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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의 샘: 성모님과 함께 걷는 마음의 순례 (6) 겸손의 길 - 자신을 비우고 은총을 받아들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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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성모님과 함께 걷는 마음의 순례 (6) 겸손의 길 : 자신을 비우고 은총을 받아들이기
이탈리아 로마의 여름 더위는 밤에도 식지 않을 정도로 악명이 높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유학생들은 여름이 되면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떠납니다. 이탈리아의 기숙사에는 냉방 시설이 없는 경우가 많아 몇 달 전부터 여름을 보낼 장소를 준비합니다. 저 역시 비교적 시원한 이탈리아 북부 마조레 호수(Lago Maggiore) 근처의 한 수녀원에 머물며 미사를 봉헌하고 박사 논문을 집필한 적이 있습니다. 이 시간은 학문적 연구뿐 아니라 교회와 신앙이 깊어지는 은총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 수녀원에서는 보통 밀라노 교구 소속의 연로하신 프랑코 신부님께서 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름이면 방학을 맞아 외국인 신부들이 도와주러 오기 때문에 신부님은 짧은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으셨습니다. 신부님은 못내 미안하셨는지 2주에 한 번씩 따뜻한 식사를 함께하며 신앙과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신부님은 운전 중에도 시간이 되면 성무일도 시편을 읽어달라고 하셨고, 대화의 한 주제가 마무리될 때마다 차 안 곳곳에 묵주가 있다며 묵주기도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만남 속에서 연세가 드셔도 단순하면서도 충만하게 사시는 원로 사제의 모습을 배울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신부님께서 일부러라도 젊은 사제에게 일상의 모습을 보여주시려는 것 같아, 더 깊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신부님은 조금 먼 곳으로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차를 배에 싣고 마조레 호수를 건너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몬테 발도 산맥의 깊은 산골 마을에 자리한 성모 성지였습니다. 그곳의 이름은 ‘피 흘리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지’(Santuario della Beata Vergine Maria del Sangue)였습니다. 큰 성모 성지들만 알고 있던 저에게, 이렇게 외진 곳에도 성모님 기적의 역사를 간직한 성지가 있다는 사실은 큰 놀라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성모님의 피는 고통과 비참함의 징표였지만 동시에 희망의 표지
다음 날 아침 그곳을 지나가던 한 노인이 상처 난 벽화를 만졌을 때 그의 손에 피가 묻어 나왔습니다. 성모님의 이마에서 흘러나온 피가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의 얼굴을 지나 그림 전체를 적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마을 전체로 퍼졌고 사람들은 성당으로 몰려와 “자비를 베푸소서”(Misericordia)를 외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당 신부는 그림 아래에 제대 천과 성작을 놓고 이 현상을 지켜보며 하느님의 자비를 청했습니다. 인간의 분노에서 시작된 사건이 회개와 기도의 자리로 바뀌는 순간이 된 것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 기적 직후의 역사적 맥락입니다. 이 일이 일어난 지 불과 다섯 달 뒤, 풍요와 번영에 도취해 있던 밀라노 공국은 프랑스 국왕 샤를 8세의 침공을 시작으로 60년이 넘는 ‘이탈리아 전쟁’(16세기 이탈리아 전쟁)의 화마에 휩싸이게 됩니다. 당시 신자들은 성모님의 피 흘리심을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닌 ‘중대한 재앙의 전조’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성모님께서 당신 자녀들이 흘릴 비참한 피를 미리 당신의 몸으로 받아내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밀라노가 가진 부와 권력이라는 자만심이 무너져 내릴 때, 성모님이 피를 흘리시며 죄인들의 회개를 호소하신 것이라고 믿는 마음이 널리 퍼져나갔던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성모님의 피는 고통과 비참함의 징표였지만, 동시에 희망의 표지가 되었습니다. 전쟁과 고통 속에서도 성모님은 백성과 함께하시며 위로와 보호의 표지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어머니의 모습은 오늘날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골고타 언덕 십자가 아래에서 아드님의 수난에 동참하셨던 성모님께서 전쟁의 비극에 다시 나타나 우리를 위해 전구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깊은 산골에 자리한 이 성지를 방문하며 그 사건의 역사를 전해 들었을 때, 은총을 향한 신앙인의 여정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필요한 은총을 쉽게 얻기를 바라지만, 참된 은총은 깊은 여정을 통해 주어지는구나”하고 말입니다. 성모님께서 그처럼 깊은 산골에 계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그곳을 찾아가는 여정은 욕심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자신을 비우는 길이며, 교만을 내려놓고 겸손을 배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태도와 관계 안에서 성모님의 향기가 드러나야
성모님은 은총의 원천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은총을 청해주시는 ‘전구자’(avvocata di grazia)* 이십니다. 깊은 산골 성지를 찾아가듯 은총의 여정을 떠날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은 바로 ‘겸손’입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 아집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은총이 머물 자리가 없습니다. 성모님께서 당신의 이마를 내어주며 인간의 매질을 견디셨듯, 우리 또한 자신의 교만함을 십자가 앞에 내어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나’라는 존재를 비우고 겸손해질 때, 성모님께서는 그 빈자리에 가장 필요한 은총이 내리도록 당신 아드님께 간절히 청해주십니다.
사랑하는 레지오 단원 여러분, 우리의 사도직은 단순히 보고서의 숫자를 채우는 활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태도와 관계 안에서 성모님의 향기가 드러나야 합니다. 성모님과 함께 걷는 순례는 ‘나의 비움’을 통해 ‘은총의 채움’으로 완성하는 과정입니다. 성모님의 피가 전쟁의 비극 속에서 희망의 표지가 되었듯, 우리의 활동 또한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활동 전, 우리의 교만과 편견을 먼저 비웁시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우리 삶의 전구자가 되어주시길 간구합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만나는 이들이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성모님의 겸손한 향기를 맡을 수 있을 때, 우리의 사도직은 비로소 은총 안에서 변모된 참된 구원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 * 신앙교리부, 교의공지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Mater Populi fidelis 2025,10,7), 54항.
[성모님의 군단, 2026년 6월호, 전인걸 요한 보스코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0 3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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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지가 세워지게 된 사건은 약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494년 4월 어느 늦은 오후, 몇 명의 청년들이 돌을 던져 목표물에 맞히면 동전을 가져가는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충동적인 성격의 청년 주코네(Zuccone)가 게임에서 계속 지자 패배에 대한 분노와 자존심의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성당 외벽에 그려진 성모님의 벽화를 향해 돌을 던졌습니다. 단순한 화풀이였지만, 그 돌은 성모님을 정확히 맞혔고, 성모님의 이마에는 X자 모양의 균열이 생겼습니다. 친구들의 꾸중을 듣자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망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