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일 (화)
(녹) 연중 제22주간 화요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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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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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8-30 ㅣ No.191573

이병우 신부님_<연중 제22주일>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16,24)

 

'내가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이고,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인가?'

 

오늘 복음(마태16,21-27)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시는 말씀'과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원(정체)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보면 신앙생활은 어렵지 않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단순하게 예수님을 따라가면 되니까요.

예수님을 따라가는 방법도 복음 안에 다 드러나 있고.

때문에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까?' 라고 묻는다면, 이 물음은 참으로 바보스런 물음이 됩니다.

 

방법은 알지만, 복음을 가까이 하면 그 방법을 다 알 수 있지만,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은, 알고 있는 그것을 삶의 자리에서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곰곰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들여다 보면, 종종 예수님의 부재 속에서 살 때가 많습니다.

내가 지금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신자라고 하면서, 역설적이게도 내 안에 예수님이 안 계실 때가 있습니다.

내 좋을 대로, 내 방식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 때가 있고, 그렇게 성당을 다닐 때가 있습니다.

이는 잘못된 신앙생활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나 자신을 버리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이고,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인가?'

 

저는 그것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육적인 것들, 육의 행실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육의 행실들을 버리는 것이 나의 십자가라고 생각합니다.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미 경고한 그대로 이제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갈라5,19-21)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육의 행실들을 나의 의지와 믿음의 힘으로 버리려고 애쓰는 여정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여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 것이 비워지는 것만큼 채워주십니다. 성령을 채워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한가지는, 겨자씨 한 알만 한 작은 믿음 안에서 내 것을 버리려고 노력하는 일입니다.

믿음과 희망 안에서 함께 노력합시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할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12,1ㄴ-2)

 

(~ 바룩2,35)

 

조욱현 신부님_자기 자신을 끊어버려라. 

 
1. 베드로의 신앙과 걸림돌
지난 주일,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마태 16,16)라는 신앙 고백으로 복음을 정점에 올려 놓았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이 드러난다. 예수님은 그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23절)라고 말씀하신다. 신앙의 반석이 한순간에 하느님 계획의 걸림돌이 되었다. 이 장면은 인간의 신앙 여정에서 늘 일어나는 긴장과 갈등을 보여 준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지만, 동시에 인간적 욕망과 세속적 합리성으로 그분의 뜻을 재단하려는 유혹 속에 산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베드로는 스승을 사랑했으나, 사랑의 방식이 하느님의 뜻과 달랐다. 사랑이란 그분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이지, 고통을 피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In Matthaeum Homilia 54,6 의역) 하느님의 뜻은 인간의 계산을 초월한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23절)라는 말씀은, 오늘 우리 신앙의 본질을 일깨워 준다. 신앙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지, 하느님을 내 뜻에 맞추는 것이 아니다. 
 
2. 십자가의 길, 예수님의 순명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당할 수난과 죽음을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부활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21절) 이것은 숙명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경륜에 대한 자발적 순명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랑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 자신을 제물로 내어놓으셨다.”(De Trinitate XIII,10,14 의역) 십자가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중심이며, 사랑의 최고 표현이다. 따라서 신앙인은 십자가를 피해야 할 고난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동참하는 길로 이해해야 한다. 
 
3.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져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24절) 이 구절은 제자직의 헌장이라 불릴 만하다. ‘자기 부정’(自己否定)을 성 아우구스티노는 “자기중심적 사랑의 죽음”이라 표현했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자기 안에 머무르던 사랑을 버리고, 하느님 안에서 사랑하도록 변화되는 것이다.”(Sermo 96,1 의역)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참된 자신을 발견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덧붙이신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25절) 이 말씀은 복음의 역설이다. 세상은 ‘붙잡는 자가 얻는다.’라고 말하지만, 복음은 ‘내어놓는 자가 얻는다.’라고 말한다. 
 
4. 그리스도의 모범: “비움의 길”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다.”(필리 2,7) 그분은 하느님과 동등하신 분이시지만, 자기를 버리고 순명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셨다. 이 비움의 신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낮추시어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이 그분 안에서 다시 하느님께 나아가게 하려는 것이었다.”(Adversus Haereses III,18,1 의역)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단순히 고통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 삶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자신을 내어놓는 행위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신앙의 성숙이다. 
 
