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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규칙이 문제인가, 사람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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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1-11 ㅣ No.1025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56) 규칙이 문제인가, 사람이 문제인가 (상)

 

 

30대 초반의 레지나는 우울감과 직장에서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상담을 청했다. 자신감이 없고 항상 주눅이 들어 있으며 대화가 부자연스러웠다. 상담 중에도 눈을 맞추기 어려워했고 머리를 숙인 채로 말을 띄엄띄엄 이어갔다. 몇 마디 말하다가도 문득 상대의 눈치를 살피면서 급하게 말을 얼버무렸다. 마치 자신의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를 항상 염두에 두는 듯이 보였다. 상대가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곧바로 입을 닫을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레지나는 대화 중에 말을 가로채거나 자신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과감히 관계를 정리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정작 어떤 이유로 레지나가 자신을 멀리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상대가 계속 그 이유를 물어와도 레지나는 모르쇠로 일관했고, 주변에 친구 하나 없이 외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레지나는 자신의 심리상태를 알고 싶어 심리검사를 해보았다. 우울과 무기력이 심각한 주요우울장애 진단이 나와 약물을 처방받았다. 하지만 약을 먹은 이후 정신이 멍하고 졸음에 시달렸으며 업무를 하기 어려울 정도의 무기력을 체험했다. 결국, 임의로 복용을 중단하였다.

 

레지나는 약물 없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기쁨과 감사의 기도를 통해 우울감을 해결하고 싶었다. 휴가를 내서 1주일 피정을 다녀오기도 했고, 매일 복음 묵상과 신심 기도문을 열심히 바치며 살았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도 특별한 마음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자 더 깊은 방황이 시작됐다. 아직 믿음과 기도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심리치료라도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레지나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했기에 생후 3개월부터 보모의 손에서 자랐다. 유년시절 경험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철저한 예절교육을 받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레지나의 마음속에 새겨진 가장 중요한 삶의 규범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요구하는 만큼 누군가는 그것을 들어주기 위해 피해를 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레지나는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는 말씀대로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타인을 최대한 높이는 삶이야말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이라 생각했다.

 

가족심리치료학자 버지니아 사티어(Virginia Satir)는 인간은 누구나 원가족 안에서 형성된 ‘가족규칙’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고 했다. 레지나의 무의식 안에도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가족규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가족규칙은 사회적으로 장려해야 할 규범이지만 항상 옳은 규칙이 될 수 없다. 어린 시절 무조건 수용되었던 가족규칙은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정되고 재조정돼야 한다. 쉽게 말해서 아이의 발달단계에 따라 도덕의식이나 윤리의식 역시 발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규칙은 합리적이고 융통성이 있으며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적용될 때 온전한 인간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중요한 교육적 자산이 된다. 하지만 가족규칙이 비합리적이고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경우엔 한 사람의 자존감을 파괴하고 그 인생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강력한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남에게 피해를 주어선 안 된다”는 가족규칙이 레지나의 우울과 대인관계 문제에 영향을 미쳤을까? 만일 그렇다면 이 가족규칙은 어떻게 수정 보완돼야 했던 것일까? 만일 규칙에 문제가 없다면 레지나는 도대체 어떻게 이 규칙을 받아들였기에 이런 심리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일까? 레지나를 돕기 위해서는 이처럼 가족규칙에 대한 분석이 필요해 보였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월 10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57) 규칙이 문제인가, 사람이 문제인가 (중)

 

 

레지나가 경험한 우울과 대인관계의 문제는 어린 시절 원가족으로부터 생겨난 가족규칙, 즉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가정에서 이런 교육을 받고 성장한 아이들은 원만한 사회성을 유지하면서 타인과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레지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살아온 행동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 대인관계가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대인기피증이 더 강해졌을 뿐 자신과 타인과의 모든 관계에 문제가 발생했다. 여기서 레지나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아무리 좋은 가족규칙도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가르치는 신념과 가치관은 아이의 심리적 기질과 특성을 고려하면서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수정, 보완되어야만 한다.

 

레지나의 가족규칙이 어떻게 조정됐어야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가족규칙의 또 다른 피해자인 요셉의 이야기를 풀어본다. 요셉은 극심한 죄의식과 대인기피증으로 50년째 은둔형 외톨이로 살고 있다. 요셉이 초등학교 3학년 때 1학년이었던 동생 안드레아가 동네 아이 세 명에게 폭행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요셉은 동생을 구하기 위해 세 명의 아이들에게 달려들었다. 서로 뒤엉겨 싸움이 벌어졌고 모두 상처를 입게 되었다.

 

싸움의 결과는 요셉의 부모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요셉과 싸움을 했던 아이 중에는 정치적으로 권력을 가진 집안의 아들이 포함돼 있었다. 사회적으로 약자로 살아온 요셉의 부모는 자식이 연루된 싸움으로 인해 수차례 경찰서에 불려다녔고 거액의 합의금을 내야 했다.

