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9일 (목)
(백)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세계의 성모 성지: 브라질, 아파레시다(성모상 성지)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4-08 ㅣ No.2518

[세계의 성모 성지] 브라질, 아파레시다(성모상 성지)


물의 성모 아파레시다

 

 

 

- 신 성모 대성당

 

아파레시다 성모상(복원 후 모습) 

 

 

1) 성모상의 역사

 

1717년 어부인 조앙 알베스, 필리페 페드로수, 도밍구스 가르시아는 상파울루 주지사의 방문을 환영하는 연회의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물고기를 잡아 오라는 임무를 맡았다. 세 사람은 파라이바강에 여러 차례 그물을 던졌으나 하루종일 물고기를 잡는 데 실패하였다. 저녁 무렵, 그들은 장소를 옮겨 마지막으로 그물을 던졌는데 그물 속에 뜻밖의 물건이 올라왔다. 그것은 얼굴과 몸통이 따로 떨어져 있는 작은 성모상이었다. 세 어부는 성모상을 깨끗이 닦고 천으로 감싼 뒤 배에 모시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그물을 던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물에 엄청난 양의 물고기가 걸려 올라오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어부들은 물고기를 전달하기 전에 성모상 조각을 필리페의 여동생에게 건넸다. 그녀는 어부들의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두 조각으로 나누어진 성모상을 밀랍으로 이어 붙인 다음, 집 안에 있는 작은 제단 위에 모시고 물고기 기적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이 소식이 곧 마을 전체에 퍼지면서 매주 토요일마다 마을 주민들이 그 집에 모여 묵주기도를 드리고 연도를 바치게 되었다. 이후 다른 마을에서도 성모상을 보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하여 성모상은 1732년까지 주변 여러 마을을 순회하게 되었다. 1732년 필리페의 아들은 아주 작은 경당을 세워 성모님께 봉헌한 뒤 성모상을 신자들에게 공개하였다. 이로써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널리 퍼져 나가게 되었다.

 

- 구 성모 대성당

 

 

2) 아파레시다 성모 성지

 

성모상에 ‘나타나다’라는 뜻의 칭호인 ‘아파레시다’가 붙여지면서 사람들은 이 성모님을 ‘물의 성모 아파레시다’로 부르게 되었다. 1743년 주임신부 호세 알베스 빌렐라는 아파레시다 성모님과 그 기적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리우데자이루 주교에게 전달하고, 성모상을 모실 성당 건립 승인을 요청하였다. 그해 5월 5일, 주교는 세심한 검토를 거쳐 아파레시다 성모님을 공경하는 첫 번째 성당 건립을 승인하였다. 이듬해 5월, 가톨릭 신심이 깊은 과부 마르가리다가 부지를 기증하면서 성당의 건립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1745년 7월 25일 성모상이 엄숙한 행렬과 함께 새 성당으로 옮겨져 제단에 모셔졌고, 다음 날 성당은 ‘아파레시다 성모 성당’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26일에는 성모상에 대한 축복식과 첫 미사가 봉헌되었다. 

 

