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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문학과 그리스도교 영성2: 일리아드 - 아킬레스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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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14:21 ㅣ No.2234

[문학과 그리스도교 영성] (2) 「일리아드」 : 아킬레스의 눈물


거대한 분노 무너트린 진정한 힘, 폭력 아닌 용서와 화해였다

 

 

“분노.”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트로이전쟁의 마지막 몇 주간을 묘사하고 있는 호머의 「일리아드」는 이 단어로 시작한다.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맹장 아킬레스의 분노이다. 기원전 1200년경 발발한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의 전쟁 이야기는 500년 후인 기원전 8세기경 대서사시로 승화되었다. 전쟁 막바지에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스는 두 번 분노한다. 그리스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은 아킬레스가 선물로 받은 트로이 여인을 빼앗아 버린다. 전쟁의 영웅에게 주어진 선물은 단순히 전리품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명예와 영광을 상징한다.

 

아킬레스는 빼앗긴 소유물이 아니라, 짓밟힌 명예에 대해 분노한다. 단 한 번도 숙여보지 않은 자존심에 치명적 내상을 입었다. 여기에 대한 분노로 아킬레스는 더 이상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군에게 차마 분노를 적극적으로 표출할 수 없었던 그는, 간접적 침묵의 폭력을 행사한다.

 

- 아킬레스가 프리암에 대한 연민의 정과 함께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흘린 눈물은,  완고하였던 분노의 마음을 마침내 무너트렸다. 개빈 해밀턴 <아킬레스에게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간청하는 프리암>

 

 

문제는 그가 전장에서 철수하게 되자, 그동안 전쟁에 거의 이겨왔던 그리스 군대는 궤멸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킬레스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스의 투구와 갑옷을 입고 전투에 뛰어들며, 다시 아킬레스가 전장에 돌아온 것처럼 보여줌으로써 그리스 병사들의 사기를 드높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파트로클로스는 트로이의 왕자이면서 최고의 명장인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한다. 형제와 같았던 파트로클로스가 죽자, 아킬레스는 두 번째 분노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킬레스가 트로이 적군들에게 직접 무자비한 폭력을 저지른다.

 

특히 제21권 강변에서의 전투는 피에 굶주린 아킬레스의 잔인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아킬레스의 인간성 파괴에 이르는 분노의 표출은 헥토르를 죽이고, 그 주검을 돌려주지 않고 갖은 모욕을 저지르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작가의 상상력 안에서 가장 잔인하고 사악해질 수 있는 인간의 한 모습이 조각된다.

 

아킬레스는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 안에 품었던 분노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였다.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 결과는 인간성 파괴까지 이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였다. 어쩌면 작가는 트로이전쟁보다, 인간 본성 안에서 매일 매 순간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싸움에 더 관심이 있는 듯하다. 20세기 초 영국의 대표적 가톨릭 작가인 G. K. 체스터턴은 “모든 삶이 전쟁이기 때문에, 일리아드는 위대하다”라고 극찬하였다.

 

아는 선배가 가족들과 자동차로 유럽 여행을 하였다. 형수님과 자존심 대결하느라, 2시간 넘게 알면서도 잘못된 길로 운전하였다. 결과는 어린 두 아이의 몸과 마음의 탈진으로 하루를 까먹었다고 한다. 유다인과 이민족 사이의 적개심이 여전히 남아 있었던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문에서 바오로 사도는 “화가 나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질 때까지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4,26)라고 권고한다. 내면의 분노는 우리의 눈빛, 말, 행동을 통해 폭력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호머는 동정심이라는 감정으로 용서와 화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아킬레스는 당시 관행을 어기고, 적장 헥토르의 주검을 모욕하고 트로이 진영에 보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의 주검을 찾기 위해 늦은 밤 아킬레스를 찾아가는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암 왕은 인간성의 회복을 보여준다. 노구를 이끌고 홀연 단신으로 적진을 찾은 프리암의 모습에 아킬레스와 그리스 장군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더욱이 자기 아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온갖 모욕을 자행한 그 두 손에 입맞춤하는 프리암의 행동은 현실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식의 주검을 찾기 위해, 용서할 수 없는 대상을 용서하는 아버지의 처절한 사랑이다. 그러면서 아킬레스에게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여 / 나를 동정하시오. 나는 그분보다 더 동정받아 마땅하오”라고 호소한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를 간청하는 프리암의 호소에 분노로 가득 찼던 아킬레스의 마음은 누그러진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분노의 마음을 풀어주는 것은 강한 물리적 힘이 아니라, 한 아버지의 용서하는 연민이다.

 

프리암은 “아킬레스의 발 앞에 쓰러져” 헥토르를 위하여, 아킬레스는 자신의 아버지와 파트로클로스를 위하여 “엉엉 울었다”. 두 사람의 “울음소리가 온 집 안에 가득 찼다.” 학자들은 이 장면을 감정의 정점으로 여기며, 주제의 흐름이 아킬레스의 분노에서 연민으로 바뀌는 지점으로 해석한다. 아킬레스의 눈물은 프리암에게 느끼는 연민과 화해의 상징이다.

 

성경에서도 회심과 용서의 표시로 몇 날 며칠을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던 다윗 임금,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는 한 여인, 밖으로 나가서 몹시 많이 울었던 베드로 사도 등 다양한 눈물을 만날 수 있다. 초대 교부들도 눈물의 은사를 두 번째 세례라고 여기며, 신앙생활에서 눈물을 강조하였다. 눈물은 하느님의 마음도 움직인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으며 울 때, 동정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자 잘못에 대해 울도록 권고하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사막의 철학자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는 “무엇보다도 눈물을 구하라. 울음이 당신 영혼의 거친 완고함을 부드럽게 할 것이다”라고 초대한다. 그냥 눈물이 아니라 측은지심의 눈물이다. 아킬레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프리암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흘린 눈물을 통하여, 완고하였던 분노의 마음을 마침내 무너트렸다. 진정한 승자가 되었다.

 

호머의 작품들은 로마제국 귀족 자녀들의 필독서였다. 철인 황제라 불리는 제16대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마음의 평정심을 기초로 하는 스토아 철학의 정수인 「명상록」에서 “범법자들도 나와 같은 혈통이나 집안은 아니지만, 나 자신과 연관이 있는 본성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과 나는 신성을 지닌 동일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라고 고백한다. 프리암이 아킬레스를 찾아갔던 이유는, 분노의 폭력성과 잔인함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아킬레스조차도 마음과 마음이 통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대략 180명의 인물을 다루면서, 24권의 책과 1만 5000행 이상의 운문으로 쓰인 「일리아드」는 서양 문학의 초석이다. 동시에 다양하게 갈라져 있던 고대 그리스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정체성의 뿌리였다. 더 나아가 작품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과 묘사는 시대와 장소를 넘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사람 안에 내재하는 측은지심을 깨닫도록 빛을 밝힌다.

 

[가톨릭신문, 2026년 1월 18일, 김치헌 바오로 신부(예수회·서강대학교 영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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