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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어떤, 교회: 교회는 추억을 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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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회] 교회는 추억을 담아
익어 가는 가을에 이 글을 읽고 있으시겠지만, 저는 8월 말 여름의 끝자락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주일학교 아이들과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지난 시간을 돌아봅니다. 여름 행사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아이들과 함께 청도에 있는 동곡공소에서 보낸 시간입니다. 동곡공소는 저에게 아주 특별한 공간입니다.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까지 1년 쉴 수 있는 시기에 저는 사제 성소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 시기에 동곡공소로 파견을 가게 되었고 6개월의 짧은 시간이지만 공소에서 보낸 시간은 사제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와 기쁨을 미리 맛볼 수 있게 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본당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아침 일찍 첫 버스를 타고 청도성당에 가던 그 기억, 5일마다 열리던 장날의 기억, 새벽에 일어나 공소 신자 분 농장에 가서 일손을 돕던 기억, 공소를 쓸고 닦으며 마당에 잡초를 뽑았던 기억, 공소 예절을 위해 복음을 묵상하며 매주 준비했던 묵상 글, 공소 신자 분들과 함께 나눴던 식사와 담소. 그런 소소한 일상과 일상을 채웠던 공간과 시간, 감정과 생각을 추억하며 지금의 저를 돌아보게 되었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때의 내가 그리던 사제의 모습과 사제로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이들의 캠프를 위해 온 곳이지만 저에게는 지금의 나를, 앞으로의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향수는 돌아가려는 마음이다.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인 향수는 동시에 떠나온 시간을 향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떠나온 곳(과거)이 돌아갈, 돌아가려는 곳(미래)이 된다. 돌아갈, 돌아가려는 곳은 떠나왔던 곳이다. 새로운 장소가 아니다. 그의 미래는 과거에 있다. 새로운 시간이 아니다. 떠나왔던 곳, 과거의 시간을 단순히 추억하거나 복원하려는 것이 아니다. 떠나왔던 곳/시간으로 가서 자신의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이다.” - 이승우, 「고요한 읽기」
본당에서 많은 교우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런 말씀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신부님, 옛날에 저희 자모회 할 때 일이 많아 힘들었는데 그때가 참 행복했고 재밌었어요.”, “그 신부님 계셨을 때,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생각해 보면 그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예전에 일도 많고 서로 다투기도 하고 고생도 했지만, 그때의 본당 생활이 좋았고 재밌었다는 그 말씀이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평범한 공간이 특별한 공간으로 기억되는 순간이 있죠. 추억을 간직할 때 그렇습니다. 매일 지나치면서 마주하는 사람들과 반복되는 일들 안에서 오고 가는 말과 감정이 그곳을 다른 공간으로 존재하게 하죠.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매일 먹어야 할 빵과 포도주로 오신 것, 그리고 매일 당신을 ‘기억’ 하고 ‘행동’하라 말씀하셨던 건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그곳인 특별한 곳이 되기를 바라신 마음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각자의 어려움과 슬픔을 나누며 돕고, 때로는 서로에게 모진 말로 상처를 주고 받았지만 화해를 청하며 주님을 기억했습니다. 바깥 사람들에게는 사람의 몸과 피를 먹는 신기하고 이상한 모임이었지만, 주님을 기억하며 행동했던 사람들이 모인 그곳은 이 땅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공간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공간에 온기를 만들어 준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그냥 밥 한 끼가 아니었던 교회, 많은 사람이 미사만 보고 가는 보통의 성당이 아니었던 그 공간, 힘든 순간을 함께 나누었던 기도 모임, 고생이었지만 행복했던 성전 건립과 제단체의 경험,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내 표정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레지오 회원들. 이렇게 우리가 지난 시간을 추억하며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머물지 않고 이 익숙한 현실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열망이 다시금 피어 오르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월간 빛, 2024년 10월호, 박태훈 마르티노 신부(성김대건성당 보좌)] 0 8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