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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가톨릭 미디어를 가다3: 헤럴드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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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11:10 ㅣ No.731

[아시아 가톨릭 미디어를 가다] (3) 헤럴드 말레이시아


무슬림 사회 속 규제와 검열에도 30년간 꺼지지 않은 가톨릭 등불

 

 

- 헤럴드 편집국이 위치한 쿠알라룸푸르대교구 사목센터 전경.

 

 

말레이시아는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다민족·다종교 국가다. 인구 3240만 명 가운데 무슬림이 63.5%다. 불교 신자 18.7%, 그리스도교 신자가 9.1%로 뒤를 잇는다.(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그리스도인 가운데서도 가톨릭을 믿는 이들은 120만 명 남짓으로 추산된다. 무슬림 사회에서 가톨릭 신자는 소수 공동체다. 이같은 현실에서 가톨릭 언론은 단순한 교회 소식지를 넘어선다. 흩어져 살아가는 신자들의 연결 고리이자, 교회 공동체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등불이 돼주기 때문이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 사목센터에 자리한 ‘헤럴드(HERALD)’ 말레이시아가 그런 역할을 해왔다.

 

 

4개 언어 지면으로 교회 일치 증언

 

쿠알라룸푸르 시내 한복판, 오래된 사목센터에 자리한 헤럴드 편집국은 그리 크지 않았다. 상주 직원은 패트리샤 페레이라 편집장과 산드라 앤 인바라즈 부편집장을 포함해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취재 기자와 소셜미디어 담당자, 그래픽 디자이너, 회계 담당자가 편집국을 지키고 있다. 각 교구나 본당 주요 행사 소식이나 교리교육·성경 해설·외신·논평은 시민 기자단과 분야별 전문가들이 보내오는 기사와 기고로 꾸리고 있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AI 활용이 보편화되면서 사실 확인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며 “이젠 뉴스 전달을 넘어 설명하고 교육하며 신앙을 나누는 기사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럴드는 ‘소식을 알리는 사람’, ‘선포자’란 뜻이다. 1994년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에 창간한 헤럴드는 영어판 격주간지(12개면)로 출발했다. 초대 편집장은 로렌스 앤드류(예수회) 신부였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에서 시작한 헤럴드는 이후 말레이반도(서말레이시아)와 보르네오섬 북부 사바·사라왁주(동말레이시아)까지 독자층을 넓히며 교구 신문을 넘어 말레이시아 가톨릭 공동체 전체를 잇는 매체로 자리 잡았다.

 

말레이시아 교회는 말레이반도에 쿠알라룸푸르대교구·페낭교구·말라카-조호르교구가 있으며 동말레이시아 사바주에 코타키나발루대교구·케닝아우교구·산다칸교구, 사라왁주에 쿠칭대교구·미리교구·시부교구 등 9개 교구로 이뤄져 있다. 특히 동말레이시아 지역은 말레이반도보다 가톨릭 공동체 기반이 뚜렷하다. 동말레이시아 일부 교구에는 가톨릭 신자 비율이 10%를 훌쩍 넘는다.

 

헤럴드는 영어 외에 중국어·타밀어·말레이어(바하사) 담당자를 두고 각 언어 지면을 함께 발행한다. 네 가지 언어를 한 신문에 담아 언어·문화가 다른 신자들이 하나의 교회 안에 있음을 지면으로 증언해 온 셈이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언어는 번역 수단에 그치지 않고 교회 일치를 위한 핵심 도구”라고 강조했다. 헤럴드는 현재 총 32개 면을 발행하고 있으며 영어 19개 면을 중심으로 중국어 3개 면, 타밀어 2개 면, 바하사어 8개 면으로 구성돼 있다.

 

- 헤럴드 사무실은 전례주기에 맞춰 꾸민다. 올해 초 사순 시기에 맞춰 보라색 천과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십자가상으로 장식한 사무실 입구.

 

 

‘알라’ 용어 사용으로 발행 중지 위기

 

헤럴드는 2001년 격주간지에서 주간지로 전환했다. 더 자주, 더 꾸준히 신자들에게 교회 가르침을 전하고,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제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해 웹사이트를 개설하며 새로운 독자층과 만날 길을 열었다. 그러나 헤럴드가 걸어온 길이 늘 순탄했던 건 아니다. 헤럴드가 말레이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알려진 계기는 신문이 겪은 가장 큰 시련이었다. 헤럴드 말레이어 지면에 사용했던 ‘알라’(Allah)라는 단어가 발단이었다.

