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6일 (월)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가톨릭 교리

가톨릭 교리: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7-05 ㅣ No.7340

[가톨릭 교리]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

 

 

근본적으로 인간은 악한가, 선한가?

 

인간 본성과 관련해 동양에서는 인간을 본래 선한 존재(성선설, 性善說), 혹은 반대로 본래 악한 존재(성악설, 性惡說)로 이해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사실 모든 인간은 자신 안에 이 두 본성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둘 중 어느 것이 더 근원적이고, 원래 모습인가에 대한 관점에 따라 인간 이해에 대한 방향이 달라집니다. 

 

그리스도교는 인간 본성을 어떻게 이해할까요? 구약의 창세기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에 따라 창조된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였는데, 죄를 지음으로써(=원죄) 타락하고 오염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인간 본성에 관해 구약 혹은 그리스도교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영적이고 선한 존재일까요, 아니면 죄로 물들기 쉬운 악한 존재일까요? 만일 인간이 본래 선한 존재라면 세례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 성사를 통해 은총을 받는 것이 꼭 필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인간 본성이 그 자체로 악하다면 지금처럼 일주일에 한 번 미사 참례하고, 십계명을 형식적으로 준수하는 정도로 구원받기 힘들 것입니다. 

 

성경이나 교회의 가르침은 인간이 본래 선하거나 악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저 어리석은 존재, 한계가 뚜렷한 존재입니다. 창세기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의 먼지로 형태를 빚으신 후, 당신의 숨(=영)을 불어 넣으십니다. 즉 인간은 하느님의 영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영이 있기에 하느님 닮은 존재, 하느님 모상이라 합니다. 인간은 영적 존재이지만, 하느님처럼 완전하고 거룩한 영(=성령)이 아니기에 완전하지 않습니다. 완전하고 전능한 존재의 보살핌과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다는 것이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성령은 누구신가?

 

그리스도교에서 믿는 성령은 교회와 세상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힘, 하느님 현존 자체, 창조와 구원과 세상 완성의 힘으로 이해됩니다. 신앙의 중요한 기준을 요약한 신경(Credo), 그 중 대표적인 ‘사도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세상을 창조하신 성부, 세상을 구원하시는 성자, 세상을 완성하시는 성령에 대해 고백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느님은 언제나 함께하시고, 동시에 각각 존재하십니다. 구약에는 창조주 성부 하느님의 현현이 분명하게 계시됩니다. 이후 예수님의 탄생, 공생활, 수난, 죽음, 부활, 승천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후 신약의 교회는 성자의 신성을 고백합니다. 이후 성령 강림을 체험한 후 성령의 완전한 신성도 받아들이고 고백합니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 다음에 계시되셨지만, 창조 이전부터 성부와 성자와 함께하셨습니다.

 

‘공의회’(=보편공의회)란 교황을 포함한 전 세계 주교단이 함께 모여 하느님 계시를 그 시대에 맞게 교회의 가르침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가톨릭교회의 가장 중요한 회의입니다. 그리스도교 역사상 총 21번의 보편공의회가 있었는데, 특히 첫 네 번의 공의회는 성자와 성령의 신성과 관련된 공의회였습니다. 첫 번째 보편공의회는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였는데, 우리가 잘 아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토대가 되는 ‘니케아 신경’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공의회의 주된 주제는 예수의 신성 문제였습니다. 요한복음사가는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 성자 예수를 ‘말씀’(로고스, Logos)으로 이해했는데, 아리우스 이단은 ‘말씀’을 성부 하느님과 창조된 세상 사이의 중간적 존재로 이해하며 성자의 완전한 신성을 부정했습니다. 교회는 공의회를 통해 ‘말씀’이 성부와 본질이 같으시고, 성부처럼 영원한 분이라 고백하고 선포하였습니다. 이후 성령과 관련해 같은 문제가 발생했는데, 역사상 두 번째 공의회인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는 성령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단들을 단죄하고, 성령의 온전한 신성을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이때 비로소 삼위일체가 교리로 정리되었고, 정리된 내용이 ‘신경’입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같은 하느님이시고, 삼위일체 하느님의 세 번째 위격이십니다. 즉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이십니다. 

 

성령에 대한 해석과 이해는 이후에도 계속 논의되고, 논쟁이 되었습니다. 성부가 하느님이라는 것은 당연하게 여겼지만, 예수님과 성령의 신성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계속되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여러 이단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됩니다. 특히 성령에 대한 논쟁은 다양합니다. 성령의 특성을 인간의 언어로 확고하게 규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난 2천 년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자신만의 개인적 체험을 성령체험이라 주장하거나 혹은 자신의 주장을 성령의 뜻이라 설파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사실 성령이 자신에게 내렸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체험과 주장은 검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간혹 교회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의 활동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새로운 계시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고, 기존의 계시나 성경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은 어떤 활동을 하시는가? 

 

“한 처음에 …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창세 1,1-2). 하느님의 거룩한 힘이신 성령은 한 처음에, 창조 이전부터 성부와 성자와 함께 존재하시고 활동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과 더불어 영(靈)을 통해 활동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영은 특히 생명력, 즉 창조적 능력을 드러내셨습니다. “당신의 숨을 내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되고, 당신께서는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십니다.”(시편 104,30) 하느님께서는 말씀과 영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피조물의 존속과 성장을 도와주십니다. 하느님의 영은 생명을 주시고 구원으로 이끄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통해 피조물에게 생명의 숨을 선사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숨을 주셨고, 이 숨을 거두어들이시면 피조물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게 됩니다.(참조 시편 104,29) 구약의 하느님 백성은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영에 의해 살아간다는 것을 믿고 고백합니다. “숨 쉬는 것 모두 다 주님을 찬양하여라.”(시편 150,6)

 

하느님께서는 세상과 인간을 초월하는 분인 동시에, 당신의 영을 통해 세상과 인간과 직접 친교를 맺으시고 인격적으로 만나십니다. 새 하느님 백성인 교회는 하느님의 영을 통해 하느님의 능력과 구원 의지를 체험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영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고, 온갖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 계심을 구원 역사 안에서 체험하였고, 믿고 있습니다.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갈라 4,6)

 

[성모님의 군단, 2026년 6월호,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