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가톨릭 교리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70: 삼위일체의 생명(731~735항​)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5-17 ㅣ No.2483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70. 삼위일체의 생명(「가톨릭 교회 교리서」 731~735항)

 

사랑하면 삼위일체의 생명을 모신 성전이 된다

 

 

아내의 환갑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고정원씨는 온 가족이 처참하게 죽어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아내와 80대 노모, 그리고 4대 독자 아들이 살해당했습니다. 그는 절망과 분노로 한강에 뛰어내려 자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끝내 하지 못합니다.

 

그는 아내가 다니던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범인이 잡힐 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한 것입니다. 성당에 앉아 혼자 울고 있는데 어떤 분이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듣더니 범인이 잡힐 때까지 예비신자 교리를 받으며 기다려보자고 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나중에 고정원씨의 세례 대부가 됩니다. 고정원씨가 루치아노라는 세례명으로 신앙인이 된 지 3개월이 지나서 연쇄 살인범 유영철이 잡혔습니다. 유영철은 아무 이유 없이 남의 집에 들어와 살인을 저지른 것이고 고정원씨의 가족은 그 피해자가 된 것입니다.

 

고정원씨는 예비신자 교리를 통해 자신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도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내가 분명 천국에 있을 텐데 사람을 미워하고 자살까지 하여 지옥에 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분노가 한없이 끓어올랐고 죽고만 싶었습니다.

 

고정원씨는 무작정 십자가 밑에서 기도했습니다. 밤새 기도했습니다. 용서할 힘을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밤새 기도하니 다음 날 몇 분 정도 미운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씩 유영철이 불쌍하게 여겨졌습니다. 고정원씨는 기도의 힘으로 유영철을 용서하였습니다. 유영철을 자신의 양자로 삼고 그의 자녀들까지도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리고 유영철을 용서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에게도 용서를 권하고 있습니다.

 

용서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럴 수 있었다면 주님께서 구원하러 오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이미 사랑할 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원죄로 이미 영적으로 “죽었거나 적어도 상처를 입었습니다.”(734) 사람을 사랑할 능력을 잃은 것입니다.

 

용서하려면 하느님께서 힘을 주셔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으뜸가는 선물로서 다른 모든 선물들을 포함합니다.”(733) 바오로 사도도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습니다”(로마 5,5)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성령의 힘’(사도 1,8)을 받아 가능해진 새로운 생명의 원리”(735)입니다. 사랑할 수 있다면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이고(갈라 5,22 참조), 성령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선물의 첫 결과가 바로 죄의 용서”(734)입니다.

 

이웃을 용서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선 성령을 담을 깨진 독부터 때워야 합니다. 인간은 원죄로 깨진 독처럼 태어납니다. 하느님을 모시려면 적어도 대죄는 없어야 합니다. 대죄는 하느님을 대적하는 것인데, 하느님을 대적하며 하느님의 성전이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에 기도하면 됩니다. 성령을 받는 시간이 기도입니다. 신앙인이라 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사랑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은 그 사랑을 성령을 통해 부어주십니다. 성령은 하느님 자신입니다. 그러니 사랑을 하면 이미 “삼위일체의 생명”(735)을 받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당신 사랑 자체이신 “삼위일체의 생명”(735)을 우리에게 선물하십니다. “‘성령의 친교’(2코린 13,13)는 교회 안에서, 세례받은 사람들에게 죄로 잃었던, 하느님을 닮은 유사성을 회복시켜 줍니다.”(734) 성령을 통해 부어진 사랑의 본성을 통해 원죄로 잃은 하느님과 닮음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교리서는 “우리 모두는 유일하고 동일한 성령을 받으므로 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들 서로 그리고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738)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과 하나가 되면 하느님 본성에 참여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싶다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삼위일체의 영원한 생명을 모신 성전이 됩니다.

 

[가톨릭신문, 2020년 5월 17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 수원가톨릭대 교수)]



2,638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