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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신학서원61-62: 코로나19 이후 교회에 관한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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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6-12 ㅣ No.712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61) 코로나19 이후 교회에 관한 생각들 1


한국교회 전체의 회복과 변화와 쇄신 노력 이뤄지고 있나

 

 

- 코로나19로 공동체와 함께하는 미사가 중단됐던 2020년 4월 12일 서울 여의도동본당의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 사실상 코로나 사태는 위기의 원인이라기보다는 단지 교회 안에 누적된 위기와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줬을 뿐이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위기감의 실종

 

우리는 망각의 동물이다. 어쩌면 우리는 잊을 수 있기에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났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익숙했던 일상의 관행으로 돌아간다. 교회의 삶과 신앙의 일상도 다시 예전으로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주일미사 참례자가 70만, 전체 신자 대비 참여율이 11%라는 통계가 얼마 전 교계 언론뿐만 아니라 세속 언론에서도 기사화되었다. 현상에 대한 진단과 위기 징후에 대한 담론들이 잠깐 등장하지만 별다른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상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미래 전망에 대한 예견 속에서 변화와 쇄신을 향한 준비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다. 그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코로나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평가일까. 회복과 변화와 쇄신을 위해 개별 교구 차원에서 어떤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교회 전체 차원에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진단과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가톨릭교회의 교구중심주의가 초래하는 한계일까.

 

신자 증가율과 주일미사 참례율은 코로나 사태와 관계없이 계속 감소하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가 위기를 초래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는 단지 교회 안에 누적된 위기와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줬을 뿐이다. 사실, 자본주의 선진국가에서 신자 고령화와 신자 증가율 감소는 종교의 주요한 특성이다. 변화와 쇄신을 향한 노력이 없다면, 한국교회 역시 서구교회의 전철을 답습할 것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가끔 머리와 마음과 몸의 괴리에서 발생한다. 위기와 파국이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늘 제대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위험에 대한 인지가 현재의 삶이 갖는 편안함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머리로서는 미래의 위기에 대해 인식하지만, 현재의 삶에 길들여진 마음과 몸은 변화를 거부하고 위기의식을 애써 거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또 한편으로 위기가 제도와 체계와 관련이 있는 경우, 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자괴감과 이기주의 성향 때문에, 자기 일에만 몰두하며 공동체적 위기에 대해 눈감고 망각하려는 태도가 많다. 사실, 사람들은 실존적 위기가 다가올 때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개별적인 노력도 하고, 또 평소에 자기 계발을 통해 위기 극복 능력을 키우기도 한다. 문제는 언제나 미래의 위기, 공동체의 위기다.

 

인간은 늘 위기를 돌파해왔고 또 생존을 향한 인간의 집단 지성은 위기를 극복하는 역량을 갖고 있다. 때때로 지나친 위기의식은 오히려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게 할 뿐이다. 우리의 삶에 긍정과 낙관의 힘은 분명 소중하다. 하지만 지나친 긍정과 낙관의 태도가 때때로 위기 극복의 방해 요소로 작동하기도 한다. 물론 비관과 호들갑스러움은 위기 극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위기 극복은 언제나 정확한 인지와 분석, 변화와 쇄신을 향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노력과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 건강한 위기의식은 변화와 쇄신의 시발점이다.

 

 

변화와 쇄신을 위한 담론의 형성

 

교회 공동체는 성령께서 이끄신다. 하지만 성령의 이끄심에 의탁한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성령의 이끄심에 참여한다는 것은 교회의 변화와 쇄신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모든 것을 성령의 섭리에 맡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의 현실과 현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분석이 필요하다. 교회의 현실은 통계와 교회 안에 흐르는 담론들의 추세를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성경과 교리가 교회 담론의 기초이지만, 당대의 교회 담론들은 교구장의 문헌들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교구장의 사목 교서, 성탄·부활 담화문, 주교회의 차원의 담화문들이 교회 담론의 핵심이다. 또 하나의 교회 담론의 장은 신학의 장이다. 당대의 신학자들이 세상의 현실을 읽고 성경과 교리의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상상력의 담론을 산출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방송과 언론은 교구장들의 사목적 선언, 신학자들의 담론, 교회 현실을 살아가는 신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면서 교회의 방향과 비전을 통합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한국교회 안에서 정확한 현실 진단과 교회와 신앙의 미래를 향한 비전을 담고 있는 건강한 사목적, 신학적 담론들을 우리는 발견하고 있는가.

