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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원교구사 한 페이지13: 순교자 시복시성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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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6-23 ㅣ No.2030

[수원교구사 한 페이지] (13) 순교자 시복시성 추진


순교자 현양하며 시복시성 이끌고 성지 개발·순례도 본격화

 

 

수원교구의 순교자 현양은 199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전의 순교 신심 함양과 순교자 현양이 신자들의 기도와 기념, 성지순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 시기부터는 순교자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순교 터를 확인하며 교회법 절차에 따라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작업이 본격화됐다.

 

- 1997년 어농성지에서 열린 ‘윤유일 바오로와 7위 순교자 시복 현양대회’ 전경.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교회사 자료를 수집·연구하다

 

교구는 이미 다양한 활동으로 시복시성운동에 불을 지폈지만, 시복시성은 신자들의 현양과 신심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었다. 순교자를 공적으로 기리는 시복시성은 순교자의 생애와 신앙, 체포와 심문,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역사 자료를 통해 확인돼야 할 뿐 아니라, 해당 순교자의 죽음이 신앙 때문에 겪은 순교였는지도 교회 안에서 검토돼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순교자 현양이 시복시성 추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흩어진 기록을 모으고, 순교 터와 관련 증언을 확인하며, 교회법 절차에 따라 이를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교구는 김남수(안젤로) 주교 재임기인 1996년부터 윤유일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비롯한 초기교회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운동을 추진했다. 1996년 6월 7일 교황청에 시복추진허가 청원서를 제출했고, 같은 해 11월 시복 추진 허가 공문을 접수하면서 시복시성운동을 본격화했다. 1997년에는 기존 대상자 외에 추가 순교자들에 대한 기초자료 조사도 시작했다.

 

최덕기(바오로) 주교가 교구장직을 승계한 뒤에도 시복시성 추진은 이어졌다. 1996년부터 활동한 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는 한국교회사연구소와 함께 1998년 2월 현지 탐사작업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양근과 여주의 순교 터 두 곳을 확인했다. 또 1997년과 1998년에는 「윤유일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시복 자료집」을 간행하며 시복 대상자 자료를 정리했다.

 

이후 초기 순교자 시복시성운동은 한국교회 차원의 통합 추진으로 확대됐다. 1999년부터 교구 시복시성 추진 담당자들이 통합 추진회의를 열고 각 교구가 제출한 순교자 명단과 약전을 검토했다. 2001년 주교회의는 조선왕조 박해로 한국에서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과 증거자들의 시복을 통합 추진하기로 했다. 같은 해 주교회의에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가 설치됐고, 교구도 대상 순교자가 많은 교구 가운데 하나로 이 과정에 참여했다.

 

시복시성 추진이 한국교회 차원으로 이관됐지만, 교구는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한 활동을 끊임없이 이어 나갔다. 특히 교구는 2003년 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아 수원교회사연구소를 설립했다.

 

구산성지에 자리한 연구소는 교구 전사와 교구사 연구, 교구 내 성지 연구, 교회사 관련 사적지와 유물 조사, 교구 출신 순교자와 관할 지역 순교자 조사·연구, 자료 수집과 정리·보존 등을 주요 사업으로 삼았다. 시복시성 추진에 필요한 자료 조사와 연구를 교구 차원에서 지속할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 2003년 설립 당시 수원교회사연구소 모습.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교회법 절차에 따라 시복을 추진하다

 

교회법 절차도 진행됐다. 2002년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 추진이 본격화되자 2004년 시복 안건 착수와 법정 구성 교령이 발표됐고 국내 시복 예비심사를 담당하는 시복재판부가 구성됐다. 2004년 9월부터 2006년 1월까지 이어진 시복재판에서는 각 후보자의 순교 사실과 무덤, 순교지, 관련자, 치명 사실의 정황 등이 조사됐다.

 

이에 따라 2006년 교구 지역 현장조사가 진행됐다. 조사에는 최덕기 주교와 시복재판부 관계자, 수원교회사연구소장 정종득(바오로) 신부와 연구원들이 참여했다. 조사단은 남한산성성지, 천진암성지, 양근성지, 여주성당, 죽산성지 등을 방문했다. 마침내 2009년에는 하느님의 종 124위와 최양업 신부에 대한 문서가 교황청 시성성(현 시성부)에 보내져 국내 시복 심사 과정이 마무리됐다. 이 과정을 통해 2014년 시복식이라는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국내 시복 재판이 끝났지만, 교구의 시복시성 추진은 계속 이어졌다. 2007년 주교회의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시기에 신앙 때문에 순교한 이들에 대한 증언록 작성 필요성을 논의했다. 이에 교구는 증언 청취와 기록, 연구를 담당할 기관으로 수원교회사연구소를 지정하고, 교구민들에게도 근·현대 수난사와 순교자 자료 정리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해 12월 24일에는 교구 차원의 추가 시복 추진 사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교구 순교자 시복시성추진위원회가 새롭게 구성됐다. 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는 하느님의 종 이벽(요한 세례자)·이승훈(베드로)·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권철신(암브로시오) 등 한국교회 창설 주역과 병인박해 순교자들을 중심으로 자료 조사와 연구를 이어갔다. 이러한 작업은 이후 주교회의 차원의 제2차 시복 추진 안건인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와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의 시복 추진으로 이어졌다.

 

시복시성 추진과 함께 교구 성지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2001년에는 제1회 청년 도보 성지순례가 열렸고, 이후 신앙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순례가 매년 이어졌다. 천진암, 남양, 죽산, 남한산성, 구산, 어농·단내, 수원성지, 양근성지 등에서도 성지 정비와 현양 행사가 이어졌다. 순교자 시복시성 추진은 자료 조사와 교회법 절차를 통해 진행되는 한편, 성지 개발과 순례를 통해 교구 신자들의 순교자 현양으로도 이어졌다.

 

 

- 2004년 개최된 수원교회사연구소 개소 1주년 기념 학술대회 모습.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6년 6월 21일,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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