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교회 안의 참 신앙 - ①) 영명축일은 축하받는 날이 아니라 성인의 삶을 따르는 날입니다 |
|---|
|
성인들이 돌아가신 날은 무슨 날일까요?
축하하는 날일까요? 성인들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 나라에 계십니다. 우리는 성인의 축일에 그분들의 거룩한 삶과 신앙을 기억하고, 그분들을 공경하며,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의미는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금요일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는 성금요일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축하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깊이 묵상하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부활절에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맞이하는 영명축일 역시 그 의미가 분명해야 합니다.
영명축일은 생일처럼 사람에게 축하받는 날이 아닙니다. 세례 때 자신의 세례명으로 정한 성인을 기억하고 공경하며, 그 성인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영명축일을 맞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축하가 아니라 기도입니다.
공동체가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미사를 마친 뒤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며, 그 사람이 자신의 세례명의 성인을 본받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도 형제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8. 너희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11) "'형제처럼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다. 엄마를 에워싸고 모인 형제들처럼 말이다. 오늘날에는 사제들끼리도 더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고 도와주지도 않으니, 보고 있는 이 엄마의 티없는 마음이 날마다 여간 괴롭지 않다! 이기심이 형제애의 자연스러운 발로(發露)를 모조리 질식시키고 말아서, 많은 내 아들들의 영혼에는 싸늘한 냉혹과 어둠만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형제애는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또한 성모님께서는 기도 안에서 하나 되고 형제애 안에서 하나 되라고 거듭 당부하십니다. (295. 나의 사도들이 되어라,2-3) "기도 안에 하나로 뭉쳐라. 그렇게 하면 전구하고 보상하는 이 어머니의 사업에 힘을 얻어 주고, 너희의 삶 전체를 부드럽게 변모시켜 주실 성령을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선물로 받게 된다. 그리고 '사탄'이 오늘날 유난히도 유혹하고 상처입히고 속이는 너희 형제들에게, 내가 극진히 사랑하는 그 아들들에게, 너희가 큰 도움을 주게 된다. 형제애 안에 하나로 뭉쳐라. 서로 사이의 사랑이 더욱 자라게 하여, 내 '원수'의 간계를 쳐부수어라. 원수는 특히 너희 나라들에서 형제적 이해와 상호 사랑 -- 나는 이것을 너희가 완전히 생활화하기 바란다. -- 을 가로막는 장애를 일으켜, 너희를 분열시키려 애쓰고 있다." 이처럼 영명축일 역시 서로를 축하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의 삶을 본받아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영명축일이 점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명축일을 마치 생일을 맞은 것처럼 박수를 치고 축하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마리아 심마의 인터뷰에서도 오늘날 미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박수에 대한 지적이 나옵니다.
그녀는 “교회는 기도하는 곳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감실 안에 예수님께서 현존하시는데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을 뒤로하고 사람에게 환호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묻습니다.
특히 인기 있는 강연을 하는 사제나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 예수님께 시선을 돌리게 하는 대신 사람의 자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지적은 오늘날 영명축일을 맞아 미사 안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모습도 돌아보게 합니다. 영명축일은 성인을 기억하고 공경하는 날도 아니고, 성인의 삶을 본받겠다고 다짐하는 날도 아니며, 영명축일을 맞은 이를 위해 기도하는 날도 아닌, 그저 그 사람을 축하하는 날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납니다.
성인의 삶을 돌아보지도 않고, 그 성인을 본받으려고 하지도 않으며, 영명축일을 맞은 사람을 위해 함께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사람을 축하하는 일은 남았지만, 성인을 기억하고 본받는 일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교회 안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사랑과 선의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영명축일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성인입니다. 성인을 기억하고, 성인을 공경하며, 성인을 본받고, 그 성인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명축일을 맞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내 세례명의 성인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다시 성인의 삶을 닮아가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영명축일은 나를 높이고 나를 축하하는 날이 아니라, 성인을 바라보고 그 성인을 닮아가겠다고 다짐하는 날이어야 합니다.
이 의미가 사라지고 단순한 축하와 박수만 남는다면, 우리는 영명축일의 본래 의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 역시 세상의 방식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신앙의 본래 의미를 바꾸어 버리는 모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인을 바라보아야 할 자리에 사람이 중심이 되고, 성인을 본받아야 할 자리에 축하가 중심이 되며, 기도해야 할 자리에 박수가 남는 것입니다.
영명축일의 참된 의미는 사람을 축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세례명으로 정한 성인의 삶을 본받아 그 길을 따라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3005 | (메주고리예 비밀 - ①) "메주고리예 목격증인, 첫째 비밀은 ‘심각한 지역적 사건’이 될 ... | 2026-08-28 | 박소영 |
| 3004 | (교회 안의 참 신앙 - ②) 성당의 중심에는 성체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 2026-08-28 | 박소영 |
| 3003 | (교회 안의 참 신앙 - ①) 영명축일은 축하받는 날이 아니라 성인의 삶을 따르는 날입니다 | 2026-08-28 | 박소영 |
| 191529 |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학자 기념]|1| | 2026-08-28 | 박영희 |
| 191528 | 양승국 신부님_[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1| | 2026-08-28 | 최원석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