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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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상징 속 성인 읽기: 성인의 삶과 상징 (8) 마이센의 성 벤노와 멘톤의 성 베르나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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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1:34 ㅣ No.2587

[상징 속 성인 읽기] 성인의 삶과 상징 (8)

 

 

열쇠를 입에 문 물고기: 마이센의 성 벤노

 

마이센의 성 벤노는 11세기 초에 독일의 힐데스하임에서 태어났다. 주교이던 삼촌에게 교육을 받은 그는 삼촌이 사망한 뒤 수도원에 들어갔다. 50세 무렵에 마이센의 주교로 임명된 그는 교구민을 위해서 일하는 한편 그 지역 통치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자 애쓰며 일했다. 그러나 끝내는 황제가 부과한 세금과 강제 노동에 맞서는 사람들을 지지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체포되었다.

 

1년 뒤 감옥에서 풀려난 그는 교회(그레고리오 7세 교황)와 국가(하인리히 4세 황제) 사이의 갈등 국면에서 교황을 지지했다. 황제는 관행에 따라 자기 영토 안의 주교며 사제들을 자기 마음대로 임명했고, 교황은 이러한 관행을 비난하며 황제의 임명을 무효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벤노는 교황을 지지하다가 마이센의 주교직에서 해임되었고, 마이센을 떠나 슬라브계의 벤드족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10여 년 만에 주교로 복직되었다.

 

벤노는 주교로서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의 개혁 정책을 받들어 성직자들에게는 규율을 엄수하며 살기를 요구했고, 성무일도의 시편 기도를 노래(성가)로 부르는 전통을 되살렸으며, 교회 의식과 전례에 성가를 도입했다. 한편, 가난한 이들에게는 너그럽게 자선을 베풀었고 교구민들과는 아낌없이 시간을 함께 보냈다.

 

교회와 국가 사이의 갈등과 대립 상황에서 벤노가 단호한 지도력을 발휘한 일화가 전해 온다. 교회와 대립하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끝내 그레고리오 7세 교황에게 파문을 당했다. 격분한 황제는 마이센 대성당으로 와서 고집스럽게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에 벤노는 교회의 신성함이 훼손되는 것을 막고자, 성당 문을 잠그고는 열쇠를 엘베강에 던지라고 사제들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주교직에서 해임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벤노는 어부들에게 엘베강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게 했다.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잡혔는데, 그 물고기의 배 속에는 사라졌던 성당 열쇠가 들어 있었다.

 

벤노는 11세기에 사망했고, 시성되기 전에도 중세 후기 내내 공경을 받았으며, 16세기에 시성되었다. 그의 시성 6년 전인 1517년에 가톨릭교회를 이탈하여 개신교회를 세운 마르틴 루터는 이 시성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리고 개신교도들은 마이센에 있던 벤노의 무덤을 훼손했다. 이에 그 유해는 뮌헨으로 옮겨져 안치되었고, 가톨릭의 개혁가들은 벤노를 정통 신앙의 모범으로 공경했다. 벤노는 일찍이 뮌헨과 옛 바이에른 지역의 수호성인으로 추대되었고, 오늘날에는 어부와 직조공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미술에서는 성 벤노를 열쇠를 입에 문 물고기를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한다.

 

 

개와 정찰에 나서는 사제: 멘톤의 성 베르나르도

 

10세기 초에 이탈리아의 멘톤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나 파리에서 교육을 받은 멘톤의 성 베르나르도는 교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아버지는 그가 결혼하기를 바라고 혼처와 날짜까지 정했으나, 그는 결혼식 전날 밤에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이때 그는 12미터 높이의 창문에서 뛰어내렸는데, 천사들의 도움으로 무사했다고 한다.

 

그는 아오스타에서 부교구장의 지도 아래 공부하고 사제품을 받았으며, 산간 지대의 마을들을 다니며 선교사로 활동했다. 학식과 성덕을 두루 갖춘 그는 오래지 않아 스승의 뒤를 이어 부교구장에 임명되어 교구 행정을 맡아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40년 넘게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고 기적을 행했다.

 

알프스산맥에서 흘러드는 두 강이 만나는 지점인 아오스타에서 스위스 서남부 알프스산맥의 험준한 지역인 발레주(州)에 이르는 알프스 산악지대에는 오래전부터 길이 하나 있었다. 만년설이 2미터 넘게, 많게는 10미터 넘게 쌓이기도 하는, 그런데 봄철이면 시도 때도 없이 눈사태가 발생하는 곳이었다. 위험했지만. 프랑스와 독일 방면에서 로마로 가는 여행자들이나 순례자들이 이용할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이 지역에 사는 신자들 외에 여행자들을 보살피는 책임도 맡았던 그는 그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편의와 안전, 보호와 구조를 위해 그 길에서 가장 높은 지점, 곧 해발 2,400미터가 넘는 곳에 수도원과 숙소를 세웠다. 이곳은 나중에 그의 이름을 따서 ‘큰 성 베르나르도 고개’라 명명되었다. 몇 년 뒤에는 해발 2,100미터가 넘는 지점에 ‘작은 성 베르나르도 고개’라 명명된 또 하나의 숙소를 세웠다. 그 뒤 그는 로마에 가서 교황에게 수도원 설립 인가를 받았고, 이후 이 두 숙소의 관리는 이 수도원에 맡겨졌다. 이 새로운 공동체, 곧 성 베르나르도 구호 수도회(Great St. Bernard Hospice)는 알프스 산중에서 묵묵히 그 소임을 다했다.

 

그런데 이 산맥에도 터널이 개통되고 또한 각종 구조 장비도 개발됨에 따라 긴급한 구조의 필요성이 차츰 줄어들었다. 조난 당한 이들을 수색하고 구출하는데 요긴하게 활용되던 구조견들의 용도는 줄어드는데 그 개들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비용은 더욱 늘어났다. 결국 21세기 들어서는 개들을 매각하기로 했다.

 

베르나르도는 11세기에 선종했고, 선종한 직후부터 아오스타, 노바라, 브레시아 같은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공경받아 오던 중에 17세기에 시성되었다. 그리고 20세기에 알프스의 수호성인으로 추대되었다. 오늘날에는 스키와 스노보드를 타는 이들, 하이킹과 배낭여행과 등산을 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다.

 

한편, 그리스도교 미술에서는 성 베르나르도를 개와 함께 산을 살펴보러 나서는 사제로 묘사한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8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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