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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의 샘: 성모님과 함께 걷는 마음의 순례 (7) 공동체의 길 위에서 만나는 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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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성모님과 함께 걷는 마음의 순례 (7) 공동체의 길 위에서 만나는 진리
가톨릭교회는 종종 ‘마리아 교회’라는 오해를 받습니다. 아무리 진심을 다해 설명하고 오해를 풀려고 해도, 오랜 시간 굳어진 편견을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레지오 단원 여러분도 선교 현장이나 일상 안에서 이러한 종류의 난감한 질문을 마주한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마음이 무거워지는 그런 순간마다, 2019년 성인품에 오르신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1801-1890) 추기경을 떠올리곤 합니다.
유학하던 시절, 영국 런던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종교 서점에 들어갔는데, 서가 대부분이 영국 국교인 성공회 관련 서적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쪽 벽면 전체에 한 가톨릭 성직자의 책들로 채워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가 바로 뉴먼 추기경이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살아생전에도 그리고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분이 서로 갈라진 두 세계를 사랑으로 이어 주는 다리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뉴먼은 영국에서 태어나 성공회 신자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개신교 신학 서적을 가까이하며 자연스럽게 반가톨릭적 성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옥스퍼드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뒤 성공회 사제가 되어 활발히 활동하였지만, 서품 후 20년 만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결단이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를 배신자라고 비난했고, 오랜 세월 쌓아 온 명성과 인간관계, 학문적 기반까지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진리를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치 그는 묘비에 써놓은 “그림자와 환영을 넘어 진리 안으로”(Ex umbris et imaginibus in veritatem)라는 구절을 통해 자신이 받은 수많은 오해와 비난에 대해서 자신이 묵묵히 살아온 삶의 방향을 표현해 놓고자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개종 이후 뉴먼은 로마의 우르바노 대학에서 가톨릭 신학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였습니다. 이후 가톨릭 사제로 새롭게 서품받고, 성 필립보 네리의 영성을 따르는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였습니다. 그 겸손한 시작 안에서 그는 가톨릭 신앙의 깊이를 더욱 발견해 갔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뉴먼 추기경 역시 처음에는 마리아 신심에 적지 않은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가톨릭 신자들의 성모 공경, 곧 성상과 기도, 여러 신심 행위들이 자신에게는 큰 ‘걸림돌’(crux)처럼 느껴졌다고 솔직히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신학을 깊이 연구하면서 그는 개종 이전 자신이 추구하던 진리가 오해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였고, 그간 ‘틀린 것’이라 단정했던 교리들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양심의 요청에 충실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참된 양심은 단순한 개인감정이 아니라, 오랜 세월 교회 공동체 안에서 형성된 신앙의 공통 감각 안에서 드러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뉴먼 추기경은 교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전하는 것은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Traditio)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가 보기에 이 전통은 개인의 주관적 감정이 아니고 수많은 신자가 시대를 이어 가며 함께 고백해 온 ‘공통의 신앙 감각’(consensus fidelium)이며, 성령의 인도 안에서 교도권(Magisterium)이 확인하고 보호해 온 객관적인 신앙의 유산이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성모님의 원죄 없는 잉태 교의나 성모 승천 교의를 두고 성경에 없는 내용을 덧붙인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뉴먼 추기경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교의가 처음부터 완전한 형태로 우리에게 이해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삶 안에서 교의에 대한 발전이 이뤄지는데 이는 신앙 공동체의 기도 생활, 전례, 그리고 세상과의 영적 상호작용 안에서 다각도로 일어나는 입체적인 발전임을 밝힙니다. 따라서 그는 마리아 교의의 발전은 창작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회의 건강한 성장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결코 혼자 걷는 외로운 길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 성령 강림을 기다리던 제자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사도 1,14)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잃고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은 성모님의 품 안에서 다시 하나의 공동체로 모일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를 모으는 성모님의 품 안에서 교우들은 공동의 신앙을 키워가며, 신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갈 수 있습니다.
뉴먼 추기경은 자신의 사목 표어로 “마음은 마음에 말한다”(Cor ad cor loquitur)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신앙은 단순한 지식이나 논리로만 전달되지 않습니다. 따뜻한 마음에서 다른 마음으로 스며드는 살아 있는 사랑을 통해 전해집니다. 저는 2019년 로마에서 거행된 뉴먼 추기경의 시성식 미사에 참석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영국에서 온 많은 신자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기뻐하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지난해 2025년 11월 11일, 성인 뉴먼 추기경은 레오 교황님에 의해 교회박사로 선포되었습니다.
이날 미사에서 교황님께서는 “성 존 헨리 뉴먼 추기경의 인상적인 영적·문화적 위상은, 무한을 갈망하며 연구와 지식을 통해 ‘고난을 거쳐 별에 이르는’ 여정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새로운 세대에게 큰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직자의 개종이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 수많은 비난을 견뎌야 했던 추기경은, 마침내 가톨릭교회의 진리를 만나면서 성모님의 올바른 역할과 공동체 신앙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신앙이 결코 혼자만의 신앙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 주는 살아 있는 믿음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매주 모이는 레지오 모임 역시 단순한 만남이 아닙니다. 성모님의 품 안에서 공통의 신앙을 고백하고, 교리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가며 신앙을 키워가는 자리입니다. 신앙은 말재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걷는 사랑과 따뜻한 마음을 통해 드러납니다. 빛이 자기 자신만을 비추지 않고 세상을 따뜻하게 밝히듯이, 성모님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우리의 발걸음 또한 메마른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전하는 아름다운 순례가 될 것입니다. 오늘도 공동체 안에서 간직되는 신앙의 은총을 소중히 여기며, 성모님과 함께 이 기적의 길을 기쁘게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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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에이버리 덜레스, 「존 헨리 뉴먼의 생애와 사상」, 윤성희 옮김, 성바오로 출판사, 2010. ** Cf. 존 헨리 뉴먼, Apologia pro vita sua(자기 삶의 변호), The modern library: New York, 1950, p.64-112. *** Cf. 존 헨리 뉴먼, An Essay on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그리스도교 교의 발전에 관한 에세이), Image books: New York, 1960.
[성모님의 군단, 2026년 7월호, 전인걸 요한 보스코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0 11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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