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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길교구: 악몽의 193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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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 교구 설정 80주년 기념 특집] 악몽의 1932년
그해는 유난스러웠다. 가뭄이 계속되고 무서운 흉년이 닥쳐왔다. 그러고는 끔찍한 돌림병이 북간도 지역을 휩쓸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이태 전에 일본 관동군은 만주를 장악하고 만주국을 세웠다. 방방곡곡에 일본군이 주둔하였고, 패잔한 중국군은 마적이 되어 재산약탈과 양민학살을 일삼았다. 공산 빨치산이 날뛰었고, 조선 독립군의 의거가 잇달았다. 불안한 정세는 조선인, 중국인 할 것 없이 모든 주민들을 전전긍긍 밤낮으로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비극의 전주곡은 팔도구八道溝에서 시작되었다. 1932년 3월 5일 만주, 특히 간도 지방을 휩쓴 장티푸스가 앞날이 창창한 하느님의 소중한 일꾼 하나를 앗아가 버렸다. 팔도구 본당 피우스 엠머링(Pius Emmerling, 嚴威明, 1886-1932) 보좌신부가 병마에 쓰러졌다. 그리고 석 달 후 대령동大嶺洞 본당에서 사목을 펼치던 두 젊은 신부가 장티푸스로 목숨을 잃는다. 5월 27일 엥엘베르트 뮐러(Engelbert Muller, 穆, 1901-1932) 보좌신부가 사망하였고, 6월 4일 실베스터 아쇼프(Silvester Aschoff, 安, 1900-1932) 주임신부가 뒤를 따랐다. 선교지로 파견된 지 3-4년 밖에 안 되었던 이 두 신부는 인자한 성품으로 교우들의 사랑을 한 몸으로 받아왔다. 대령동 마을은 통곡의 골짜기로 바뀌었다. 장상인 테오도르 브레허(Theodor Breher, 白化東, 1889-1950) 신부는 속수무책으로 그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괴로움 속에 장례를 치렀다.
일본군은 콘라드 랍 신부의 시신을 부대 근처에 있는 강가 모래밭에 파묻어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였다. 시신은 기적적으로 발견되었다. 랍 신부가 한 교우의 꿈에 나타나 자신이 묻혀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연길 수도원으로 시신이 운구 되는 도중에 일본 경찰이 나타나 일방적으로 검시檢屍하였다. 많은 교우들이 운구행렬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일본 경찰은 네 사람 말고는 따라가지 못하게 하였다. 브레허 신부는 사건의 전모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보고하였고, 봉천(奉天=瀋陽) 주재 독일 대사에게도 같은 내용을 통보하였다. 두 주 후 독일 영사가 연길로 와서 브레허 신부를 동행하고 용정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에 가서 항의하였지만, 그들은 “도저히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천황의 군대는 절대로 그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라며 일축해 버렸다. 콘라드 랍 신부 살해 사건은 종결되지 않은 채 남았고, 되려 브레허 신부가 일제당국으로부터 요시찰 제1호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분도, 2008년 겨울호, 글 편집실, 사진제공 역사자료실] 0 1,763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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