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7일 (월)
(녹) 연중 제17주간 월요일 겨자씨는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인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 그늘 아래 자란 믿음, 하느님의 종 윤자호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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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7-26 ㅣ No.2572

[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  그늘 아래 자란 믿음, 하느님의 종 윤자호 바오로(1809-1868)

 

 

1950년 6월 24일 새벽 2시, 북한 정치보위부원들이 황해도 은율 본당에 들이닥쳐 주임 윤의병 바오로 신부를 체포해 갔습니다. 보름쯤 뒤 유치장에서 많은 자루가 실려 나갔다는 증언을 끝으로 그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병인박해 시기 내포 지방 교우들의 삶을 그린 소설 『은화(隱花)』도 그날 이후 미완으로 남았습니다. 순교자들의 삶을 기록하던 윤 신부는 오늘날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가운데 한 분으로 사복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윤 신부가 순교자들의 삶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게 된 뿌리에는 어린 시절부터 가슴에 새겨 온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병인박해 때 순교한 윤자호 바오로의 삶은 손자에게 지나간 옛이야기가 아니라 신앙을 일깨워 준 살아있는 ‘순교자 행전’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종 윤자호 바오로는 충청도 노성의 파평 윤씨 가문에서 아버지와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집안에서 외교인과의 혼인을 강요하자, 교우 박 마리아와 혼인을 약속했던 그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집을 떠났습니다. 광천 독바위에서 머슴으로 지내던 중 집주인의 유혹을 받자 계명을 지키기 위해 그곳마저 떠났고, 이후 충청도 일대의 교우촌을 오가며 행상으로 살아갔습니다. 가난하고 고단한 삶이었지만 그는 어디에서든 천주의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뛰어난 말솜씨와 강직한 인품에 이끌려 그의 가르침을 들으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다블뤼 주교는 그의 신앙과 덕망을 인정하여 충청도 일대의 도회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는 교우들을 돌보고 교리를 가르치며 박해 속에서 공동체를 붙들어 주는 든든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의 자비를 보여 주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도적을 만났을 때 마침 지나가던 포졸에게 “빌린 돈을 갚으라고 다투고 있었습니다.”라고 둘러대어 자신을 해치려던 이들을 감싸주었습니다. 체포되던 날 마을 사람들이 포졸들을 막아서려 하자, 그는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며 사람들을 말렸습니다. 감옥에서도 의누이 김 마리아가 가져다준 음식과 자신 위해 마련한 왕골자리를 다른 죄수들에게 내어 주었니다. 그의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의 가르침을 향해 있었습니다.

 

1868년, 예순 살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한 윤자호 바오로의 이야기는 그날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믿음은 손자 윤의병 신부의 마음에 심겼고, 순교자들의 삶을 기록하고 전하는 소명이 되었습니다. 그 신앙은 다시 증손자 윤형중 신부와 고손자 윤석원 몬시뇰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은 세대를 건너 후손들의 소명이 되었고,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살아 있는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은 연로한 이들을 위로하는 날만이 아닙니다. 앞선 세대의 믿음과 지혜를 기억하고, 다음 세대가 그것을 이어받도록 서로 손을 맞잡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노년은 쇠퇴와 소멸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평생 가꾸어 온 믿음이 성숙하고 완성되어, 다음 세대의 삶을 떠받치는 때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오래된 나무가 말없이 넓은 그늘을 내어 주듯, 우리도 다음 세대가 믿음 안에서 쉬고 자라 다시 길을 떠날 수 있도록 든든한 어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종 윤자호 바오로

저희가 믿음과 덕으로 깊이 뿌리내려

다음 세대에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는

큰 나무가 되도록 하느님께 전구해 주소서.

 

[2026년 7월 26일(가해)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수원주보 4면, 백정현 요셉 신부(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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