5. 몸을 산 제물로 바치라: 바오로의 해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한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2) 이 말씀은 십자가의 길을 예배의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즉, 우리의 모든 일상적 행위와 희생이 하느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교리서에서 이렇게 풀이한다. “참된 희생은 하느님께 대한 내적 예배의 표현이며, 우리의 전 존재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사랑의 행위이다.”(2100항 요약)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십자가는 고통의 상징이 아니라, 사랑의 제사이다. 우리의 인내, 봉사, 헌신, 용서, 겸손이 바로 그 제단 위에 드려지는 제물이다. 
 
6. 예언자 예레미야와 신앙인의 내적 싸움
오늘 제1독서의 예레미야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 당신의 말씀이 심장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이상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예레 20,9)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분의 사랑에 사로잡혀 결국 순명한다. 그의 고통과 투쟁은 신앙인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십자가란 외부의 형벌이 아니라, 내 안에서 하느님의 뜻과 나의 뜻이 부딪히는 자리다. 
 
7. 결론: 잃음으로 얻는 생명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26절) 이 질문은 단지 윤리적 권고가 아니라, 존재론적 물음이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세상의 것들은 결국 우리 자신을 잃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을 때,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렇게 요약한다. “인간은 자신을 완전히 내어줄 때에만 자신을 완전히 발견한다.”(General Audience, 1980년 1월 16일 요약) 그리스도인의 길은 자기 상실을 통한 자기 회복, 곧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길이다.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불타는 마음으로, 베드로처럼 넘어지더라도 일어나며,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김건태 신부님_십자기는 우리의 희망 

 

[말씀]

1독서(예레 20,7-9)

구약성경의 예언자들 가운데 예레미야만큼 비극적인 삶을 산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동족들이 조금도 원하지 않던 것, 예를 들어 다가올 망국의 징벌을 예고하는 일에 전념했으며 그 덕분에 그들로부터 저주를 받기 일쑤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한때 예언직의 포기를 의미하는 침묵의 삶, 하느님의 말씀 선포를 멀리하려는 삶을 꿈꾸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의 숙명적인 을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예시하는 고통받는 종의 삶을 온몸으로 살아간 예언자였습니다.

2독서(로마 12,1-2)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도 바오로는 신앙이 선사해 주는 새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를 밝히고 난 다음 이제 실천적인 결론에 이르고자 합니다. 이 결론은 오로지 하느님을 향한 삶의 여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주님께 온전한 영적 예물로 바치면서 신앙인은 사람들이 제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의 행태를 지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실천해나감에 있어 올바른 분별력이 요구됩니다.

복음(마태 16,21-27)

지난주 복음에서 주님께서 그를 기초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밝힌 신앙의 사도 베드로는 오늘 주님으로부터 혼쭐이 납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사탄은 하느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존재이기에 하느님 계획의 완성인 십자가를 향한 여정에서 주님의 길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사탄의 행위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로막을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사고방식을 저버리고 주님처럼 그리고 주님과 함께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 나갈 때 비로소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새김]

지난주 말씀의 주제였던, 일정한 조직을 갖춘 제도로서의 교회’, 그러나 교회의 이 모습 안에서 세속적인 성공의 단면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교회는 세속적 투쟁에서의 승리라든가, 어려운 상황들을 일거에 제거하는 능력을 뽐내본 적이 없습니다. 교회의 운명은 오히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렇게 보이듯이, 실패작으로 보이는 경우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세속적 힘이 없다고 해서, 세상의 어두운 상황 앞에 눈을 감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또한 교회의 존재 의미이기도 하다. 어둠의 세력을 거슬러 싸워야 하며, 이때 주님께서 주신 가장 확실한 보증은, 생명은 죽음을 통해서 탄생한다는 믿음입니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이를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주님을 가로막고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희망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나서는사람들로 교회가 채워질 때, 교회는 비로소 하느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하는 충직한 도구가 될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나서는사람들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내려놓는 노력과 함께,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지니고 있어야 주님을 따를 자격과 권리가 부여된다는 상식적인 이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살아가며 겪게 되는 고통을 대표하는 요소로 십자가를 이해한다면, 고통 없이 주님을 따를 수 없다는 순리 말입니다. 나아가, 고통 없는 삶이란 있을 수 없으니, 결국 삶의 질이 어떠하든 주어진 삶에 충실한 모습, 그것이 바로 주님을 따르는 길임을 확인합니다.

 

 

 

이번 한 주간, 나에게 주어질 상황, 그것이 고통이라면 더욱더,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말고 기꺼이 짊어지고 묵묵히 주님 뒤를 따라 걸어가는, 자신감 넘치는 하루, 나아가 이웃의 십자가가 정말 무거워 보인다면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태주는, 마음 넉넉한 한 주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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