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9일 (월)
(녹)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가톨릭 교리

알려지지 않은 하느님, 성령: 성령의 신적 빛과 신화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10-18 ㅣ No.7759

[알려지지 않은 하느님, 성령] 성령의 신적 빛과 신화

 

 

“거울이나 물은 태양의 빛을 받아 다시 다른 빛을 발한다. 우리 역시 이 세상의 어둠을 떠나 위로 올라가 참된 빛이신 그리스도께 가까이 다가간다면 빛나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비추는’ 참된 빛이 우리에게 내려오신다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빛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신화(神化)를 이루는 선물은 신비로운 빛이며, 그 풍요로움을 받아들이는 이들을 빛으로 변화시킨다. 성령은 그들을 영원한 빛으로 채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 합당한 인식과 생명까지도 그들에게 베푸신다.”

 

이 글은 동방의 성 그레고리우스 팔라마스의 것으로, 성인은 성령의 신비로운 신적 빛이 바로 그 빛을 받아들이는 이들을 ‘빛’으로 변화시켜 영혼과 육신에 이르기까지 인간 전존재가 신화(神化)되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이’(2베드 1,4 참조)가 되게 한다고 설명합니다. 성경은 “하느님은 빛”(1요한 1,5)이시고,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요한 1.9)이시며 이 빛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빛이 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마태 5,14 참조). 동방정교회는 타볼산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모에서 그분의 얼굴이 성령의 영광으로 태양처럼 빛났을 때, 그곳에 있던 세 제자들이 체험한 그 빛의 체험과 동일한 체험을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안에서 늘 경험해 왔음을 증언해 왔습니다.

 

서방교회에서는 성령의 신화시키는 빛에 대한 표현이 동방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꾸준히 영성생활의 단계에서 ‘신적 조명’에 대한 강조를 해왔습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영적 체험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 가지는 인식은 동방의 체험은 ‘빛의 체험’이고 서방의 체험은 하느님의 부재에 대한 체험이자 고통스러운 정화의 과정인 ‘어두운 밤’이라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는 동방정교회는 ‘성령의 광휘’만을 쫓고 하느님의 부재나 정화의 체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혼이 성령의 사랑으로 불로 불타오르면 마치 쇠의 불순물이 제거되듯이 정화되는 체험은 동방에서도 늘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동방은 정화 그 자체를 강조하기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빛으로 변화시킨다는 그 희망과 하느님의 절대적 주도권을 ‘빛의 언어’로서 강조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서방의 영성이 고통스러운 정화의 과정인,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한 ‘어두운 밤’이 모든 것인 양 이야기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두운 밤’은 하느님의 부재에 대한 체험인 ‘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결국 이 고통스러운 정화가 끝나면 찬란하게 떠오를 ‘신적 빛’에 참여하여 빛으로 변모하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동방과 서방의 전통은 빛이신 하느님의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과 이것이 성령께서 이루시는 업적이라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그러나 서방은 어떻게 변모되어 가는가인 정화의 과정을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동방은 변모시키시는 성령의 주도적 활동을 더 강조하는 뉘앙스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 동방에서 강조하는 성령의 광휘와 영광, 빛에 대한 체험은 우리가 더욱더 성령의 활동에 귀 기울이게 하는 영적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결국 모든 영성생활은 성령의 움직임에 대한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2026년 10월 18일(가해) 연중 제29주일(전교 주일 ·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주주보 숲정이 3면, 하성훈 요셉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