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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한국교회와 시노달리타스8-9: 시노달리타스의 전형으로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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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6-26 ㅣ No.716

[한국교회와 시노달리타스] (8) 시노달리타스의 전형으로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상)


공의회, 시대의 도전 경청하고 교회 사명 새롭게 인식한 사건

 

 

1962년 10월 11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미사. 공의회는 교회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며 평신도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CNS 자료사진

 

 

시노달리타스는 한국교회의 쇄신을 위해 찾아온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의 주제를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로 선정하고 전 세계적으로 시노드 과정에 들어갔지만, 한국의 각 교구별 시노드 이후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관심은 많이 퇴색된 듯하다. 시노달리타스의 본격적 실천은 2024년 정기총회 2회기 이후가 될 것이지만, 총회가 끝나고 최종문헌이 반포된다고 지금의 현실이 변할지는 의문이다. 이는 오늘날 시노달리타스가 대두되고 있는 교회의 현실과 시대적 도전에 대한 위기의식의 부재가 원인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노달리타스의 전형인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새롭게 살피고 우리 것으로 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과제다.

 

 

재조명되어야 할 공의회 정신

 

공의회 정신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현시대의 도전 앞에서 교회의 선교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고 회개와 쇄신을 통해 새로운 방법으로 전 구성원이 능동적으로 교회 사명에 투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대의 도전에 대한 진지한 경청이자 교회의 선교 사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공의회는 문헌 이전에 하나의 ‘역사적이며 영적인 사건’이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며, 역사의 매 순간 새롭게 일어나야 할 사건이다. 공의회는 교회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며 평신도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특히 그리스도교 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다원적이고 급변하는 세상과 대화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투신한 사건이었다. 이는 한 사람의 생각이나 한순간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오랜 시간의 준비와 영적 싸움과 각고의 노력이 가져온 결과다. 여기에는 교회가 새로운 세상의 도전에 응답하기를 바라는 하느님 백성의 기대와 희망도 함께 작용하였다.

 

교회는 근대 계몽주의의 도전 앞에서 오랫동안 피상적으로 혹은 권위주의적으로 대응해 오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기점으로 전적인 변화와 쇄신을 도모했다. 그동안의 경직된 호교론적 자세, 곧 방어적이고 소극적이며 대화를 회피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복음 진리가 모든 시대의 물음에 답한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벽을 허물고 세상과의 대화에 나섰으며, 세상 사람들의 문제와 어려움, 고민과 갈등 등을 함께 고민하며 복음 안에서 그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교회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인식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교회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작용하였다. 공의회는 교회를 하느님 나라에 대한 약속된 표지라는 종말론적 전망에서 이해하였고, 교회 그 자체로 존재 의의를 지닌 것이 아니라 봉사하기 위해 존재함을 인식하였다. 교회는 완성된 실체가 아닌,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인류와 함께 걷는 여정 중에 있는 순례자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교회와 세상의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공의회는 교회를 세상을 ‘향한’ 교회에서 세상 ‘안’의 교회로, 세상 안에서 세상과는 다른 삶을 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존재로 인식하였다. 세상을 향해 가르치고 계도하는 자세가 아닌,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의 고민과 갈등, 어려움과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며, 이에 대한 답을 함께 찾고자 하였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들과 삶을 나누고 신앙의 증언을 통해 봉사함으로써 어두운 세상에 구원의 희망을 전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 1962년 10월 11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미사. CNS 자료사진

 

 

육화하는 진리

 

이러한 변화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간 문제에 대해 궁극적으로 답한다는 확신, 신앙 진리를 동시대 사람들에게 믿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전하기 위해, 곧 소통하기 위해 새로운 신앙 언어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통해 가능했다.

 

또한 여기에는 그리스도 신앙 진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자리하였다. 그리스도 신앙 진리는 역사와 동떨어진 채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간 역사 안에, 그리고 삶 안에 육화하는 진리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 삶이나 문화와 동떨어진 채 존재하는 것이 아닌, 삶과 문화를 관통하며 자신을 관철한다. 교회의 사명은 바로, 이 복음을 인간 삶의 모든 분야를 관통하는 진리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시대 사람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물음과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에 대한 답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세상과 교회를 성속이원론이 아닌 신학적 눈으로 새롭게 바라본 것이며, 이에 따라 평신도의 세속성이 구원의 역사에서 갖는 위상을 새롭게 인식한 것이다. 이는 평신도만이 아닌 교회 자신이 갖는 세속성이기도 하다.