 

 

전례의 변화와 쇄신

 

미사 참례율의 저조함과 장기적 감소는 다양한 요인들을 통해 발생한다. 정직하게 말하면, 신자 대다수의 신앙생활은 주일미사 참례가 전부인 경우가 많다. 미사 참례율이 감소한다는 것은 결국 신자들의 삶에 있어서 신앙생활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의 반영이다. 「한국천주교회 팬데믹 사목백서」를 위한 설문조사에서도 그와 같은 현실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경제적 문제, 심리적 어려움과 육체적 건강 문제, 대인관계의 문제다. 사람들에게 신앙과 신앙생활은 핵심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부차적 차원의 문제다. 어떻게 하면 신앙과 신앙생활이 삶의 핵심으로 자리할 수 있을까.

 

미사 참례율의 감소는 전례 그 자체가 신앙인들에게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자주 말해왔지만, 전례는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전례성사가 갖는 신학적 의미, 즉 보이지 않는 은총과 구원의 힘에 대해서 아름답게 설명할 수 있다. 사실, 교회는 오랫동안 전례가 가진 아름다움과 숨겨진 힘과 시간을 초월하는 장엄함에 관해 선포해왔다. 전례의 경문과 동작들 안에는 풍부한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전례성사의 깊은 의미와 힘을 잊었기 때문에 전례와 신앙생활과 일상의 삶이 잘 연결되지 않았을 수 있다. 전례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가르치는 교육만으로 될 수 있을까. 전례 안에서 그 깊은 의미와 효과와 힘을 실제로 느끼지 못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전례의 인지적 차원보다 상상력과 정서적 차원의 문제다.

 

현실의 전례가 신자들에게 과연 어떤 모습과 의미로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더 필요하다. 변화는 인지적 차원, 정서적 차원, 실천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전례가 사람들을 서로 친밀하게 하고 하느님과의 친교를 정서적으로 체험하게 하는지. 전례가 신자들의 신앙적 가치관을 형성시켜 일상생활 속에서 그 가치관을 실천하는 삶을 살게 하고 있는지. 미사가 하느님과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이라면, 과연 어떻게 하느님의 이야기와 우리들의 이야기가 만나고 있는지. 미사의 가시적 의미와 효과를 위해 성가, 참회 예절, 신자들의 기도, 강론이 어떻게 구성되고 이루어지고 있는지. 전례와 성사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질문을 던지며 그 대답을 찾아 나갈 때, 역동적이고 살아 있는 전례가 될 것이다. [가톨릭신문, 2023년 6월 11일,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62) 코로나19 이후 교회에 관한 생각들 2


모든 신앙인, 삶의 자리에서 사제·예언자·사목자로 살아야 한다

 

 

- 수해 피해를 입은 구례지역 신자 가정의 집들을 찾아 복구 작업을 돕고 있는 광주대교구 재난재해봉사단 단원들. 보편 사제직에 참여하는 모든 신자들은 일상의 삶에서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의 제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가톨릭광주사회복지회 제공

 

 

위기와 민낯, 그리고 기대

 

어려움과 고통을 마주할 때 그의 본질을 알 수 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위기에 처할 때 감춰진 속내와 민낯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 사태는 교회의 속살과 맨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한국천주교회 코로나 팬데믹 사목백서」를 위한 설문조사의 결과는 교회와 신앙의 현실을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설문조사 내용을 보면 몇 개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첫째, 세속화 여정 속에서 종교가 문화의 한 요소로 전락한 것처럼, 사람들에게 신앙은 경제적 삶과 건강, 다양한 실존적 문제들보다 후순위에 자리하고 있다. 신앙인들의 실제 삶에서 신앙과 신앙생활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둘째, 신앙에 대한 당위적 인식과 실제 현실에서의 실천은 언제나 괴리가 깊다. 코로나 사태로 미사 참여, 기도, 성경공부 등 신앙 행위의 소중함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신자들이 많아졌다.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것들은 부재를 통해서 그 소중함과 의미를 다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머리로 그 중요성과 소중함을 인지하는 것과 실제 현실에서 몸으로 그것을 다시 반복하는 것은 다르다. 관행적인 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오는 몸의 편안함에 조금씩 길들여져 간다.

 

셋째, 개체적이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오프라인 모임은 점점 약화되고 온라인 행위들이 강화되는 추세다. 코로나 사태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촉발했다. 본당의 경계를 넘어, 인지도가 높고 대중적 흡입력이 있는 강론과 강의에 대한 쏠림 현상이 더 심각해졌다. 가톨릭교회의 핵심 작동원리인 속지주의가 위기에 빠져있다는 의미다.

