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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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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독경(牛耳讀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의 귀에 경전을 읽어 준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얼마 전 인공지능과 사람의 관계, 인공지능 시대의 보편적 기본소득, 그리고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별로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속으로 ‘소귀에 경 읽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생각해 보니 오히려 제가 그분들에게 ‘우이독경’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아파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까지 온 사람에게 인공지능의 미래가 얼마나 중요했겠습니까? 집의 기초가 흔들려 벽에 금이 간 사람에게 미래 사회의 기본소득이 얼마나 귀에 들어왔겠습니까? 아파트 누수 때문에 큰 공사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제 이야기가 얼마나 마음에 와닿았겠습니까? 저는 말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아픔은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세상의 권력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용서를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누가 더 죄인인지를 따졌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희생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지를 다투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람들을 먹이셨지만, 사람들은 빵만 보았고, 그 표징 속에 담긴 하느님의 사랑은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도 제자들은 그 뜻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귀에 들어갔지만, 마음으로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구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를 돌보아라. 고아와 과부를 외면하지 마라. 정의를 실천하여라. 우상을 섬기지 마라.” 그러나 백성은 듣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가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해도 듣지 않았고, 아모스가 가난한 사람을 짓밟지 말라고 외쳐도 듣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계속 선포되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닫혀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완고함은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듣고도 자신을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듣는다’라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 때문에 내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우이독경’은 많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말하지만, 자녀의 힘든 마음은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부는 서로 자신의 옳음을 말하지만, 상대방의 외로움은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업무와 성과를 이야기하면서 동료가 겪는 어려움은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좋은 신앙 이야기와 성경 말씀을 많이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눈물은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병든 사람에게 “기도하면 됩니다.”라고 너무 쉽게 말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믿음을 가지십시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아픔을 먼저 듣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말도 ‘우이독경’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눈먼 이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라고 물으셨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는 그들의 실망과 슬픔을 먼저 들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는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박해를 받아 로마로 끌려가면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단순히 귀로만 들은 것이 아니라 삶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는 말씀을 그는 자신의 생명으로 응답했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로마로 끌려가는 길에 여러 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신자들에게 일치와 사랑, 믿음을 당부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고통보다 교회의 신앙을 걱정했습니다. 그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가장 깊이 알아들은 사람이었습니다. 들었기 때문에 변했고, 들었기 때문에 사랑했고, 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미사에서 듣고, 성경에서 듣고, 기도 안에서 듣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정말 알아듣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말도 들어야 합니다. 말의 내용만 듣지 말고 그 말속에 담긴 걱정과 눈물과 외로움까지 들어야 합니다. 어쩌면 신앙은 말을 잘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잘 듣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성 이냐시오처럼 주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듣고, 예수님처럼 이웃의 아픔을 가슴으로 들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우이독경’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살리는 복음이 될 것입니다.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 알려 주실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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