 

알라는 아랍어로 하느님, 곧 유일신을 뜻한다. 무슬림에게 ‘알라’는 신앙의 핵심 언어이자, 이슬람 공동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도 오래전부터 하느님을 가리킬 때 이 말을 사용해왔고, 말레이어 성경과 교회 전통 안에서도 ‘알라’는 하느님을 뜻했다. 창세기 1장 1절 ‘창조주 하느님’을 가리킬 때도, 마태오 복음 27장 46절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을 부르짖을 때도 말레이어 성경은 하느님을 알라로 표기해왔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2007년 헤럴드 말레이어 지면의 ‘알라’ 사용을 문제 삼았다. 가톨릭 신자들이 쓰는 표현이 무슬림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논쟁은 헤럴드의 발행 허가 문제로까지 번졌다. 정기간행물은 정부의 출판 허가를 받아야 했고, 교회는 해마다 이를 갱신해야 했다. 알라 논쟁 직후 헤럴드의 허가 갱신은 지연됐고, 발행 중지 압박도 커졌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는 법적 대응에 나섰고, 당시 편집장 앤드류 신부는 이 사안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무슬림 사회에서 가톨릭 소수 공동체가 홀로 맞서기엔 힘든 싸움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종교와 민족 정체성, 신앙과 출판의 자유가 맞물리며 알라 논쟁은 말레이시아 사회를 넘어 세계 교회의 관심사가 됐다.

 

쿠알라룸푸르 고등법원은 2009년 가톨릭교회의 손을 들어주며 헤럴드에 ‘알라’ 사용의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판결 직후 일부 성당과 가톨릭 시설을 향한 공격이 벌어졌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항소에 나섰고, 오랜 법정 다툼 끝에 2013년 항소법원은 고등법원 판결을 뒤집었다. 헤럴드는 결국 ‘알라’를 지면에 쓸 수 없게 됐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이는 헤럴드지에만 해당되는 사안으로 미사나 전례, 성경에서 사용되는 것까지 막은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하느님을 부르는 말조차 공적 논쟁과 법적 제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무슬림 사회 속 가톨릭 언론이 처한 현실을 보여줬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말레이시아 정부는 인종(Race)·종교(Religion)·왕실(Royalty), 이른바 3R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이와 관련된 표현이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거나 공공질서를 해칠 수 있다고 보고 강하게 검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앙의 자유·인권·사회 정의·사회적 약자를 위한 우선적 배려 문제는 가톨릭 사회 교리와 직결되는 주제지만, 3R 영역과도 맞닿아 있다. 헤럴드는 대립의 언어보다는 신중하고 절제된 표현을 택했다. 침묵하지 않되 갈등을 키우지 않고, 교회 가르침을 전하되 사회적 긴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균형을 지켜온 것이다.

 

- 헤럴드 편집국 직원들. 왼쪽부터 산드라 앤 인바라즈 부편집장, 레이첼 샤르마 행정 담당, 패트리샤 페레이라 편집장, 아만다 마 그래픽 디자이너.

 

 

팬데믹·독자 감소에도 교회 가치 실천

 

코로나19 팬데믹은 헤럴드의 또 다른 위기였다. 2020년 3월 이동 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교회 공동체 일상도 멈췄다. 미사가 중단되고 신자들이 성당에 모일 수 없던 시기에 신문을 인쇄하고 배포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헤럴드는 신문 인쇄를 멈추고 전면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결단을 내렸고, 2022년 9월부터 종이신문을 다시 발행했다. 신문 독자가 줄고 제작비, 우편료 부담이 커진 상황에도 헤럴드가 인쇄를 재개한 것은 디지털 접근이 어려운 신자들과 종이신문을 기다리는 이들이 여전히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유튜브를 비롯해 다양한 SNS 플랫폼을 운영하며 여러 세대와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2024년 창간 30주년을 맞은 헤럴드는 나무를 심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강조한 ‘공동의 집 돌봄’에 응답하는 일이었다. 사바주 수카우의 로워 키나바탕간 야생동물보호구역에 나무 100그루를 심고, 신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생태 캠페인을 마련했다. 신문을 만들고 배포하는 일을 넘어 교회가 말하는 가치를 실천하는 시도였다.

