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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별별 이야기: 누군가가 이해되지 않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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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8-11 ㅣ No.1049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84) 누군가가 이해되지 않을 때

 

 

대학생인 마태오는 ‘세상을 가장 의미 있게 사는 길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고민을 했다. 그 결과 마태오는 입대를 미루고 필리핀의 작은 섬으로 1년간 선교봉사 활동을 떠나고자 마음을 먹었다.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희생과 봉사의 삶을 실천해 보고 싶었다. 마태오는 선교사를 도우며 아이들에게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쳤다. 아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해 결국 가난이 대물림된다는 생각에 마태오는 정성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시간이 흘러 귀국을 하루 앞둔 어느 날, 마태오는 밤잠을 설치며 작은 선물꾸러미를 만들고 있었다. 그동안 정들었던 아이들과 헤어지려니 마음이 너무 힘들어 아이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적은 과자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다음날 마태오는 공항에 배웅 나온 아이들에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별의 선물을 나누어주었다. 행여나 아이들의 울음보가 터져 공항이 눈물바다가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애써 슬픔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선물을 다 받아든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환호성을 지르며 쏜살같이 공항을 뛰쳐나갔다. 전날 밤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전전긍긍했던 마태오에게는 충격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마태오는 작별인사도 없이 공항을 빠져나가는 아이들 모습에 서운한 마음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바보같이 자신만 아이들을 짝사랑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지난 봉사생활이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귀국한 후 마태오는 아이들에게 봉사했던 마음이 기쁨과 충만함이 아닌 분노와 배신감으로 바뀌어 버린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이들을 향한 분노의 감정 때문에 앞으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자신을 괴롭혔다. 자신이 문제가 있음을 깨달은 마태오는 상담을 청하게 되었다.

 

마태오는 타인을 위해 봉사와 희생의 삶을 살고 싶은 신심 깊은 청년이었다. 그는 희생과 봉사의 삶을 통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몸소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 마음이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하지만 마태오는 타인을 향한 사랑의 실천 안에 자신도 인식하지 못했던 인간적 욕구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것은 ‘사랑과 인정’의 욕구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마태오는 이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적어도 자신에게 감사의 마음 정도는 표현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정도 예의를 기대하는 것이 정말 잘못된 마음일까? 마치 자신이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 봉사활동을 한 것처럼 치부되는 사실에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어느새 마태오는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으로 참회와 통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왜 인사도 하지 않고 줄행랑을 쳤는지에 대한 다른 관점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이들은 한국에서 봉사활동을 나온 수많은 형과 누나 그리고 오빠와 언니를 만나왔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별의 아픔은 그 어떤 감정보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별의 고통에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이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감정의 치유책이 이별의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억지로 슬프지 않은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이별의 감정으로부터 고통받지 않으려 하지 않았을까?

 

마태오는 이런 생각을 미처 해보지 못한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자신의 욕구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해했다. 마태오는 아이들에게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며 그들을 다시 찾아가겠다는 다짐과 함께 상담실을 나섰다. 누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먼저 자신을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공자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음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8월 8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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