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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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38: 역사상 최초의 교황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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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2-16 ㅣ No.1985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 (38) 역사상 최초의 교황 방한


순교 터전에 새긴 평화의 입맞춤… 상처 입은 땅에 치유의 씨앗 심다

 

 

-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5월 3일 김포공항에 도착해 순교자의 땅에 엎드려 입을 맞추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순교의 터전에 감격의 입맞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3일 김포공항 도착 -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평화의 사도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반도의 땅을 밟았다. 그리고 이 땅에 입 맞추었다.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해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무서울 것이 없나이다’(시편 22)라는 성경 말씀을 따라 무자비한 테러, 전쟁, 파괴, 분쟁 등 온갖 악의 세력, 그 위험을 뚫고 땅끝까지라도 달려가 평화와 사랑의 빛을 비추어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그는 마침내 머나먼 동방의 한쪽 끝, 대한민국에 당도, 이 땅과 이 민족을 축복했다.”(가톨릭신문 1984년 5월 6일자 1면)

 

‘이 땅에 빛을’이라는 주제로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맞아 진행된 일련의 사업들은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하나의 커다란 분수령을 이뤘습니다. 이 역사적인 때를 맞아 추진된 각종 기념행사와 정신운동, 사목회의 등은 선교 3세기를 여는 야무진 발걸음이었습니다.

 

더욱이 5월 3일,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교황 방한은 교회 내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한국교회의 존재를 널리 알림으로써 선교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당시 교회 언론이었던 가톨릭신문은 매주 발행되는 주간지 외에도 5월 4일과 5일 특별호를 발행하여 200주년 기념행사와 교황 방한 관련 소식, 특히 103위 순교 성인의 탄생 소식을 자세하게 전했습니다.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김포공항에 도착하던 그날의 기쁨과 감격을 가톨릭신문은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VIVA PAPA! 교황만세! 교황기와 태극기를 흔들면서 뜨겁게 뜨겁게 열광하는 김포 국제공항 주변의 열기는 사랑하는 최고의 목자를 마음으로부터 반기는 한국교회 전체 신자들의 진심을 숨김없이 대변해 주고 있었다. … 4만 킬로의 여정이 무색할 만큼 정정한 모습으로 트랩 위에서 두 팔을 번쩍 위로 올린 교황은 환호하는 인파에 첫 축복을 내렸다. 그리고 그가 첫발을 디딘 순교의 땅에 감격 어린 입맞춤을 했다.”

 

공항에 내려 순교자의 땅에 입을 맞춘 교황은 곧바로 절두산으로 향해 한국교회의 초석이 된 순교자들에 대한 경의를 표했습니다. 교황은 5월 3일부터 7일까지 닷새 동안 이 땅에 머물며 오직 사랑과 화해만이 모든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그리스도의 참 평화를 이룰 수 있음을 일깨웠습니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교황은 6일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해 103위 순교 복자를 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또한 같은 날 오후 5시 전국 사목회의 개막식에 참석하여 복음화 3세기를 여는 한국교회를 격려했습니다. 이에 앞서 교황은 4일, 여전히 국가 폭력의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광주를 방문해 화해를 통해 아픔을 치유하자고 위로했습니다.

 

-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방한 둘째날인 5월 4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거행된 화해의 날 행사에서 신자들의 환호에 응답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격동의 시기에 주는 예언자적 메시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한은 한국교회가 보편교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선포되는 긍지와 자부심의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 전체에 천주교회의 위상을 높이는 절호의 기회인 동시에, 격동의 한국 현대사 안에서 무거운 사회적·정치적 메시지를 던진 예언자적 소명의 발로이기도 했습니다.

 

1984년 당시 한국 사회는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집권한 제5공화국 치하였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정통성 부재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교황 방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이를 홍보의 기회로 삼으려 했습니다. 반면 한국교회는 이를 통해 선교지 교회에서 벗어나 보편교회의 지역교회로 발돋움하려는 열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방한 첫날인 5월 3일, 교황은 전두환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언론에 의해 화려하게 치장된 이 만남은 학살자로 지탄받는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듯한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가톨릭신문은 5월 4일자에서 이 회담을 비중 있게 다루며 공동성명 전문을 실었습니다. 당시 교회 언론 역시 당국의 검열과 정권과의 갈등을 피하려 했던 교회 지도부의 입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 가톨릭신문 1984년 5월 4일자 3면.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광주의 화해, 위로와 단죄

 

하지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참된 의도는 광주행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교황은 방한 이틀째인 4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화해의 미사를 주례했습니다. 교황은 행사장으로 가는 길에 1980년 5월 계엄군의 집단 발포와 시민들의 저항이 있었던 ‘피의 현장’ 금남로를 가로질러 행진했습니다. 정권은 이 거리를 ‘폭도들의 난동 현장’으로 규정하고 기억을 지우려 했으나, 교황은 바로 그 거리를 선택했습니다.

 

윤공희(빅토리노) 대주교의 증언에 의하면, 교황의 차량이 금남로를 지날 때 연도에 늘어선 시민들은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는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습니다. 교황이 그들의 거리를 지났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에게 가해졌던 폭력을 단죄하고, 훼손된 존엄성을 회복시키는 치유의 의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교황은 강론을 통해 “용서하고, 화해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마음을 가질 때, 악의 권세는 딛고 서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악의 권세’는 1984년의 맥락에서 진실을 은폐하고 무력을 행사하는 ‘구조적 악’을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황은 직접적인 정치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용서의 전제 조건으로 ‘정의의 실천’을 명시함으로써 불의를 강력히 단죄했습니다. “악의 권세는 딛고 서지 못할 것”이라는 선언은 독재의 종식이라는 역사적 필연성을 선포한 것이며, 광주 시민들에게는 상처의 치유이자 승리의 약속이었습니다. 교황은 강론 후 정권의 방해를 뚫고 5·18 희생자 유가족들을 직접 만남으로써, ‘폭도’라는 프레임을 무력화하고 그들에게 강력한 위로를 전했습니다.

 

 

구조적 개입으로서의 교황 방한

 

이처럼 교황 방한은 한국 사회와 교회의 상황에 대한 구조적 개입의 의미를 지닙니다. 교황이 전한 메시지는 즉각적이든 지체된 것이든 우리 사회에 깊은 성찰과 삶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는 198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재방한과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984년 방한은 군부 독재기, 순교자의 영광과 짓밟힌 인권의 회복이 핵심이었습니다. 1989년 방한은 제44차 세계성체대회 당시, 민주화 진전 속에서 민족의 화해와 통일, 성체와 나눔이 강조되었습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은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신자유주의 양극화 속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연대와 교회의 쇄신을 촉구했습니다.

 

다만, 한국교회가 교황의 메시지들을 때로는 선별적으로 수용하거나 유보함으로써 온전한 자기 쇄신의 기회로 삼지 못했던 부분은 항상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가톨릭신문, 2026년 2월 15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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