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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당 건축 이야기24: 갈라 플라키디아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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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6-25 ㅣ No.970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24) 갈라 플라키디아 영묘


어둠 속에서 찬연히 빛나는 모자이크로 천장과 벽면 장식

 

 

갈라 플라키디아 영묘, 돔과 펜덴티브. 출처=The Byzantine Legacy

 

 

마지막 로마 황제의 딸 갈라 플라키디아

 

라벤나(Ravenna)는 1300년 전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품고 있는 꿈의 도시다. 이탈리아반도 동쪽 아드리아해에 면한 항구 도시 라벤나는 한때 아우구투스 해군의 절반이 주둔할 정도로 고대 로마의 중요한 항구였다. 라벤나는 5세기에는 서로마 제국의 중심지였고, 8세기까지는 비잔틴 제국의 중심지였다. 라벤나는 5, 6세기의 그리스도교와 이탈리아 문화의 중심지이자 동방 그리스도교 세계와 이탈리아를 잇는 창구였다.

 

작은 도시 라벤나에는 5세기와 6세기에 건설된 초기 그리스도교의 독특한 기념물 8개가 거의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다. 특히 내부 공간과 그것을 장식한 모자이크화는 모두 그레코로만의 전통과 그리스도교의 도상학(iconography)이 절묘하게 결합해 있다. 곧 갈라 플라키디아 영묘(Mausoleum of Galla Placidia, 425~450년), 정교회 세례당(Orthodox Baptistery), 산타폴리나레 누오보대성전(Basilica of Sant‘Apollinare Nuovo), 아리우스파 세례당(Arian Baptistery), 아르키에피스코팔 경당(Archiepiscopal Chapel), 테오도릭(Theodoric) 영묘, 산비탈레 대성전(Basilica of San Vitale), 그리고 클라세의 산타폴리나레 대성전(Basilica di Santa Appolinare in Classe) 등이 그것이다.

 

갈라 플라키디아(Galla Placidia, 389~450)는 마지막 로마 황제인 테오도시우스의 딸이었다. 그러나 410년 서고트족이 로마를 약탈할 때 인질로 끌려가 고트족의 왕 아타울프와 결혼했다. 이듬해 남편이 죽자 417년 서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3세와 재혼한 후 발렌티니아누스 3세를 낳았다. 425년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섭정을 하였고, 서로마 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라벤나로 옮겼다. 참 파란만장한 여인이다.

 

갈라 플라키디아는 교회의 위대하고 독실한 후원자이자 라벤나의 주교 성 베드로 크리솔로구스(Chrysologus)의 긴밀한 협력자였다. 로마, 예루살렘, 라벤나에 많은 성당을 건설했으며, 5세기 초 라벤나에 거주하면서 이 도시를 그리스도교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중의 하나가 황궁을 위한 성 십자가 성당(Santa Croce)이었다. 그 성당의 문랑에는 성 라우렌시오에게 바쳐졌을 십자형의 경당 또는 기도소가 인접해 있었는데, 그것이 지금의 갈라 플라키디아 영묘가 되었다. 이후 전면에 도로가 건설되면서 문랑은 파괴되었고, 대칭을 이루고 있던 같은 형식의 두 건물 중 하나는 사라지고 다른 하나인 갈라 플라키디아 영묘가 독립한 건물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황후는 로마에서 죽었다. 그래서 옛 성 베드로 대성전에 있던 호노리우스 영묘에 함께 묻혔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도 13세기부터 그녀가 이 건물에 묻혔다고 잘못 알고 있었고, 그런 탓에 이 건물을 여전히 그녀가 자신을 위해 마련한 ‘갈라 플라키디아 영묘’라 부르고 있다. 따라서 이 건물은 ‘이른바 갈라 플라키디아 영묘’라고 불러야 맞는 표현이다.

 

- 갈라 플라키디아 영묘, 입구 위의 반원형 벽. 출처=The Byzantine Legacy

 

 

라틴십자형 평면 중앙에 사각형 탑 세워

 

십자형 평면 중앙에 기와지붕을 얹은 사각형의 탑을 세운 작고 단순한 건물이다. 십자형 팔 세 개는 10.25m인데, 입구 부분만 12.5m로 조금 긴 라틴십자 평면이다. 밖에서 보면 외관은 그야말로 작은 벽돌 구조 덩어리처럼 보인다. 더구나 재활용한 고대 로마의 벽돌을 좁은 줄눈으로 쌓은 데다가 외벽도 벽으로 막힌 세 아치로 장식하고 있어서 전체는 무표정하다 할 정도로 간소하다. 건물의 기초가 분명하지 않은데, 이는 라벤나의 지반이 약해서 처음보다 1.5m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래의 외관은 지금보다 조금 더 높았다.

