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5일 (목)
(백)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보도자료] '소년의 집' 아빠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 가경자 선포 감사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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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국관리자 [commu1] 쪽지 캡슐

2015-03-28 ㅣ No.972

 


‘소년의 집’ 아빠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 가경자 선포 감사미사

명동대성당서 28일(토) 염수정 추기경 집전

프란치스코 교황, 지난 1월 가경자(시복 후보자) 선포



한국에서 전쟁고아들과 가난한 10대들을 돌보며 ‘소년의 집’과 ‘소녀의 집’을 설립한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1)(1930~1992, 미국명 알로이시오 슈월츠, Aloysius Schwartz)의 가경자 선포 감사 미사가 오는 28일(토) 오전 9시30분 명동대성당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집전으로 봉헌된다.


미사에는 염 추기경을 비롯해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 이한택 주교(전 의정부교구장), 유경촌 주교(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 교구장대리),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국장 정성환 신부) 등 성직자와 마리아수녀회, 그리스도수도회 수도자들, 마리아수녀회 후원회장인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세례명 실바노) 등이 참석한다.


미사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국장 정성환 신부)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회장 김성훈 신부)가 공동주최하며, 소 알로이시오 신부가 창설한 마리아수녀회와 그리스도수도회가 미사를 주관한다. 서울대교구는 이날 미사를 통해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의 가경자 선포를 축하하고, 가난한 이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돌봤던 그의 정신을 기린다.


미사 후에는 명동대성당 코스트홀 3층 명례방으로 자리를 옮겨 조촐한 다과회를 진행하며 내외빈의 축하인사 낭독이 이어진다.


△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 가경자 선포 감사미사가 오는 3월 28일(토) 명동대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 집전으로 봉헌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월 소 몬시뇰을 가경자로 선포했다. 미국 워싱턴 대교구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 출신으로 가경자 칭호를 받은 이는 소 몬시뇰이 최초이다. 


무상으로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며 그리스도의 이웃사랑을 실천한 그는 1983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으며, 84년과 92년 두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에 지명되기도 했다. 소 몬시뇰은 1975년 국민 훈장 ‘동백상’을 수상했다.



■ 고아 신부(新婦)의 결혼식에 손을 꼭잡고 입장하던 신부(神父)아빠


미국 워싱턴 출신인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은 1957년 6월 사제품을 받은 직후 한국전쟁 이후의 비참한 상황을 당시 루벵 가톨릭대에서 유학하던 부산교구 장요셉 신부(1912~1990)를 통해 전해 듣고 한국 부산교구로 입적해 그해 12월부터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 선교 초창기 부산에서 가족 단위 보육원을 시작한 소 알로이오 몬시뇰이 보육원 아이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1964년 사진. (출처「가난한 사제의 선물(가톨릭출판사)」수록사진) )



이후 그는 부산과 서울에 ‘소년의 집’과 ‘소녀의 집’을 설립하고, 고아들과 부랑아들, 가난한 가정의 10대 아이들을 돌봤다. 소 몬시뇰은 이들을 돌보는 마리아수녀회를 1964년 부산에서, 그리스도수도회는 1981년 5월 서울에서 창설하기도 했다. 1981년에는 서울시 요청으로 서울 시립 갱생원(현 은평의 마을)을 인수받아 위탁운영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수녀, 수사들과 전쟁 고아들의 엄마, 아빠가 된 소 몬시뇰은 장성하여 결혼하는 졸업생들의 아버지로서 아이들의 결혼식 입장을 함께하기도 했다. 건강이 나빠져 미국으로 다시 건너갔을 때는 ‘한국 자선회’를 설립하고 모금활동을 벌이는 등 전쟁의 여파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기 위한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 기관 출신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결혼식에 참석한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 (출처 「알로이시오 신부(가톨릭출판사)」수록 사진)



이후 그는 필리핀의 가톨릭 마닐라 대교구장 하이메 신 추기경의 초청으로 마닐라 대교구에 마리아수녀회 공동체를 개원하고 이곳의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며 헌신했다. 1989년부터는 근위축성경화증인 루게릭병을 앓았지만, 휠체어에 의존하면서도 기도와 가난한 이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1992년 필리핀 마닐라 소녀의 집에서 조용히 눈감았다. 


현재 그의 유지는 마리아수녀회가 이어가고 있다. 한국, 필리핀, 멕시코, 과테말라, 브라질, 온두라스에 설립된 ‘소년의 집’과 ‘소녀의 집’은 25,000여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으며, 100,0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소 몬시뇰이 설립한 마리아소녀회 회원은 현재 280여명, 그리스도수도회는 20여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다. 


 

▣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 약력


1930년 9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출생

1953~1957년

벨기에 루뱅 가톨릭대학교 신학 대학 재학

1957년 6월

미국 워싱턴대교구 사제수품

1957년 12월

한국 천주교 부산교구에 입적

1961년 3월

미국 워싱턴시에서 모금단체 ‘한국 자선회’ 설립(현재는 Asian Relief.Inc.로 개칭)

1961년 12월

한국 재입국

1962년 6월

부산 ‘송도성당’ 부임

1964년 8월

마리아 수녀회 창설

1965년 12월

가족 단위 고아원 ‘송도 가정’ 시작

1966년 8월

부산 아미동 빈민지역과 암남동에 진료소 개설

1968년 12월

아미 고등공민학교 설립

1969년 7월

부산시 행려환자 구호소 인수(위탁운영, 사하구 장림동 소재)

1969년 9월

마리아 의원 진료소 개설(부산 보수동)

1969년 10월

부산 암남동에 ‘소년의 집’ 건립

1970년 10월

‘마리아 수녀회’ 구호 병원 개원(부산 암남동)

1974년  3월

부산 ‘소년의 집’ 중학교 개교

1975년  1월

서울시로부터 ‘소년의 집’ 인수하여 위탁 운영

1975년  5월

국민 훈장 ‘동백장’ 수상

1976년  3월

부산 ‘소년의 집’ 기계공업학교 개교

1977년  8월

서울 ‘소년의 집’ 개교

1978년   7월

부산 ‘소녀의 집’ 개원

1981년   1월

서울 시립 갱생원(현 은평의 마을) 인수, 위탁운영

1981년   5월

행려인 봉사를 위해 ‘그리스도수도회’ 창립

1982년   6월

서울 ‘소년의 집’ 구내에 무료 병원 ‘도티 기념 병원’ 개원

1983년   8월

필리핀 마닐라 ‘막사이사이상’ 수상

1984년   2월

부산에 미혼모 복지시설 ‘마리아 모성원’ 설립

1985년   8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소년?소녀의 집’ 시작

1989년 10월

ALS(루게릭병) 진단

1990년   2월

몬시뇰 서임

1990년   8월

필리핀 세부 탈리사이에 ‘소년의 집’ 개원

1991년   7월

필리핀 카비테주 실랑에 ‘소년의 집’ 개원

1991년 10월

멕시코 찰코에 ‘소년의 집’ 개원

1992년 3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선종


1) 몬시뇰 (Monsignor) : 주교품을 받지 않은 가톨릭 고위성직자에 대한 경칭. 보통 덕망 높은 성직자가 교황에게 몬시뇰 칭호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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