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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목자는 바쁜 사람이 아니라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사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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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가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착한 목자가 무엇인지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교회 안에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 말씀과 성모님의 메시지를 통해 착한 목자가 어떤 사람인지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10,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말씀은 단순히 양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하루 종일 바쁘게 활동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당신의 생명을 양들을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을 앞세우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으셨습니다. 따라서 착한 목자의 기준은 얼마나 바쁜가가 아니라, 누구의 뜻에 따라 자신을 내어주는가에 있습니다.
목자가 자신의 판단과 계획에 따라 양들을 열심히 돌볼 수 있습니다. 많은 일을 하고,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하루 종일 활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활동의 중심에 자신의 뜻과 계획이 있다면, 활동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착한 목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도 얼마든지 바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위험을 경고하십니다. (93. 완전한 위로자들,11-12) "너희가 사로잡혀 압도당하곤 하는 활동이란 것이 흔히는 잠이기 십상이다. 또한 세상에 영합하여 그 공감과 환영과 이해를 받으려고 애쓰며 사는 너희의 태도도 잠이다. 인성(人性)에서 나오는 그런 전부가 너희를 짓누르는 잠이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이어서 물으십니다. (93. 완전한 위로자들,13) "오늘날에도 기도하며 깨어있고자 하는 내 아들들은 어디에 있느냐?"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시키십니다.
(마태 26,41)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성모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은 활동에 사로잡혀 기도를 잃고 자신의 힘과 계획에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476번 메시지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476. 너희의 사제적 충실,18) "이 시대에는 허다한 내 아들 사제들이 얼마나 기도에 소홀한지 모른다! 교회 내부에 이 내적 상처가 어느 정도로 광범위하고 깊게 파고들고 있는지를 너희가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너희 역시 나와 더불어 많은 눈물을 쏟게 될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활동에 빠져 있다. 모든 사도직의 효과를 활동과 사목계획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너희를 통해 역사하시며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 너희는 무익한 종이며 가난한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목자가 자신의 활동과 사목계획을 앞세우기 시작하면, 정작 자신을 통해 일하시는 예수님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더 많은 활동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기도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476. 너희의 사제적 충실,19) "기도로 돌아오너라. ‘성체 예수님’을 너희 기도의 중심으로, 너희 삶의 비결로, 너희 사도적 활동의 핵심으로 삼아라."
그러나 여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활동에 빠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활동이 세상의 뜻과 풍조를 따르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를 더욱 엄중하게 경고하십니다. (122. 너희 마음의 순교,2-7) "어떤 사제들은 진보의 추구라는 명분으로 단지 세상을 위한 일꾼이 된 채, 그 풍조대로 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무절제한 활동으로 기도를 대치하고, 줄곧 안락한 생활과 오락을 찾는 것으로 극기의 고행을 대치한다. 성덕 대신에 죄, 특히 순결을 더럽히는 죄에 점차로 굴복하여 빠져들고 그것을 한층 정당화시킨다. 그들은 걸어다니는 시체, 회칠한 무덤(마태 23,27)이 되었다. 여전히 사제로 자처하지만, 내 아들 예수님께서 더는 사제로 인정하시지 않는 자들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자들이 때때로 가장 존경받고, 교묘하게 출세의 길을 트는가 하면 책임자의 위치도 확보하는 것이다. 반면에 충실한 사제들은 대부분 가장 박해받고 무시당하고, 때로는 고의적인 따돌림마저 당한다. 그래서 암흑이 퍼져나가고 사탄은 무엇에나 연막(煙幕)을 치려고 노리니, 배교자가 나날이 불어난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이 곧 그리스도께 충실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복음에 충실하게 머무는 것은 고통과 희생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아야 하고, 세상의 인정과 환영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이러한 충실과 내적 희생을 ‘마음의 순교’라고 부르십니다. (122. 너희 마음의 순교,10-11)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준비시켜 온 너희 마음의 순교이다. 각자 이 엄마의 성심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의 내적 희생을 바치기 바란다. 이 암흑의 시기를 고스란히 다 받아들여라. 어둠에 싸인 온 교회의 순교가 마음 속에 살아 있게 하여라. 불충실이 점점 퍼져 칭찬도 받는 지금이니, 너희는 충실과 신뢰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먼저 기도하며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요한 10,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따라서 착한 목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양들에게 들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목자가 먼저 그리스도를 따라갈 때, 비로소 양들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듣고 그 뜻에 따라 양들을 인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쁜 목자와 착한 목자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76. 너희의 사제적 충실,20) "오늘의 너희 ‘아기 엄마’처럼 너희도 항상 작은 사람이 되어라." 왜 작은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자신의 능력과 계획을 앞세워 모든 것을 스스로 이루려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오직 주님께서 자신을 통해 일하셔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히 바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뜻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만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비우고 작아질 때, 우리의 활동도 비로소 우리 자신의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해 하시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착한 목자의 길입니다.
착한 목자는 바쁜 사람이 아닙니다. 착한 목자는 자신을 작게 낮추고 그리스도의 뜻에 자신을 내어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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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301 |
착한 목자는 바쁜 사람이 아니라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사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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