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30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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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3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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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6:38 ㅣ No.190365

녹용은 예로부터 귀한 약재로 여겨졌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효능이 좋은 녹용은 시베리아의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살아가는 사슴의 녹용이라고 합니다.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혹독한 추위와 거친 환경을 견디어 낸 생명력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삶도 그렇습니다. 편안함만이 사람을 깊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시련이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고, 눈물이 사람을 깊게 만들고, 고통이 사람을 성숙하게 만듭니다. 지난 517일에 본당에서 8회 청소년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38명의 아이가 함께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피아노의 발판을 밟기에도 아직 어려워 보였습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첼로가 자기 몸보다 더 커 보였습니다. 그러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은 참으로 대견했습니다. 3년 전에는 조금 어설펐던 아이들이 이제는 자기만의 음악을 표현하며 성장한 모습도 보았습니다. 한 곡의 음악이 무대 위에서 아름답게 울리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연습이 있었습니다. 실수도 있었고, 지루함도 있었고, 다시 시작하는 수고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8년 동안 청소년 음악회를 이끌어온 음악 감독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오늘 아모스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한 말씀을 전합니다. 겉으로는 제사를 드리고, 노래를 부르고, 축제를 지냈지만, 그들의 삶 안에는 정의가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짓밟히고, 약한 이들이 억울함을 당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아모스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겉모양만의 제사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삶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정의와 진실과 자비가 흐르는 삶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한때 사바사바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밀가루 선거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촌지 문화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우리 안에는 정의와 부정이 함께 머물 때가 있습니다. 편의성이라는 이유로, 학연과 지연이라는 이유로, 경제적인 이익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때로 진실을 외면하고 불의와 타협하려 합니다. 그러나 정의와 부정은 함께 살 수 없습니다. 진실과 거짓은 한집에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손에 박힌 가시는 뽑아야 하듯이, 마음과 공동체 안에 박힌 불의와 부정도 뽑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평화가 옵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구원이 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사람을 고쳐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예수님께 마을을 떠나 달라고 청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의 불편한 평화를 흔드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감추고 싶었던 욕망과 두려움을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치유받은 한 사람의 생명보다 자신들의 손해와 불편함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그들 안에도 편견과 이기심과 욕망과 탐욕이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은 이런 불편한 동거를 밝히는 빛입니다. 신앙은 진실과 거짓이 함께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신앙은 정의와 부정이 함께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신앙은 사랑과 미움이 같은 마음 안에서 오래 머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때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우리를 살리는 불편함입니다. 가시를 뽑을 때 아프지만, 뽑아야 상처가 낫습니다. 회개는 아프지만, 회개해야 영혼이 삽니다.

 

청소년 음악회에서 아이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기까지 많은 연습과 기다림이 있었듯이, 우리의 신앙도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대나무가 마디를 통해 곧게 자라듯이, 우리의 삶도 시련과 회개의 마디를 통해 하느님께로 자랍니다. 시베리아의 추위를 견딘 사슴의 녹용이 귀한 약재가 되듯이, 신앙인은 고통과 시련을 통해 더 깊은 은총의 사람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아모스 예언자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그리고 오늘 화답송의 말씀도 마음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곳에 하느님의 평화가 있습니다. 진실이 강물처럼 흐르는 곳에 하느님의 구원이 있습니다.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는 곳에 성령의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 안에 있는 편견과 이기심, 욕망과 탐욕, 시기와 질투를 몰아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 안에 진실과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게 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 길을 걷는 사람이 참으로 하느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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