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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앙과 삶2: 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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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4-09 ㅣ No.611

[‘교회와 나’ 새롭게 알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앙과 삶을 배웁시다!]

 

 

2. 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인가? ① 바로 지금 우리 시대 공의회

 

“하느님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라고 강의 중 신학생들이나 신자 분들(교리 신학원)에게 질문하는 경우가 있다. 미리 작정한 것이 아닌데도 어느 순간 꼭 그 물음을 던질 때를 만나곤 한다. 지면 관계상 그 대답들을 다 나열할 순 없으니, 1순위를 차지하는 답만 알리자면, 단연 ‘사랑’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16)라고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으니, 어찌 이 답을 틀리다 할 것인가. 그러나 그 ‘사랑’이 하느님께만 유보되어 있는 특성일까? 예컨대 석가모니(불교)도 ‘자비’를 말하고, 공자(유교)도 ‘인(仁)’을 말하는데, 이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숙고해 보아야 한다. 이 타종교들의 창시자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하느님만의 특성이 과연 무엇일까를... 그것은 ‘살아계시는’ 하느님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석가모니와 공자가 위대한 성인(聖人)일 수 있을지언정 명백히 지금 살아있진 않다. 언제나 살아계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우리 선조들도, 오늘의 우리도, 미래의 후손들도 동시대인으로서 그분을 만날 수 있고, 그분과 늘 살아있는 체험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서설이 좀 길었다. 누군가 왜 옛 사건(1962-1965)을 새 시대의 탄생이라 하고, 게다가 오늘 우리 시대 공의회라고 말하는지 의구심을 품을까 하여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먼저 모셨다. 이 살아계신 하느님은 교회 안에서 또 교회를 통해서 선포되기에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개별적 하느님 체험이라도 그러하다), 이 교회가 우리에게 전하는 최고 권위의 가르침은 공의회를 통해 천명된다. 그리고 교회사의 마지막 공의회이자 여전히 진행 중인 현재의 공의회가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이다.

 

따라서 현대 가톨릭 교회의 토대와 중심과 목표와 방향, 가톨릭 교회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다 해도, 또는 일상에 묻혀 잊고 있었다 해도, 교회를 이루고 있는 모든 이에게, 그가 사제이든, 수도자이든, 본당사목회장이든, 전례봉사자이든, 청년 회원이든, 주일학교 어린이이든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해당되는 말이다. 바로 그 때문에 이 공의회의 정신과 믿음을 알아야 할 필요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그 활동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그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활동의 방향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척도가 되어 줄 것이다.

 

이렇게 이 공의회는 전체 가톨릭 교회사적 의미로 보나 그 가르침의 의의로 보나 현대 가톨릭 교회에 최고 권위를 지닌 아주 중대하고 획기적인 사건이 되는데, 그렇다면 이 공의회가 이전의 공의회들과 다른 결정적 특징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이전 공의회들이 세상의 오류들을 다루면서 그것을 단죄해 왔던 것과 달리,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교회’ 자체를 다루었고 교회 자신에 대해 물었다는 데에 있다. 곧 교회를 전체적, 중심적 주제로 삼아 교회와 교회 자신, 교회와 세상, 그리고 교회와 타종교와의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시대의 징표를 인식하며 바로 보고자 했고, 그 답을 교회의 쇄신을 통해, 곧 교회의 원천이자 미래이며 교회실존의 중심인 그리스도를 기초로 찾고자 한 것이다. [2021년 4월 4일 주님 부활 대축일 대전주보 4면, 서명옥 로사(대전가톨릭대학교 기초신학 강사)]

 

 

2. 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인가? ② 사목 공의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어떤 공의회인지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의회 이전과 이후의 차이를 비교해보는 것이다. 지난 회에 일별했듯, 이전 공의회들이 교의진술에 반하는 세상 오류들을 다루고 그것을 단죄해 왔던 것과 달리, 이 공의회는 어떤 것도 단죄하는 일 없이 오로지 ‘교회’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았다. 그 때문에 ‘교회에 관한 교회의 공의회’(K. Rahner)라는 이름을 얻은 이 공의회는 교회가 누구인지 또 교회가 어떻게 자신의 신앙사건과 함께 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계속 존재할 수 있는지 물으며, 그 답을 현재 세상과 오늘날의 모든 사람과 대화하는 가운데 찾고자 했다. 곧 세상을 위한, 세상의 교회이어야 하는 소명을 분명히 인식한 것이다. 그에 따라 공의회는 닫힌 교회의 창문을 열고 개방과 소통으로의 변화를 이루어 내는데, 그것이 종전까지와는 획기적으로 달라진, 교회 자신과 세상과 타종교에 대한 교회의 자세로 나타난다. 이 세 가지 변화는 그대로 이 공의회의 본질적 핵심사건이자 앞으로 공부해 나갈 큰 줄기이므로 계속해서 다루어질 터, 오늘은 다만 그 엄청난 변화를 가능케 한 동력이자 길이 무엇인지를 살필 참이다.

