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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순교자들의 이야기2: 순교자 남 엘리사벳의 딸 이국후(엘리사벳, 36세)와 데레사(2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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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9-19 ㅣ No.2129

[순교자들의 이야기] (2) 순교자 남 엘리사벳의 딸 이국후(엘리사벳, 36세)와 데레사(27세)

 

 

남 엘리사벳과 이 프란치스코의 장녀인 이국후(엘리사벳)는 어려서부터 성정이 순량하여 바느질과 길쌈과 기도와 그 밖의 예절에 부지런히 힘썼다. 그녀는 매번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여 ‘몸이 편하면 제자의 본직(本職)이 아니라’ 하고, 혹 가시나무를 머리에 얹고 방아도 찧으며, 잠을 적게 잤다. 밤중이라도 잠들기 전에는 성경과 성인전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박서산(朴西山)의 아들이 와서 혼인을 청하자, 부친이 “천주교를 믿는 이는 이단의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다.”고 하자, 그가 “내가 내외같고, 노복이 족하니, 어찌 몸에 해로운 일을 시키리요? 단정코 언약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말을 믿고 결혼을 허락했다. 결혼한 지 1년 후에 시집을 보냈다. 가을철이 되자 사신(邪神)을 공경할 새 홀연 엄명이 지극하여 집안이 요란하고 불화가 생길 모양이어서, 남편이 잠잠히 “아버지의 명이 이러하니 받들고 순종함만 같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이에 마지못하여 순종하였다. 음식을 여러 가지로 장만하여 산으로 올라갈 때 시아버지가 오가는 길의 중간에서 몸에 한기를 느껴 겨우 다녀왔는데, 다녀온 지 6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에 ‘주명(主命)을 어기거늘 그른 명에 굴한 연고인가?’라고 하여 애통해 하며 3년을 지내면서, 밤낮으로 하느님과 성모님께 ‘버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지냈다. 전에 와서 성사를 받았던 황문로의 자식이 배교한 후 장교(將校)를 데리고 체포하러 왔고 남편과 함께 체포되어 갇혔다. 충주에서 문초를 당할 때, 자원으로 죽을죄를 인정하고, 남편의 원통하고 억울함으로 하소연하는 글을 바쳐 감옥에서 남편을 내보냈다.

 

차녀인 이 데레사는 성정이 순직(順直)하여 다른 아이들과 다툼이 없었다. 8살부터 어른들이 농담으로 시집을 보낸다고 하면 정색하고 중책(重責) 하는 말이 가히 성숙한 사람이라도 부끄러움을 머금을 정도였다. 차차 성인의 행실을 듣고 보면서, 매양 그 마음에 깊이 새겨 기록함이 말과 행동할 때에 나타났다. 10여세 때 우연히 “낙상(落傷) 하였다.”고 하면서 한쪽 다리를 절었다. 혼인할 나이가 되자 원주 홍 판서 집에서 혼담이 오갔는데, 며칠 동안을 신음하여 앓았다. 필담으로 어머니에게 “병든 이후로 다시 말을 못 하겠사오니, 불초한 여식이 부모께 근심만 끼치나이다.”라고 하였다. 벙어리가 된 지 한 해가 조금 넘어 출가한 언니(이국후 엘리사벳)가 집에 왔다가 돌아갈 때, 가마 문 앞에 와서 편지 한 통을 주었다. 편지에는 ‘형님은 이왕 후손을 전할 처지를 당하였으니, 안심지본(安心之本)하고 주님의 명을 받들고 순종하여 착실히 봉행하며, 동생을 위하여 극진히 기도해 달라. 본래 성모님의 행적을 따르고자 하여 (동정 생활에 뜻을 정한 지 오래다.’라는 내용이었다. 어머니는 둘째 딸이 온갖 방법으로 수정(守貞)할 뜻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매번 새 옷을 싫어하고 헌 옷을 좋아하며, 외모를 꾸미지 않았다. 처음 말 못 한다고 할 때에 고해성사도 필적(筆跡)으로 하였다. 선교사가 여러 번 걱정하기에 성사를 받고 어머니의 근심을 위로하고자 은근히 말을 하기도 하였으나, 죽을 때까지 입 밖에 말을 내지 아니하였다. 하지만 부친이 처음 체포될 때, “어찌 이런 은혜를 바꾸어 주지 아니하시는고?”라고 절통(切痛)하였다.

 

[2022년 9월 18일(다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원주주보 들빛 3면, 여진천 폰시아노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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