 

십자형 평면의 사각형 탑의 내부에는 펜텐티브 위에 돔을 얹었고, 네 개의 수랑은 원통 볼트가 덮었다. 높은 돔과 낮은 볼트 사이에는 높이의 차이가 커서 넓은 벽이 생겼다. 외벽에는 좁은 슬릿 창을 두었고, 사각형 탑에는 약간 큰 창과 수랑(袖廊)의 지붕 바로 밑에 창이 있는데 모두 앨러배스터(alabaster)로 막았다. 이렇게 해서 돔 바로 밑과 볼트의 끝 부분에 있는 작은 창에서만 빛이 들어온다. 이렇게 창이 작으니 내부는 당연히 어둡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동공이 열리면 내부는 찬연히 빛나는 세계가 서서히 눈앞에 나타난다. 높이 2.5m의 벽은 대리석 무늬로 덮여있지만, 그 위의 볼트와 아치로 이루어진 천장은 모두 세심하게 만들어진 모자이크로 채워져 있다. 그야말로 내부 전체가 모자이크로 덮여 있는데, 이렇게 원래의 모자이크가 완벽하고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예를 보기 힘들다. 금색이 유리 조각 사이에 끼어 있고, 각석 조각은 벽에서 약간 떠 있다. 조각들이 벽에 붙어 납작하게 붙어있지 않고 미세하게 울퉁불퉁해서, 모자이크가 희미하게 흔들리는 촛불 빛에 반사되면 저 좁은 공간은 전혀 다른 세계가 되고 만다. 따라서 이런 곳에서는 빛을 일정하게 비추는 전등이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천장 돔은 짙은 남색 모자이크로 덮여 있다. 중심에는 황금 십자가가 빛나고 있고, 그 주위는 무수한 별(570개라고 한다)이 동심원을 이루며 빛나고 있다. 네 모퉁이의 펜덴티브에는 네 복음사가를 상징하는 동물 등이 그려져 있다. 작은 공간인데도 밑에서 올려다보면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깊은 하늘을 향해 마치 내가 떠오를 것만 같다.

 

- 갈라 플라키디아 영묘, 왼쪽 수랑의 반원형 벽. 출처=The Byzantine Legacy

 

 

죽음에 대한 영생의 승리 표현한 모자이크

 

입구를 지나면 바로 대면하게 되는 수랑(袖廊)의 반원 벽에는 한 성인이 십자가와 책을 들고 있다. 그는 작은 창문 바로 밑에 있는 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그 불에는 바퀴가 달린 석쇠가 놓여 있다. 이 성인은 누구인가? 그는 체포당해 온갖 고문을 받다가 뜨거운 석쇠 위에 눕힌 채로 화형당한 순교자 성 라우렌시오라고 추정한다. 그는 석쇠 위에서 살이 익어가자 “이쪽은 다 익었으니 뒤집어라”라고 말한 후 한참 뒤에 “이제 다 익었으니 뜯어먹어라”라고 당당히 말했다고 한다. 왼쪽에는 완전히 열린 장에 네 복음서가 들어있다. 그것과 마주한 입구 위의 벽에는 착한 목자의 모습을 한 젊은 그리스도께서 여섯 마리의 양에 둘러싸여 앉아 계시다.

 

네 주위에서 펜덴티브의 윤곽을 이루는 아치는 물결 모양의 띠가 붉게 칠해져 있고, 그 아치 안의 네 개의 벽에는 각각 로마 사람들이 입던 하얀 튜닉(tunic)을 입은 두 사도가 마주 보고 서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고창에서는 앨러배스터의 얇은 대리석 판을 통해 부드러운 빛이 들어오고, 이 창의 바로 밑에는 물을 마시는 비둘기 두 마리가 그려져 있다.

 

또 다른 벽은 고대 로마의 무늬를 떠올리게 하지만, 아칸서스 잎과 성체성사를 나타내는 포도 덩굴을 그린 장식 무늬로 덮여 있다. 그뿐만 아니라 좌우 수랑의 반원형 벽에는 무성한 아칸서스 잎에 감싸인 채 샘에서 물을 마시는 두 마리의 사슴이 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시편 42,2) 모두 죽음에 대한 영생의 승리를 나타낸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6월 18일, 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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