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일 (화)
(녹) 연중 제22주간 화요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강론자료

2026-08-30...연중 제22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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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6-08-28 ㅣ No.2613

연중 제22주일 가해

2026-08-30

 

                                            주제...세상에서 내가 사는 자세

 

우리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내가 사는 자세가 행복을 향하고, 내가 얻으려는 것은 행복이라는 마음과 생각으로 살려고 애씁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행복을 내 삶에 붙잡아 두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애쓰면 행복은 내 곁에 붙어 있을까요? 그 행복은 내게서 떨어지거나 도망치지 않고 나와 함께 있을까요? 물론 이때 행복을 내가 무엇으로 생각하는지 그 사정을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기억하며 충실하게 산다는 것을 예레미야 예언자가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우리를 꾀시는 꾐에 빠진 결과라고 생각해도 좋을까요? 만물의 영장이라고 주징하는 존재가 사람이니까, 그가 하지 못할 소리는 아무것도 없다고 자신감을 드러낼 수는 있이도 정말로 그렇게 해도 괜찮은지 잘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용하는 꾐이라는 표현은 나보다 어리숙하다고 여길 다른 대상을 이용하여 내가 이익을 챙기거나 내가 세운 특별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가리킬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일을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도 하느님을 꾐에 빠뜨리려고 애쓸 것이며, 내가 내 삶에 필요한 것은 얻으려고 하고, 베풀어야 할 것이나 주어야 할 것에서는 인색하게 산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표현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이렇게 대하고 생각해도 괜찮을까요?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면서 서글프게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느님의 뜻을 선포한 것은 하느님에게서 받은 사명을 실천하는 것이라서 좋다고 할 수 있었는데, 그의 생각대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의 말을 들은 사람이 늘어났다거나 그가 하는 말대로 사람들의 삶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일도 없으며, 하느님의 뜻을 선포한 그가 자기의 삶에서 얻은 혜택도 없다거나 적었다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하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이러한 감정을 갖게 된다면,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얼마나 실천하겠다고 말하겠습니까? 하느님의 꾐에 어수룩하게 넘어간 예레미야 예언자는 얼마나 안타까운 사람이었겠습니까?

복음을 하시던 사명의 실천에서 미래를 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삶에 다가올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예상하셨던 수난은 당신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 사정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막고 나섭니다. 물론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말문을 막았다고 해서 미래를 바라보거나 준비하신 예수님의 생각이나 태도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다만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베드로사도는 예수님에게서 당신의 뜻을 가로막는 사탄이라는 엄청나게 무섭고도 두려운 소리를 듣습니다. 세상의 삶에 다가오는 하느님의 계획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현실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고통과 두려움을 피하고 싶은 것은 어떤 사람이든지 갖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그 일은 내가 바란다고 해서 내 삶에 이루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안타까움은 거기에 있습니다. 현실을 바라보고서 힘겨운 일이 나의 삶에 찾아오지 않게 만드는 것이 사람이 해야 하는 기본적인 일입니다만, 그 일은 역시 사람의 생각만으로 이루어질 일도 아닙니다.

지난 목요일(네팔, 8/27. 06시),  네팔에서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호수가 터진 사고도 엄청난 자연재앙이긴 합니다만,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삶에 그 일이 일어나도록 얼마나 방관했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찾아온 자연 재앙을 어떻게 하면 막거나 뒤로 시간을 물리겠습니까?

사람의 삶에 찾아오는 힘겨운 일들을 우리가 한두 번의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의 상황을 읽고 대하면서 사람이 협조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올바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자연의 반응을 대하면서, 예수님께서 선언하셨던 미래에 일어날 힘겨운 예고를 두려워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에 협조할 방법을 찾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삶에서 어떻게 살기를 바라시겠습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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