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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교회의 기도: 유혹 속에서도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무르신 예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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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기도] “유혹 속에서도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무르신 예수님”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다는 사실이 우리 기도 생활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함께 묵상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유혹을 통해, 기도가 단순히 평온한 순간에만 드리는 말이 아니라 유혹과 시련 속에서도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믿음의 자세임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뒤 성령의 인도를 받아 광야로 가십니다. 그리고 사십 일을 단식하신 뒤 유혹을 받으십니다. 광야에서 예수님께 다가온 유혹은 세 단계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유혹, 둘째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하느님의 보호를 확인해 보라는 유혹, 셋째는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을 얻기 위해 하느님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엎드려 경배하라는 유혹입니다. 이 세 가지 유혹은 단순히 예수님 개인에게 주어진 시험이 아니라, 오늘 우리 신앙인들도 끊임없이 마주하는 유혹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첫 번째 유혹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는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라는 제안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면, 그 능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해 보라는 유혹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신뢰하는 대신, 자기 힘으로 자신을 증명해 보라는 유혹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자신을 증명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멕시코의 성서학자 후안 로페즈 베르가라는 이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묵상합니다.
“저를 증명해 주시고 지탱해 주시며 아버지와 저를 영원무궁토록 하나로 묶어 주시는 아버지의 무상의 사랑 안에서, 아버지, 저는 ‘혼란을 주는 자’에게 사람이 빵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확신시키며 그를 쫓아냈습니다.” - 후안 로페즈 베르가라, 『예수님의 기도』, 26-27.
이 묵상은 예수님께서 유혹을 어떻게 이기셨는지를 깊이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유혹에 휘둘리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미 당신을 사랑하시고, 지탱하시며, 당신과 하나로 묶어 주신다는 사실 안에 머무르셨습니다. 예수님의 힘은 돌을 빵으로 만드는 능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 안에 흔들림 없이 머무르는 신뢰에서 나왔습니다.
두 번째 유혹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유혹입니다. 혼란을 주는 자는 성경 말씀까지 인용하며,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보내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유혹은 하느님을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느님을 시험하는 유혹입니다. 신앙은 하느님을 내 뜻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기도 역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느님께서 응답하시는지를 확인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참된 기도는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 안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 번째 유혹은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을 보여 주며, 혼란을 주는 자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는 유혹입니다. 여기서 유혹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단순히 무엇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섬기느냐의 문제입니다. 유혹의 마지막 목적은 우리 기도의 방향을 바꾸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께 향해야 할 마음을 성공, 권력, 인정, 소유, 안정감으로 돌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이 세 가지 유혹은 오늘 우리 삶 안에서도 반복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빵의 유혹, 곧 눈앞의 필요와 욕구가 전부인 것처럼 느끼며 살아갑니다. 또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분께 내 뜻을 확인해 달라고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주는 성공과 인정 앞에서 하느님보다 다른 것을 더 크게 섬기고 싶은 마음에 흔들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유혹들은 우리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우리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잊게 만듭니다. 그래서 기도는 단순히 반복적으로 다가오는 유혹을 피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기도는 유혹 속에서도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다시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는 “나는 내 힘으로 나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아버지께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을 되찾습니다. 또한 하느님을 시험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그분의 뜻에 자신을 맡기고,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께 마음을 돌리는 법을 배웁니다.
[2026년 7월 26일(가해)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가톨릭마산 4-5면, 이승언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청년사목위원장)] 0 6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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