 

 

요청되는 회개

 

공의회를 통한 개방과 대화의 자세는 저절로 행해진 것이 아니라 교회의 내적, 외적 회개의 결과였다. 여기서 회개란 자족하는 교회에서 탈피하고, 세상 속에서 자신의 선교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다.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이 바로 세상 속임을 깨닫고 자기 자리를 떠나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시노드 정신을 실현하는 교회는 자기 것을 고수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새로운 내일을 모색하는 교회다. 세상을 향해 가르치고 훈계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세상 사람들의 삶에서 출발하여, 그 안에서 그들이 겪는 고통과 괴로움, 어려움과 문제들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가는 교회다.

 

교회가 공의회를 통해 전적으로 개방과 대화의 자세로 돌아서기까지 각고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은 공의회 개최와 함께 단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서서히 준비되고 전개된 변화였으며, 여러 반대와 회의를 넘어야 하는 영적 싸움이기도 했다. 이는 공의회 정신을 한국교회의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준비, 각고의 노력, 시간, 그리고 회개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시노드 정신을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한국교회는 이러한 영적 여정에서 어디쯤 와 있는가? 세상 속에 현존하는 교회로서 자기 자신을 실현하고 있나? 한국인의 삶, 거기서 제기되는 문제, 갈등 등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두고 함께 고민하며 그리스도의 복음과 신앙을 삶으로 증언하고자 하는가? 모든 이가 선교 사명의 주역이라는 인식, 세상 속에서 선교하는 제자로 파견되어 살아가는 신자로서의 신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가? 하느님 백성 전체가 함께 던져야 할 질문들이다. [가톨릭신문, 2023년 6월 25일, 한민택 바오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한국교회와 시노달리타스] (9) 시노달리타스의 전형으로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하)


선교적 쇄신과 변화 바탕으로 교회 사명 새롭게 인식

 

 

- 1962년 10월 2일 로마에서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 마지막 사전 모임에 참석한 주교단. 공의회는 교회가 선교 사명을 위해 세상 안으로 투신하도록 한 사건이었다. 네덜란드 국립문서보관소 자료사진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교적 쇄신의 흐름에서, 시노달리타스는 현대 세계 안에서 가톨릭교회의 선교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고 실천하기 위한 쇄신과 개혁의 원동력이다. 여기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주목하는 이유는, 공의회가 변화하는 시대 안에서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을 새롭기 인식하고자 했던 사건이며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가 복음의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시노달리타스는 바로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을 새롭게 계승하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시노달리타스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한국교회 상황과 매우 닮아 있는 공의회 당시의 교회 상황에 주목해야 하며, 쇄신과 개혁을 가능케 했던 공의회 정신에서 영감을 얻을 필요가 있다.

 

 

변화된 세상에 대한 인식과 교회의 자기반성

 

공의회가 현대화와 쇄신, 개방과 대화를 핵심 기치로 내걸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변화된 세상에 대한 인식과 그에 따른 자기반성이 출발점이었다. 공의회 이전의 교회는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폐쇄된 교회였다. 세상의 변화에 닫힌 채 자족하려는 교회였으며, 시대적 도전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교회였다. 그러나 그러한 자세는 교회에 맡겨진 선교 사명 수행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교회 내에 팽배하였다. 과거의 전통적 신학 방법에 바탕을 둔 복음 선포가 더는 동시대 사람들의 삶과 사고방식에 부합하지 않으며, 과거의 획일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교회 통치로는 다원화된 세상 속에서 선교 사명 수행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었다.

 

공의회가 가져온 ‘선교적 쇄신’은 이러한 폐쇄적 자세에서 벗어나, 문을 열고 세상과 대화하며, 세상 안으로 들어가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하는 하느님 백성’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과거의 그리스도교 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탈그리스도교적이고 다원적인 세상 속에서 제기되는 사목적 도전에 진지하게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상황을 시대적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내적 쇄신을 기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살을 깎는 자기반성과 예언자적인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를 향한 사랑이 있기에 가능했다. 교회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참으로 교회다운 교회를 찾아가도록 했던 것이다.

