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4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전례ㅣ교회음악

교회음악 이야기: 성체 찬미가 연재 (4) Adoro Te Devote - 오직 믿음으로만 닿을 수 있는 하느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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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4-22 ㅣ No.3642

[교회음악 이야기 II] 성체 찬미가 연재 ④ Adoro Te Devote - 오직 믿음으로만 닿을 수 있는 하느님 (2)

 

 

지난 호에서 우리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남긴 고백의 시 전체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그 가사 속에 숨겨진 신학적 통찰과 그 안에서 뛰고 있는 뜨거운 영성의 심장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1. 시각의 실패, 청각의 승리 : “오직 들음으로써만”

 

제2절에서 성 토마스는 인간의 오감(五感)을 하나하나 짚어갑니다. “보고 만지고 맛보아도 알길 없고”라는 선언은 우리의 상식을 흔듭니다.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인 시각과 촉각이 성체 앞에서는 더는 진리에 도달하는 길이 될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분명히 ‘빵’이며, 화학적으로 분석해도 밀가루와 물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 토마스는 오직 ‘들음(Auditu)’만이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로마 10,17)”는 말씀을 신학적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제대 위에서 선포된 주님의 말씀, “이것은 내 몸이다”를 들었기에, 우리는 보이는 현상을 넘어 보이지 않는 실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2. 십자가보다 더 깊은 ‘자기 비움’ : 뉘우치던 강도의 눈으로

 

제3절의 통찰은 더욱 깊어집니다. “십자가 위에서는 신성만이 숨어 계셨으나, 여기 성체 안에는 인성마저 숨어 계시나이다.” 칼바리 언덕의 예수님은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이라도 보여주셨지만, 성체 안에서는 그 인간적인 모습조차 사라지고 오직 무력해 보이는 ‘빵’의 형태만 남았습니다. 성 토마스는 이를 그리스도의 ‘완전한 자기비움(Kenosis)’의 절정으로 보았습니다. 뉘우치는 강도가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본 것처럼, 우리 역시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성체 안에서 주님을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3. 생명을 수혈하는 사랑 : 자애로운 펠리칸

 

이 곡의 가장 아름다운 상징은 6절의 ‘자애로운 펠리칸(Pie Pelicane)’입니다. 중세 전설 속 펠리칸은 먹이가 없어 굶어 죽어가는 새끼들을 위해 자신의 가슴을 쪼아 피를 내어 먹인다고 전해집니다. 성 토마스는 이 강렬한 상징을 통해 성체 성사의 본질을 꿰뚫습니다. 성체는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예식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직접 수혈해 주시는 사건입니다. “그 한 방울의 피로 온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나이다”라는 고백은, 우리를 정화하고 살게 하는 성혈의 무한한 권능에 대한 찬양입니다.

 

4. 지금은 가려져 계신 주님을 뵈옵나니

 

마지막 7절은 우리의 시선을 현재에서 영원으로 옮겨 놓습니다. 지금 우리가 모시는 성체는 ‘가려진 얼굴’이지만, 언젠가 우리는 그 베일이 벗겨진 주님의 얼굴을 직접 뵙게 될 것입니다. 이른바 ‘지복직관(Visio Beatifica)’의 희망입니다.

 

‘Adoro Te Devote’를 부르는 시간은 나의 감각이 말하는 ‘겉모습’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이 선포하는 ‘참모습’을 받아들이는 시간입니다. 성체 앞에 머무는 순간마다, 우리 마음 안의 의심하는 토마스는 사라지고 뉘우치는 강도의 믿음만이 남기를 소망해 봅니다.

 

[2026년 4월 19일(가해) 부활 제3주일 대전주보 11면, 신혜순 데레사(연주학박사,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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