 이와 복음으로 이어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선포가 그를 두려움에서 풀어 준 것입니다. 그의 벅찬 기쁨에 감화되어 수많은 이가 세례를 받았고, 그는 훗날 위대한 선교왕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두려움을 먼저 없앤 뒤에 입을 연 것이 아닙니다. 입을 열었더니 두려움이 사라진 것입니다.  

두려움은 우리에게 늘 "혼자 숨어라"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정반대를 명령하십니다. "지붕 위로 올라가 선포하여라." 두려움은 골방에서 혼자 이겨 내는 것이 아니라, 입을 열어 다가가는 관계 안에서, 특별히 하느님을 함께 모시고 선포하는 그 관계 안에서 부서집니다. 그러니 미움받을까 두려워 사랑의 고백을 입안으로 삼키지 마십시오. 내 곁에, 내 안에 함께 계시는 그분을 믿고 이렇게 외치십시오. "예수님 믿으세요, 사랑합니다. 아님 말고!" 그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여러분은 이미 두려움의 감옥에서 한 걸음 걸어 나온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어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상이 두려움이 사라지는 자유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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