 

 

교회의 선교 사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

 

공의회의 정신을 창의적이고 충실하게 계승하기 위해, 공의회를 통해 일어난 교회의 선교적 쇄신과 변화가 교회가 믿고 고백하는 신앙 내용에 대한 인식에서 기인하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의회는 신앙의 핵심 내용인 계시 사건을 하느님께서 인류 전체와 함께하시는 소통으로, 인류의 역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며 역사를 변화시키는 구원 업적으로 인식하였다. 그것은 인간 역사 안에 현존하시며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체험이며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대에도 활발히 활동하시며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성령께 대한 강한 체험과 확신이 있었기에, 오순절의 사도들처럼 담대하게 세상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공의회가 새롭게 발견한 계시 진리란 역사 안에 육화하는 진리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진리다. 살아있는 인간 주체와 소통하고, 소통을 통해 인간의 역사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리다. 그 진리란 한 마디로 세상을 향한 진리로, 새로운 표현과 사고방식을 통해 소통되어야 할 진리다.

 

이러한 재발견은 교회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였다. 교회는 모든 것을 갖춘, 모든 물음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의미에서 ‘완전한 사회’가 아니다. 교회는 계시 진리가 역사와 세상 안에 육화하도록, 그로써 세상을 변화시키고 종말론적 완성으로 이끄시도록 봉사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교회가 있어야 할 곳은 세상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이며, 바로 거기서 하느님 나라 복음을 현실성 있게, 곧 세상 사람들의 언어와 문화, 사고방식, 체험의 영역에서 증언해야 하는 것이다.

 

 

새롭게 하느님을 찾는 여정으로

 

시노달리타스의 수용이 개념이나 제도적 측면에만 머무르거나 의회 민주주의적 협의 절차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신앙의 범주에 속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의회는 이 점에서 매우 중요한 영감을 준다. 공의회는 역사 안에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찾고, 그분께 대한 신앙을 새롭게 고백하며, 교회가 선교 사명을 위해 세상 안으로 투신하도록 한 사건이었다. 시노달리타스 역시 궁극적으로는 새롭게 하느님을 찾고 그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며 선교 사명을 위해 투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한국교회가 하느님을 찾는 신앙 여정을 새롭게 출발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느님을 새롭게 찾는 여정을 떠날 수 있을까? 그 답은 세상 사람들의 삶 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삶을 나누는 것에 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비천한 이들, 보잘것없는 이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셨다. 우리가 하느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길은 바로 가장 가난하고 비천하며 버림받은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에게 하느님 자비를 전하며 그들과 운명을 같이 하고 구원의 길을 찾아 함께 걷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시노달리타스를 통해 추구하는 선교적 쇄신의 기준은 우리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느냐에 있을 것이다. 교회의 진정한 미래와 희망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시대에 희망을 주고 신뢰를 줄 수 있는 교회란 예수님을 닮은 교회,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온 예수님과 더 일치하여,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그들을 섬기고 그들 안에 하느님 자녀로서의 고귀함과 거룩함, 품위를 드높이는 교회일 것이다. 이를 위해 가난하고 고통받고 헐벗고 굶주리는 이들에게 자극받지 못하는 우리의 무뎌진 마음을 먼저 고백해야 할 것이다.

 

시노달리타스의 전형으로서 공의회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한편으로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사목의 도전 앞에서 눈을 가리지 않고 복음 선포의 시급함을 인식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우리 자신이 선교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파견된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복음을 선포하는 이의 발걸음은 늘 즐겁지만은 않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처한 상황의 절박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복음 선포의 시급함을 아는 사람은, 착한 사마리아사람처럼 재난 상황에 빠진 사람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즉시 가서 상처를 싸매줄 것이다. 오늘의 한국인은 그러한 가톨릭교회를 만나고 싶어 한다. 시노달리타스는 바로 이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가톨릭신문, 2023년 7월 2일, 한민택 바오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 본 기획은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와 가톨릭신문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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