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석은 '검찰이 전두환 등을 단죄하면, 전두환 정권이 제정한 1980년 헌법의 효력에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5공 헌법의 효력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그런 논란이 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고 답변했다.
국민들은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전두환 정권을 단죄하고 그해 10월 29일 헌법개정을 통해 5공 헌법의 효력을 소멸시켰다. 그랬는데도 검찰이 나서서 5공 헌법의 효력 유지를 운운했던 것이다. 국민 앞에서 주제넘는 태도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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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6월 10일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마지막 날인 10일 마무리 발언을 마친 후 장윤석 인사청문특위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 |
| ⓒ 남소연 | |
장윤석은 그 뒤에는 다른 일들로 언론보도에 오르내렸다. 2003년 3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이 '검사와의 대화'에서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말한 다음 달, 장윤석은 강금실 법무부장관의 인사개혁에 반발해 사표를 던졌다. 그 길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이듬해인 2004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고향인 경북 영주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그곳에서 3번 연속 당선됐다.
그는 2015년 3월 5일에는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전시작전통제권 회수'를 주장하며 세종문화회관에서 마크 리퍼트 미국대사를 칼로 공격한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를 현장에서 제압했다. 언론에서는 공수특전단 및 복싱협회장 경력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견제 받지 않는 검찰의 황당한 세계관
전두환 등에 대한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국민의 분노를 감당하지 못한 김영삼 정부는 그해 12월 3일 전두환을 고향인 경남 합천에서 체포해 재판에 넘겼다.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의 주역이라 처벌할 수 없다'고 했던 전두환은 아침 6시 34분경 잠옷 바람으로 체포돼 서울로 끌려갔다. 결국 이렇게 될 일을, 검찰이 황당하고 조악한 논리를 만들어내서 5·18 진상규명을 무산시키려 했던 것이다.
결국 실패하기는 했지만 1995년에 검찰이 보여준 모습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기관이 사실상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게 될 경우에 나라가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 누구의 법적 견제도 받지 않는 검찰이 황당한 세계관과 논리로 전두환에게 면죄부를 발부한 이 사건은 검찰에 대한 견제가 얼마나 긴요한지를 웅변한다. 검찰의 권한을 경찰에 상당부분 넘기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통해 검찰을 견제하는 일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반영하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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