 

넷째, 한국가톨릭교회의 전반적 이미지는 나쁘지 않지만, 젊은 세대일수록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하다. 미래세대에게 교회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이며 부유하고 폐쇄적인 이미지로 비치고 있다. 다섯째, 교회에 대한 세속의 기대와 요청은 사회적 약자와 사회적 통합을 향한 종교 공공성의 강화이다. 세속화 시대에 역설적으로 종교에 대한 기대는 여전하다. 종교가 사회 안의 상식적 구성원으로 존재하기를 요청하며 종교의 공적 역할을 통해 정신적·영적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대안적 가치의 원천이 되기를 사람들은 희망하고 있다.(박진규 「미디어, 종교로 상상하다」 참조)

 

 

신앙생활의 총체성과 능동성

 

코로나 사태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즉 성당이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작동되는 신앙생활의 모습을 다시 성찰하게 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주일미사 참례와 성당이라는 공간에서 여러 활동을 하는 것으로 좁혀서 이해해왔다. 코로나 사태는 본당이라는 공간과 장소를 중심으로 수행되어왔던 신앙생활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기존의 본당 생활을 통해 신자들은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성숙시키고 영성을 성장시키는 교육과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신앙생활을 한 신자들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위기에 대응할 신앙의 힘을 키우지 못했다는 뜻이다. 자율적이고 능동적이지 못한 신앙은 위기의 순간에 그 한계와 위험성을 드러낸다. 코로나 사태의 경험을 통해 신자들은 자기 삶의 자리에서 신앙 성숙과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보면 신앙생활은 네 가지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교리와 신앙 공부, 전례와 성사, 생활과 윤리, 기도와 영성 영역이다. 물론 전례와 성사 생활이 모든 신앙생활의 토대이며 정점이다. 또 이 네 영역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상호의존적이다. 하지만 전례와 성사 생활이 제한되는 상황이라면 다른 영역들의 활성화를 통해 신앙생활의 총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성경과 교회 문헌과 영성 서적들의 읽기를 통해 공부하는 신앙생활을 누릴 수 있다. 일상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복음적 가치의 실천을 통해 삶의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혼자서, 가족들끼리, 또는 가까운 이웃들과 함께 기도와 영성 생활에 얼마든지 몰두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는 신앙의 총체성에 대해 다시 성찰하게 했다.

 

 

보편 사제직 수행으로서 신앙생활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그리스도의 삼중직 수행에 보편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 수행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사실, 보편 사제직이 어떻게 수행되는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신학적 정의가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다. 일반적 정의에 따르면, 보편 사제직은 성사 전례에의 능동적 참여, 기도와 극기와 사랑의 실천을 통한 일상의 사제직 수행을 통해 이루어진다.(「교회헌장」 10항)

 

코로나 사태는 보편 사제직에 대한 확장된 이해와 상상을 요청한다. 가족끼리, 아니면 가까운 이웃들이 모여서, 함께 성경 말씀을 듣고 식사의 친교를 나누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미사의 정신을 영적으로 수행하는 것일 수 있다. 일상의 예식화와 삶의 미사화에 대한 폭넓은 상상이 필요하다. 물론 전례와 성사에 대한 이러한 확장된 이해가 성직자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공동체가 함께 하는 미사의 중요성을 약화시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보편 사제직에 대한 확장된 이해가 직무 사제직의 의미와 중요성을 더 깊고 풍요롭게 할 것이다. 세례받은 신자들이 자신의 보편 사제직을 수행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이론화 작업이 절실히 요청된다.

 

세례받은 모든 신앙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참여한다는 것을 교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교리는 언제나 삶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의 제사를 드릴 수 있다. 보편 사제직에 참여하는 모든 신자들은 세상 안에서 자신의 사제직을 수행해야 한다. 사목의 진정한 의미는 관리와 통치가 아니라 돌봄과 헌신이다. 신앙인은 이웃의 약자들을 돌보는 세상 속의 사목자(왕직 수행자)여야 한다. 혼자서 또는 여럿이 더불어 성경을 읽고 낭독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삶의 이야기와 사연들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상 속에서 예언직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우리 신앙인 모두가 자기 삶의 자리에서 사제로서 예언자로서 사목자로서 살아야 한다.

 

신자들의 그리스도 삼중직 참여는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 교회의 운영과 통치에도 신자들의 참여는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교회법적으로는, 교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통치와 운영의 몫은 성직자들에게 주어져 있다. 교회 문화와 분위기 역시 성직주의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신자들이 의사결정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복음의 기쁨」 102항) 하지만 실제 본당의 현장에서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다. 신자들과 더불어 시노달리타스의 정신으로 본당을 운영할 때, 본당은 더 활기있고 생동감 넘친다는 사실을 말이다. [가톨릭신문, 2023년 6월 25일,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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