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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행복의 길을 묻다30: 신앙 · 희망 · 참사랑을 통해 찾는 신앙인의 행복한 직장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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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3-18 ㅣ No.987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행복의 길을 묻다] (30) 신앙 · 희망 · 참사랑을 통해 찾는 신앙인의 행복한 직장 생활


수많은 ‘김 부장’들의 드라마, 최고의 반전은 ‘하느님과의 우정’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라는 긴 제목을 가진 드라마가 많은 직장인을 울컥하게 했다. 이 드라마를 보거나 이야기를 들은 직장인들은 자신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떠올렸다. 치열한 성과 경쟁과 구조조정의 불안, 회사 정책과 인간적 양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직장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실적 압박 속에서 승진을 앞두고 동료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며, 구조조정 소문에 마음이 무너졌다가 다시 버티는 장면들이 반복된다. 주인공 김 부장은 겉으로는 성공한 중간관리자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무엇이 정말 옳은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내 인생의 마지막 기준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있는 사람이다.

 

거의 손에 잡은 듯했던, 자신의 성공을 놓치고 좌절하는 김 부장을 바라보며,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 자신이 개인적으로 가진 능력과 강점만으로 충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신덕(對神德)’, 곧 신앙(fides), 희망(spes), 참사랑(caritas)에 대한 설명이다. 토마스 성인은 좌절하고 방황하는 김 부장과 같은 우리에게 무엇을 조언해 줄 수 있을까?

 

 

자연적인 덕과 구별되는 초자연적인 대신덕

 

토마스는 ‘사회적 동물’인 우리의 자연적 상태에 적합한 덕들과, 하느님께 다가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정화하는 덕들을 날카롭게 구별한다. 토마스는 “자연적 행복에 비례하는 도덕적 덕 외에도, 초자연적 행복에 비례하는 다른 덕들”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이 덕들을 ‘대신덕(virtus theologiae)’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향주덕(向主德) 또는 ‘신학적 덕’이라고도 번역되는 이 덕들의 대상은 바로 하느님이기 때문이다.(I-II,62,1) 여기에는 지성에 있어서 ‘신앙’, 의지에 있어서 하느님을 향하는 ‘희망’ 그리고 그분과 일치하게 해주는 ‘참사랑’이 속한다.(I-II,62,3)

 

이 덕들은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자격을 얻을 수 있게 하려고 ‘하느님이 인간의 영혼에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따라서 토마스는 이를 인간의 반복된 행위로 얻어지는 ‘획득된 덕’(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지성적 덕이나 도덕적 덕)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주입(注入)된 덕’이라고 불렀다.(I-II,62,1; II-II,24,12)

 

‘획득된 덕’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는 인간사와 지상의 행복에 적합하게 만들어주지만, ‘주입된 덕’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삶에 적합하도록 만들어 준다. 세례성사를 받을 때 이 덕이 주입되면 그리스도인의 이성과 의지는 은총에 의해서 자연 본성을 넘어서는 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처럼 대신덕은 하느님이 그리스도인에게 부여하는 자유로운 선물이다. 

 

대신덕으로서의 믿음(신앙)과 희망과 사랑은 순수하게 인간적인 영역에서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대상들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김 부장이 잘 보여주듯이, 인간적인 영역에서 믿음과 희망에는 통찰력 부족, 무력함 등의 결함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불확실한 믿음과 희망을 진정한 덕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대신덕인 희망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것에 대한 바람이다. 

 

토마스에 따르면, 희망이란 덕의 대상은 참된 행복인데, 이는 “획득하기 어렵지만 가능한 미래의 선”(II-II,17,7)이다. 마찬가지로 신앙과 참사랑이라는 다른 대신덕도 하느님의 결함 없는 권위와 전능한 능력으로 지탱되기 때문에 인간 행위가 지닌 불확실함과 무력함이 없다.

 

 

대신덕을 통해 변화되는 그리스도인

 

좌절했던 김 부장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우선 둘째 덕인 ‘희망’을 집중해서 살펴보자. 토마스는 희망을 자만(praesumptio)과 절망(desperatio) 사이의 중용이라고 분석한다.(I-II,64,4). 실제 직장 생활에서 이 중용을 찾기 어려운 것은 대기업 문화로 대표되는 경쟁 사회가 이 두 극단으로 끊임없이 유혹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초반의 김 부장처럼 승진에 성공하고 인정받을 때 우리는 “내 능력과 인맥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자만으로 흐르기 쉽다. 중반 이후의 김 부장처럼 구조조정 대상이 되면, 김 부장은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고 느끼는 절망으로 기울고 만다.

 

만일에 김 부장에게 희망의 덕이 주입되었다고 가정해 보면, 그는 한편으로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최종 목적이 “이 회사,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는 희망을 통해서 하느님을 우리 자신을 위한 행복의 원천으로 사랑하게 된다. 희망이라는 덕은 성과주의와 번아웃 사이에서 김 부장이 절망과 냉소에 빠지지 않도록, 최종 목적을 향한 긴 호흡을 제공한다.

 

신앙이 없는 김 부장들은 실적 압박과 보고서 조작의 유혹, 상사의 눈치와 양심 사이에서 흔들리게 된다. 그러나 그가 신앙이라는 덕을 갖추게 된다면, 사내의 가짜 뉴스와 음모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고, 양심적으로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분별하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드라마에서 열정적으로 노력하던 김 부장은 팀을 위해 희생하고 부하 직원을 감싸는 모습에서 ‘좋은 상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동기가 팀원의 선과 공동선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평판·이미지·승진이라면, 토마스의 기준에서 이는 “참되지만 불완전한 덕” 혹은 “덕의 거짓된 유사품”일 뿐이다.(II-II,23,7). 그가 참사랑을 갖추게 된다면, 그의 모든 덕과 선택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의 공동 행복이라는 최종 목적에 맞게 재정렬하여, 팀 운영과 회사 정치 속에서도 타인을 수단이 아닌 친구이자 이웃으로 대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신덕은 좌절하는 수많은 김 부장을 단지 ‘생존·승진·몰락’의 서사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인간은 ‘자기 행위의 결정자’로서, 대신덕 안에서 자연적인 덕을 구체적 상황에서 실현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만드는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I-II,62,4; 63,3) 

 

대신덕은 이렇게 그리스도를 믿는 현대 직장인의 평범한 하루를, 하느님과의 우정에 의해 통합된 인격의 드라마로 변형시키는 놀라운 힘으로 작용한다. 직장을 다니는 그리스도인은 회사를 무대로, 신앙·희망·참사랑이라는 은총의 습성을 따라 자신의 직장 생활을 초자연적 행복을 향한 여정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톨릭신문, 2026년 3월 15일, 박승찬 엘리야 교수(가톨릭대학교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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