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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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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하느님의 것? 오늘도 어김없이 유다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냅니다.” 바리사이파와 헤로데 당원은 예수님의 적대자들인 것은 분명하지만, 성격이 전혀 다른 집단의 구성원들입니다. 바리사이파는 유다교의 한 종파에 속한 사람들로서, 지나칠 만큼 율법 준수를 중시했던 집단입니다. 구원은 물론 로마제국으로부터의 해방 역시 율법 준수에 있다고 믿었으며, 사두가이파와는 달리 부활은 물론 천사나 영적 존재도 인정했던 종파입니다. 한편, 헤로데 당원은 문자 그대로 정치적 세력으로서 친(親)로마제국 집단이었으며, 무력 봉기를 통해 로마제국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했던 또 다른 정치세력인 열혈당원과 대립 관계에 있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만을 두고 본다면, 로마제국에 대하여 상반된 입장을 보였던 집단의 구성원들입니다.
결코 어울릴 수 없었던 이 집단의 구성원들이 악행을 위해 결탁 또는 야합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던진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하는 질문은 그야말로 “올무를 씌우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합당하다고 하면 바리사이들이 종교적으로 들고 일어날 것이고, 합당하지 않다고 하면 헤로데 당원들이 정치적으로 밀어붙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위선적인 그들의 속마음을 아시고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하고 이르십니다. 예수님 시대는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복잡했던 시대였습니다. 화폐만 하더라도 세 가지 유형이 사용되었습니다. (데나리온, 콰드란스와 같은) 로마 화폐는 일반적으로 세금 등 공공요금을 납부할 때, (렙톤, 드라크마, 미나. 스타테르, 탈렌트와 같은) 그리스의 화폐는 상거래 때, 그리고 유다 화폐 세켈은 십일조나 헌금 등 종교와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성전에 바칠 때는 유다 화폐로 환전해야 했기에, 성전 앞에는 늘 환전상들이 판을 벌려 놓고 있었으며, 오늘 예수님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하고 이르신 말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현실이었습니다. 어차피 로마 화폐는 로마제국으로 돌아갈 것임을 예고하시면서, 납세의 의무를 넌지시 인정하심과 아울러 적대자들이 쳐놓은 ‘올무’를 지혜롭게 헤쳐나오십니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 드려라” 하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황제의 초상이 새겨 있는 것이 “황제의 것”이라면, 하느님의 초상이 새겨 있는 것이 “하느님의 것”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첫째 권인 창세기의 첫 장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1,27) 하는 기록을 확인합니다. 문맥에 따라 ‘초상’과 ‘모습’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그리스어로는 동일한 용어입니다(eikôn: 현대어로는 ‘이콘’). 결국 인간의 실존은 그 자체로 ‘하느님의 것’인 것입니다.
세상에 살고 있기에 세상사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나, 특히 우리 신앙인들은 늘 ‘하느님의 것’임을 잊지 않음으로써,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님을 의식하고 처신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이러한 모습과 노력으로 우리 이웃들 또한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한 ‘속물’이 되지 않도록, 서로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봉사하는 하루 되기를 바랍니다.
조욱현 신부님_“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질문한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14절)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 한 닢을 보여 주시며 물으신다.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16절) 그들은 “황제의 것”이라고 답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17절). 여기서 하느님의 교훈은 단순한 세금 문제를 넘어 인간 존재와 신앙의 본질에 닿아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창세 1,27) 우리의 생명, 재능, 시간, 마음, 선택 등 모든 것은 하느님께 속하며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구절을 두 세계의 시민권을 대비하는 말씀으로 해석한다. 인간은 세상 속에서 황제와 사회적 의무를 수행할 수 있지만, 최종적 충성은 하느님께 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세상의 의무이며, 하느님께 마음을 바치는 것은 영원한 의무”라는 교훈을 준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인간은 세상과 하느님 사이에서 균형을 찾되, 인간의 재물과 권력도 하느님의 뜻과 사랑 안에서 올바르게 사용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라고 설파한다.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라는 말씀을 통해, 모든 존재가 하느님께 속함을 깨닫고 삶을 봉헌하라고 강조한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매일의 일상과 직무 속에서 하느님 뜻을 찾고 실천하기 위해 삶과 물질을 나누고, 봉사와 사랑에 사용함으로써 하느님께 예물로 올리는 삶, 그리고 인간적 욕망이나 세속적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중심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되, 세상에 속하지 말고, 하느님께 속한 삶을 살라.” 또한 “두 도성은 두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땅의 도성은 하느님을 멸시하기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랑에서, 하느님의 도성은 자신을 멸시하기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랑에서 태어났다.”(De Civitate Dei XIV,28) 즉, 세상에서 우리는 육신과 사회의 필요 속에서 살아가지만, 동시에 마음은 하느님께 속해 있어야 한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요한 17,16)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노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습을 깨닫고,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모든 행동과 선택을 그분의 뜻 안에 두는 것이야말로 참된 신앙과 구원의 길일 것이다.
이병우 신부님_"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르12,17)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자!'
오늘 복음(마르12,13-17)은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에 대한 말씀입니다.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통해 한 방 먹은 유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냅니다. 그들이 와서 예수님을 한껏 치켜 세우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마르12,14ㄷ)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데나리온 동전 한 닢에 새겨져 있는 초상과 글자를 두고, "이 초상과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이르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르12,17)
오늘 복음은 '논쟁사화'입니다. 이 사화의 핵심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선택의 순간에 하느님의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하느님의 뜻이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안에서 세상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느님의 뜻을 따라가는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그렇다보니 많은 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됩니다. 그 순간에 '하느님이, 하느님의 뜻이' 함께 해야 합니다.
내일 실시되는 6.3 지방선거를 오늘 복음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누구를 선택할까?,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의 선택의 기준이 '하느님'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하느님의 뜻을 잘 실천할 후보이고, 누가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가 되게 할 후보인가?'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나와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 하느님의 자녀답게 올바른 선택을 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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