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1일 (일)
(녹) 연중 제12주일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스크랩 인쇄

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8:51 ㅣ No.190222

김건태 신부님_두려움을 뛰어넘는 믿음의 삶

 

[말씀]

 

■ 제1독서(예레 20,10-13)

 

남 유다 왕국이 몰락을 향하던 기원전 6세기,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 왕국의 비극적 운명을 내다보며, 눈먼 동족들에게, 아니 눈이 먼 상태로 남아 있기를 고집하던 동족들에게 재앙을 예고해야 하는 사명 앞에 섭니다. 사실 그는 침묵하기를 바랐으나, 주님의 부르심은 강력했기에 핍박을 무릅쓰고 입을 열어야만 했습니다. 예언자는 동족들의 호응을 다 잃어버린 상태에서 고독을 절감합니다. 그러나 그는 극도의 번민 속에서도 굳건한 믿음으로 주님을 향합니다.

 

■ 제2독서(로마 5,12-15)

 

죽을 운명을 거부함으로써 인간은 종종 하느님 자리에 서고자 하나, 이는 실상 자신에게 주어진 삶, 죽음을 포함하는 참된 삶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원죄에 관한 기사 속에서 인간의 이러한 유혹을 적시하는 가운데, 이 죄가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행위보다 더 근원적임을 밝힙니다. 그리스도는 죽음 앞에서 사랑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셨으며, 그분을 통해서 이제 죽음 너머의 세계, 곧 은총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이 세계는 두려움의 반대 개념인 믿음으로 열리는 세계입니다.

 

■ 복음(마태 10,26-33)

 

복음저자 마태오 공동체는 유다교 한가운데에 살면서 죽음 또는 최소한 머물고 있던 세계에서의 추방이라는 현실로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도들을 선교로 파견하시며 내리신 말씀들을 상기시키면서, 복음저자는 동시대의 신자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람들을 지키실 것이기에, 박해자들은 결코 참된 삶을 파괴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인들은 어떤 두려움이든 털어버려야 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해야만 합니다.

 

[새김]

 

두려움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며, 특히 권력이 억압을 앞세우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전체주의적 이념을 명분으로 가해지는 위협 앞에서 어찌 우리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겠으며, 나아가 어찌 생각조차 할 수 있겠습니까? 힘 있는 자들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칫 자기 자신 또는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죽음의 길로 내몰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두려움 앞에서, 특히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반응을 보입니다. 의사 표명을 포기하고 입을 다물든지, 아니면 적극적인 자세로 생각을 표현하든지….

 

억압과 죽음은 언제나 두려움의 선상에 머물러 있습니다. 자기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결국 남의 판단에 자신을 내맡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남의 눈에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털어놓는 결과를 낳으며, 아울러 자기 자신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게 만듭니다. “너희를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하는 주님의 말씀은 이제 “두려움을 갖는 삶은 참된 삶이 아니다.” 하는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두려움을 갖는다는 것은 믿음이 없거나, 믿음의 강도가 떨어짐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두려움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는 본디 믿음의 자리였습니다. 믿음만이 우리에게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고, 기꺼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하며, 담대히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굳건한 믿음으로 자유를 누리는 사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모습을 되찾는 한 주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너희는 육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복음은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예수님의 세 번에 반복된 말씀을 중심에 두고 있다. 이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사도들과 모든 제자에게 주어진 선교 사명의 본질을 드러내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반대 받는 표징’이 되는 것을 의미하며(루카 2,34), 박해는 교회의 역사 속에서 항상 동반자처럼 존재해 왔다.

1. 예레미야의 상징성과 그리스도인의 소명

제1독서(예레 20,10-13)는 예언자 예레미야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당한 고통과 두려움을 증언한다. 그는 동족으로부터 “공포가 사방에 있다!”라는 조롱을 받고, 심지어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지만, 끝내 하느님을 저버리지 않는다. 예레미야의 충실함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고하며, 동시에 그분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운명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2. 예수님의 세 번의 권고: “두려워하지 마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반복하신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씀은 세 가지 차원에서 설명된다. 우선, 심판 때에의 담대함이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게 된다.(26절) 즉, 진리의 말씀은 결국 드러날 것이므로, 제자들은 세상에서 복음을 “지붕 위에서 외쳐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감출 수 없으며, 진리를 감추는 순간 스스로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참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다. 사람은 육신만 죽일 수 있지만, 영혼과 육신을 함께 지옥에 던지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다.(28절) 이는 인간 권력보다 더 근본적인 두려움, 곧 하느님 앞에서 책임을 일깨운다. 사람의 칼은 육신을 베지만, 하느님의 심판은 영혼과 육신을 함께 판단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의 칼보다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섭리 안에서 확신을 갖도록 하자. 참새 한 마리도 하느님 아버지의 섭리 안에서 살아간다. 하느님께서 우리 머리카락까지 세고 계신다는 말씀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 우리 존재 전체가 아버지 손길 안에 있다는 약속이다.

 

3. 고백과 증언의 책임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32절)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박해 앞에서 신앙을 증언할 용기와 순교 신앙의 의미를 드러낸다. 초대 교회의 순교자들은 바로 이 약속을 믿고 생명을 바쳤다. 교회 헌장도 그리스도인의 증언을 이렇게 가르친다. “교회는 언제나 박해를 당해 왔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교회의 운명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십자가는 부활의 빛을 드러내는 표징이다.”(42항)

4. 은총이 죄를 압도한다: (로마 5,12-15)

바오로 사도는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조하면서, 죄보다 더 큰 것이 은총임을 강조한다.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15) 죄의 세력은 인간을 두렵게 하지만, 그리스도의 은총은 죄를 넘어서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신앙인은 두려움보다 은총에 의지하여 살아야 한다.

5. 신앙인의 삶에의 적용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삶의 태도를 요구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위협보다 더 큰 하느님의 사랑과 심판을 기억해야 한다. 신앙을 고백하는 용기는 인간적 담대함이 아니라, 성령의 은총에서 비롯된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단순히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삶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성 이레네오는 말한다. “살아 있는 인간이 하느님의 영광이며,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Adversus Haereses, IV,20,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의 존재 자체가 복음의 증언이 된다.

6. 맺음말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세 번의 권고를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진리는 드러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아버지의 섭리가 너희를 붙들고 있다. 십자가와 부활의 빛 속에서 우리는 담대히 신앙을 고백해야 한다. 그럴 때 교회는 세상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오히려 세상의 구원과 희망의 빛이 될 수 있다.

 

이병우 신부님_"너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마태10,26ㄱ)

 

'당당한 신앙인이 되자!'

 

오늘 복음(마태10,26-33)은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선포하여라. 너희가 귓속으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마태10,26-27)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10,28)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마태10,32-33)

 

'당당하게 신앙생활 하자!'

'성당 안에만 갇혀 있는 신자가 되지 말자!'

'성당 밖에서 하느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자!'

'성당 밖에서 내가 천주교 신자인 것을 감추지 말고 당당하게 드러내자!'

'당당하게 성호경을 긋고, 기도하자!'

 

'그리스도인'은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처럼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예수님이 되려고, 복음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예수님이 되고 복음이 되어야 할 자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저는 그곳이 바로 '가장 작은 교회인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정 안에서 사랑하는 가족에게 예수님이 되고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가화만사성'이기에.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이겨내신 예수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부활하신 예수님을 늘 바라보며 그 사랑을 기억합시다!

 

(~ 시편8,10)

 

우리농 이병우 루카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9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