그러나 성당이 위치한 지반이 약해 시간이 지나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1844년에 새로운 성당을 짓기로 하였다. 기존 성당이 철거된 뒤 그 자리에 새 성당이 건립되어 1888년 6월 24일 ‘아파레시다 성모 성당’이 봉헌되었고 여러 차례 보수와 복원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1807년, 나폴레옹이 포르투갈을 침략하자 포르투갈 왕실이 수도 리스본을 버리고 식민지 브라질로 피난 오면서 식민지가 본국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쟁이 장기화하자 1815년 포르투갈은 브라질과 연합왕국을 수립하여 브라질은 더 이상 식민지가 아니게 되었다. 1821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이 끝나자 주앙 6세 국왕은 포르투갈로 귀환하고, 아들 돔 페드로를 브라질 총독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포르투갈에서 다시 브라질을 식민지화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1822년 8월 22일 브라질 총독 페드로는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를 순방하던 중 아파레시다 성지를 방문하였다. 그는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며 포르투갈과 브라질 사이의 복잡한 정치 상황이 평화롭게 해결된다면 브라질을 성모님께 봉헌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15일 후인 9월 7일, 돔 페드로는 브라질인들과 함께 포르투갈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는 독립 영웅으로 추앙받았고, 브라질 제국(1822~1889년)의 초대 황제 페드로 1세가 되었다. 브라질은 오늘날까지 9월 7일을 독립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페드로 1세 황제는 35세 때 결핵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의 손녀 이사벨 공주는 신심이 깊은 가톨릭 신자로 여러 차례 아파레시다 성모님을 찾아 기도하였다. 그녀는 브라질 제국의 20개 주와 수도를 상징하는 21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망토와 다이아몬드가 박힌 왕관을 성모상에 봉헌하였다. 약 20년 후인 1904년 9월 8일, 이 왕관은 교황 비오 10세의 지시로 거행된 성모상의 대관식에 사용되었다.

 

 

- 신 성모 대성당의 내부(좌) 대성당 중앙제단의 뒤쪽에 모셔진 성모상(우) 

 

 

1930년 7월, 교황 비오 11세는 아파레시다 성모님을 브라질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고, 지역 전통에 따라 성모님 축일을 10월 12일로 정했다. 이듬해인 1931년 5월 31일 당시 브라질의 수도였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성대한 수호성인 선포 축하 의식이 거행되었다. 아파레시다에 모셔져 있던 성모상은 특별히 개조된 열차를 타고 리우로 옮겨졌으며 100만 명 넘는 신자들이 축하 행사에 참석했다. 이후 브라질 전역에서 아파레시다로 순례하는 전통이 확산하면서 아파레시다 성모 신심은 브라질 가톨릭 신앙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 구 대성당과 신 대성당을 연결하는 고가 보도

 

 

순례자들이 계속 증가하자, 1917년 성모상 발견 200주년을 맞아 인근의 넓은 부지에 새로운 성지를 조성하기로 하고 부지 매입이 시작되었다. 1946년 9월 10일 초석이 놓였고 1955년부터 새로운 대성당의 건립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새 대성당은 네오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십자가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길이 188m, 폭 183m에 이른다. 내부에만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어 규모 면에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 되었다. 또한 야외 미사 때에는 30만 명을 수용할 수 있어 세계에서 가장 큰 성모 성지의 위상을 갖추었다. 새로운 대성당과 기존 대성당은 길이 392m의 고가 보도인 ‘파사렐라 다 페’로 연결되어 순례자들이 두 대성당을 모두 순례할 수 있다.

 

1982년 10월 3일부터 새로운 성지에서의 종교 활동이 시작됐으며 이에 따라 구 대성당에 모셔져 있던 아파레시다 성모상은 신 대성당으로 옮겨졌다. 1984년 브라질 주교회의는 아파레시다 성모 성지를 국가 성지로 선포하였고, 2016년 교황청은 아파레시다 대성당을 아파레시다 대교구 대성당으로 공식 승인하였다.

 

 

3) 교황의 축복과 봉헌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는 성모상 발견 250주년을 기념하여 성모님께 황금 장미를 봉헌했다. 이어 1980년 7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사 중인 아파레시다 성지를 순방하여 성지와 대성당의 제대를 축성하고, 새로 건립될 대성당에 바실리카(대성전) 칭호를 부여했다. 

 

 

- 성지를 축성하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좌) 브라질 주교회의에 참석한 교황 베네딕토 16세(중) 아파레시다 성모상에 입맞춤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우)

 

 

2007년 5월 12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제5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가 브라질에서 개막됐을 때 아파레시다 성지를 방문하여 성모상에 황금 장미를 봉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2013년 7월 24일 ‘세계청년대회’ 기간 중 대성당을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했으며, 2017년 10월 9일 성모상 발견 300주년을 기념하여 황금 장미를 봉헌했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3월호, 최하경 대건안드레아(서울대교구 도곡동성당)] 



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