 

그것은 바로 ‘사목!’ 사실 이 공의회의 성격을 특징짓는 단 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사목’이라 할 만큼 ‘사목’의 의미와 중요성의 재발견은 이 공의회가 지니는 교회사적, 교의학적 의의에 지대한 기여를 한다. 그렇다면 사목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 말은 본래, (이론적이 아닌) 실제적 ‘영적 돌봄’(영혼을 보살핌)이란 의미다. 이 사목의 원리를 독일 신학자 싸우어(H. Sauer)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만드는 실존형태’라고 탁월하게 묘사한다. 곧 역사상 실재한 (우리와 같은) 한 인간, 나자렛 예수가 신앙의 대상인 그리스도(구원자)가 되는, 실제 삶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실제 삶 속에서 하느님이 설명되고 드러나는 것인데, 이는 인간 예수의 삶(말과 행위)에서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되고 드러난다는 의미다. 이를 ‘교회’로 바꿔 말하면, 교회의 가르침이 개인의 신앙사와 유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르침이 곧 (교회의) 삶으로 드러나고 삶이 가르침 안에 표현된다는 것이다. 공의회를 소집한 교황 요한 23세는 이러한 가르침(교의)과 삶(사목)의 밀접한 상관성을 강조하면서, 이 공의회가 ‘사목 공의회’임을 명백히 제시한다.

 

이 사목의 개념은 흔히 본당에서 신자들을 돌보는 활동에 국한되는 것으로 오해되곤 하는데, 사목은 그러한 기본 기능과 더불어 신학의 모든 문제, 그리스도교적 삶의 모든 영역과 사회의 모든 분야와 관계한다. 온전한 의미에서의 사목은 영적 활동과 세속적 활동을 포함하며, 따라서 인간 사회에 주어져 있는 모든 정신적, 물질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결국 사목적이라는 것은 하느님이 계시고 활동하시는 곳, 곧 인간들이 있는 그곳에 존재하고 활동하는 것이다(예수님의 삶을 보라!). 사람들을 위해 거기 있는 것이고 그렇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며, 이것이 교회의 본질을 총체적으로(교리와 실천 모두)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의회는 하느님의 백성(교회) 전체가 인간과 세상에 대하여 봉사하고 연대하는 것을 사목으로 이해한다. [2021년 4월 4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대전주보 4면, 서명옥 로사(대전가톨릭대학교 기초신학 강사)]

 

 

2. 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인가? ③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들어본 이라면, 아마 이 단어도 함께 들었을 것이다. 아조르나멘토는 이 공의회의 모토이자 주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교회 쇄신과 현대세계로의 적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교황 요한 23세는 (지난 회에 살핀) ‘사목’의 중요성과 함께 ‘쇄신’의 공의회를 강조하는데, 사실 이 둘은 나누일 수 없는 관계다. 온전한 사목을 위해서는 언제나 쇄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황은 개회사에서 ‘오랜 유산의 본질과, 그 유산이 제시되는 방법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하면서, 거룩한 ‘전승’을 가능한 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간 곁으로 가져오되 변화된 생활환경과 사회구조를 고려해야 할 것과, 오류의 단죄가 아니라, ‘그 교리의 영향력을 모자람 없이 설명할 것’을 촉구한다. 이를 위한 방법은 첫째로 ‘원천으로의 복귀’, 둘째로 앞을 내다보고 ‘시대의 징표’를 읽으며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이해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로써 공의회는 그 방향을 새롭고도 분명하게 정립하게 되는데, 그것이 곧 아조르나멘토에 담겨 있다.

 

이렇게 아조르나멘토와 함께 ‘시대의 징표’를 읽는 것은 이 공의회의 화두가 된다. 사실 그리스도교는 거듭 새로이, 시대의 징표를 알아보라는 예수님의 요청(루카 12,54-56 참조)에 다가가고자 노력해왔다. 그래야만 교회는 그때그때의 상황 안에서 하느님이 교회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 원하시는지 파악할 수 있다. 교회는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증명하는, 곧 하느님 나라를 말과 행동으로 선포하는 이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미 살펴보았듯, 사목이 그리스도교적 삶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과 관계한다는 점에서 모든 시기에 걸쳐 그 시대의 징표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은 교회의 쇄신과 사목에 필연적 전제가 될 것이다.

 

총괄적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목과 쇄신을 기본 정신으로 하여 크게 세 분야에 걸쳐 본질적이고 획기적인 변화를 이루어내는데, 곧 교회내적 쇄신(교회 자신에 대한 이해), 변화된 세계 이해(교회와 세상과의 관계), 교회일치적 접근(타종교와의 관계)이다. 그것을 위해 공의회는 총 4회기(1962.10.11.-1965.12.8.)에 걸쳐 총 16개 문헌을 결과물로 내놓는다: 4개 헌장(전례, 교회, 계시, 사목); 9개 교령(사회매체, 동방교회, 일치, 주교, 수도생활, 사제양성, 평신도, 선교, 사제생활); 3개 선언(그리스도인 교육, 비그리스도교, 종교자유). 특기할 만한 것은 이 가운데 오직 「사목헌장」만이 이 공의회 고유의 새로운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만 공의회 회기가 1년 연장되었다는 사실이다. 진정 사목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지 않는가? [2021년 4월 18일 부활 제3주일 대전주보 4면, 서명옥 로사(대전가톨릭대학교 기초신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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