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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사유하는 커피42: 고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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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3-16 ㅣ No.647

[사유하는 커피] (42) 고난의 의미


고난은 차라리 희망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살기 힘들다”는 소리는 더 잦아졌다. 팬데믹이 오래 이어지면서 물질적으로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사람이 많은 데다 정신적으로 피로감이 누적된 탓이겠다. 인류사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이 한 시기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던 것 같다. 인간이므로 사유를 통해 연역적으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인류는 그렇게 시대마다 새로운 길을 헤쳐나갔다.

 

현인들의 지혜는 언제나 등불이 된다. 기원전 카이사르의 시대를 살아간 키케로는 “둠 스피로 스페로(Dum spiro spero)”라고 했다. ‘숨 쉬는 한 희망은 있다’는 뜻을 지닌 이 말은 2000년이 넘도록 난관에 처한 숱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성자’인 슈바이처 박사는 ‘혼자만의 고통’이라는 착각에서 우리를 구해냈다. 그는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다. 그럴 때에는 더 큰 아픔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이 덜어주고 있다고 생각하라”며 인류를 달랬다. “새들은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는 정호승 시인의 외마디는 곱씹을수록 힘이 된다.

 

해결책을 찾으려면 어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본질을 파헤쳐야 한다.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어려움을 표현하는 단어들은 뉘앙스에 따라 다양하다. ‘고통’은 사전적으로는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이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까지 인간에게 고통이란 없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은 ‘수고(고통을 받아들임)’를 해야 했고, 그것이 곧 ‘노동(labor)’이다. 고통은 죄를 씻는 도구이자 성인으로 가는 관문인 셈이다.

 

예수와 싯다르타는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상황을 거쳐야 했다. ‘수난(passion)’은 특별히 예수가 인류 구원을 위해 받으신 고통을 지칭한다. 예정된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인상이 강하다. 불교도와 힌두교도에게는 ‘고행(ascetic practices)’이란 단어를 더 자주 활용한다. 고행에는 깨달음이라는 목적성이 있고, 스스로 육체를 견디기 힘들도록 만든다. 이 전통의 뿌리는 심신이원론을 펼친 플라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신을 맑게 하는데 감각(육체)은 방해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감각을 최대한 배제한 상태에서 이데아 또는 본질, 이상향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은 서구인에게는 신념이 됐다.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은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모습과 의미가 다르겠다. 죽음의 사신쯤으로 보고 공포에 떨고 있을 수 있고, 인류를 새로운 길로 몰아주는 채찍으로 보며 도약의 카이로스(Kairos)를 노리고 있을 수 있다. “고통 없이는 배울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직관과 “고통받은 사람 때문에 세계는 더욱 전진했다”는 톨스토이의 역설은 지금의 우리에게 유용하다.

 

하물며, 나무에게도 고난은 행복이다. 품격을 바꿔 주는 약속 같은 것이다. 포도나무는 타들어 가는 듯한 혹독한 가뭄을 겪은 해에야 그레이트 빈티지 와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물을 찾기 위해 뿌리가 40~50m 깊숙하게 내려가 영양분과 미네랄을 끌어올린 덕분이다. 가뭄 속에서 당도가 더욱 높은 포도알이 맺어지고, 따라서 도수가 높고 강건한 와인으로 변모해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된다. 커피나무도 해발 2000m에서 밤마다 얼어 죽을 것 같은 혹한을 이겨내야 씨앗이 깨끗한 산미와 풍성한 단맛을 품을 수 있다. 김장철 대관령 고랭지 배추를 찾는 이유와 같은 이치이다.

 

“스페로 스페라(spero spera)”라는 인사말이 운동처럼 번졌으면 좋겠다. “나는 희망한다. 당신도 희망하라.” 고난은 차라리 희망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3월 14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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