 

30년 넘게 헤럴드는 신자들이 더 넓은 교회와 연결돼 있음을 알게 하고, 교회가 세상 안에서 무엇을 보고 말해야 하는지 식별하게 하며, 소수자의 자리에서도 신앙의 언어를 잃지 않도록 앞장서왔다. 말레이시아 가톨릭 공동체가 자신들의 언어와 전통을 잃지 않도록 헤럴드는 오늘도 네 개 언어로 목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6년 6월 14일, 말레이시아=박수정 기자]

 

 

첫 여성 평신도 편집장 - 패트리샤 페레이라


“복음에 뿌리 둔 진실 전한다”

 

 

헤럴드 말레이시아 패트리샤 페레이라 편집장

 

 

2021년 패트리샤 페레이라(Patricia Pereira) 편집장의 취임은 말레이시아 교회에 변화를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헤럴드 창간을 이끌고 27년간 편집장을 맡아온 로렌스 앤드류(Lawrence Andrew, 예수회) 신부 이후 첫 여성 평신도 편집장이기 때문이다. 페레이라 편집장은 자신의 임명에 대해 “교회가 리더십과 식별, 선교 영역에서 평신도, 특히 여성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인사였다”고 평가했다.

 

“교회는 성직자만이 이끄는 공동체가 아니니까요. 가톨릭교회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각자 역할을 맡아 함께 책임지는 공동체입니다.”

 

이는 말레이시아 사회에도 교회가 시대에 발맞춰 포용성을 넓히고, 여성의 역량과 리더십을 인정한다는 메시지를 줬다. 페레이라 편집장은 취임 후 ‘알리고, 양성하며, 영감을 준다’는 헤럴드 사명을 이어가며 현장 목소리를 더 많이 담으려 노력했다. 그는 “신자들의 생생한 삶의 경험, 공동체의 다양한 의견을 전하는 데 더 무게를 두는 변화를 추구했다”며 “스토리텔링의 렌즈가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에서 홍보학을 전공하며 교구와 본당 일을 돕곤 했다. 졸업 후엔 주말마다 헤럴드에서 번역하던 인연이 이어져 1996년 헤럴드 기자 겸 부편집장으로 합류했다. 2006년까지 10년간 기자로 일하다 일반 기업 카피라이터 겸 홍보 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정적 이유에 따른 선택이었지만, 성과와 속도를 중시하는 기업에서 여러 고객을 만나며 새로운 소통방식을 배웠다. 그러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 요청으로 2017년 다시 교회 현장으로 돌아와 교구 커뮤니케이션 및 대외 협력 업무를 맡았다.

 

“일반 기업과 교회 기관의 가장 큰 차이는 ‘근본적 동기’에 있습니다. 기업은 수익과 성과를 좇지만, 교회는 사명·가치·사목적 돌봄을 지향하죠. 교회는 기업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기업은 교회의 인간 존엄성과 삶의 의미를 배우며 상호 보완할 수 있습니다.”

 

페레이라 편집장은 가톨릭 언론의 정체성을 “양심을 지닌 저널리즘”이라 설명하며 “단순히 사실을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복음에 뿌리를 두고 진실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톨릭 언론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영감을 주며 성찰로 초대해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전문 사도직’”이라고 덧붙였다.

 

헤럴드 역시 신문 독자 감소와 디지털화라는 세계 언론의 공통된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기가 아닌 새 도약의 기회로 바라봤다. 온라인 입지를 강화하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 기사를 보도하겠다는 구상이다.

 

“헤럴드가 가톨릭 공동체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서로를 연결하며, 영감을 불어넣는 ‘신뢰받는 목소리’로 남길 바랍니다. 나아가 사회와도 의미 있는 대화를 이어가는 매체가 돼야 합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변화무쌍한 미디어 환경에서 단순히 살아남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언제나 흔들림 없이 빛을 비추는 ‘희망과 진실의 등대’로 굳건히 서는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6년 6월 14일, 말레이시아=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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