 

요셉과 안드레아는 너무도 억울했다. 요셉은 동생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싸움에 뛰어들었고, 이 과정에서 세 명의 아이들뿐 아니라 동생과 자신도 큰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싸움의 원인이나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덧 요셉의 부모는 이 사건의 가해자 부모로서 온전한 책임과 배상을 해야 했다.

 

요셉은 이 사건 이후 “싸우면 안 된다”는 가족규칙을 마음속 깊이 새겨 넣었다. 이 규칙은 부모가 직접 정해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친구들과 싸우다 보면 그럴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아이들을 더 위로해주고 돌봐줬다. 하지만 요셉은 부모가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스스로 이런 규칙을 만들어 내면 깊이 간직했다.

 

이 사건 이후 요셉은 친구들과 싸움이 발생할까 늘 두려운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혹여나 친구들과 갈등이 발생하게 되면 무조건 친구들에게 사과하고 양보했다. 요셉은 어떤 경우에라도 가해자가 되기보다는 피해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런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요셉의 태도는 친구들의 폭력을 가라앉히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더 괴롭히도록 만드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 싸우지도 못하고 줄곧 맞기만 하는 요셉을 친구들은 더 쉽게 괴롭힐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이런 현상은 계속되었다. 사람들과의 갈등이 발생할 때 싸우지 않기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면 오히려 사람들은 그런 자신을 경멸하고 이용했다. 요셉은 싸우지 않고 사람들과 잘 지내는 방법이 도대체 무엇인지 늘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없기에 결국 사람을 만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요셉이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삶을 선택하게 된 이유다.

 

레지나와 요셉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들의 심리적 문제는 어린 시절의 가족규칙이 이들이 성장하면서 수정되고 보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레지나와 요셉의 이야기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월 17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58) 규칙이 문제인가, 사람이 문제인가 (하)

 

 

레지나와 요셉은 모두 우울과 무기력을 호소하며 친구가 없고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또한, 두 사람의 심리적이며 관계적인 문제의 근원에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전해 받았거나 혹은 환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새겨진 가족규칙이 있었다.

 

레지나는 부모로부터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라는 교육을 받았고, 요셉은 자신의 행동으로 가족이 고통받은 경험을 통해 “싸우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 가족규칙은 두 사람의 삶의 방식과 대인관계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가족규칙을 가진 사람이 모두 부정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가족규칙을 통해 가정교육을 잘 받은 아이들이 오히려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지나와 요셉은 어린 시절 가족규칙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규칙을 성장하면서 수정 보완하지 못한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은 어떤 상황에서 예외가 될 수 있는지, 다양한 관계 상황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이 성장 과정에서 덧붙여져야 한다.

 

레지나는 대화 중에 친구가 딴청을 피우거나 자신의 말에 끼어들면 말문을 닫아 버리든가 친구를 멀리했다. 친구에게 화가 나거나 실망했기 때문이 아니라 재미도 없고 관심도 없는 자신의 말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레지나가 대화 중에 늘 상대의 표정을 살피는 버릇이 생긴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가족규칙이 레지나의 대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요셉은 관계에서 늘 피해자가 되어야만 했다. 갈등상황이 벌어지면 자신을 양보하고 항상 타인에게 맞추며 살아왔다. 요셉이 사회로부터 고립된 이유에는 남과 싸워서는 안 된다는 가족규칙 때문이었다. 요셉에게 있어서 현대의 경쟁사회는 이미 자신이 살아갈 수 없는 삶의 자리였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경쟁과 갈등은 근본적으로 다툼을 유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레지나와 요셉은 상담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 안에 존재하는 역기능적인 가족규칙, 즉 자존감을 낮추고 병리적인 대인관계를 맺게 하는 가치관과 신념체계를 건강하게 수정 보완하는 과정을 밟아 나갔다. 먼저 레지나는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라는 강제성을 띤 명령문을 “나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라는 자율성을 띤 희망문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더 세부적인 통찰로 언제 피해를 끼칠 수도 있는지 혹은 어느 조건에서 불가피하게 피해를 끼칠 수밖에 없는지,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확인했다. 그런 상황과 조건에서 피해를 끼치는 것이 정말 타인에게 피해가 되는지도 탐색했다.

 

요셉은 “나는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명령문을 “나는 싸우고 싶지 않다”는 희망문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싸울 수밖에 없는 예외적인 상황과 조건들을 확인하고 그것이 진정한 싸움이었는지에 대한 개념도 다시 정리했다. 예를 들어 갈등하는 상황은 서로의 욕구를 조정하는 과정이지 그 자체가 싸움은 아닐 것이다. 요셉은 자신 내면의 상처가 모든 갈등상황을 싸움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갈등은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해결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이해하면서 요셉은 점차로 세상을 향한 첫발을 내딛기 시작하였다.

 

국가와 사회의 법과 규범도 특정한 사람이나 상황에 적용할 때에는 상황윤리(Epikeia)와 판례를 필요로 한다. 마찬가지로 레지나와 요셉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계명인 ‘사랑의 율법’도 우리 각자의 삶의 환경과 상황에서 잘 적용될 수 있도록 자신만의 성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월 21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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