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하느님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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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7-12 ㅣ No.817

[레지오 영성] 하느님 앞에

 

 

“거룩한 것이 썩으면 더 고약한 악취가 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래 더러운 것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항상 깨끗해야만 하는 것이 더러워지면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불쾌해합니다. 요즘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그렇지요. ‘믿는 사람들이 더 고약하더라’라는 세간의 질타는 신앙인들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심각하게 무너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지 못하고 썩은 악취를 풍기기 때문이겠지요.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의 삶은 거룩하신 하느님을 닮아 가는 성화의 여정입니다. 신앙인은 세상에 속하였으나 끊임없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며 살아가고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을 자처하고 신앙의 연륜을 내세우며 자족하는 자신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으며 어떤 향기를 풍기고 있는지 숙연히 생각해 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려져 불에 던져지고 썩은 열매는 가려내어 버려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우리가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은 열매’를 맺으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실 것이다.”(요한 15,16)

 

 

썩지 않을 열매

 

신앙인의 거룩함을 더럽히는 것, 그래서 거룩한 향기가 아니라 악취를 풍기고 다른 신앙인들을 썩게 만드는 경우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신앙인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하지 못하거나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렸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인으로서 처신하고 있지만 바른 지향과 원의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입니다. 외적으로 신앙인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신앙생활도 문제이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내면에 숨겨진 위선적인 신앙생활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스스로 나팔을 부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숨은 것도 보시는 ‘하느님 앞에’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태 6,1-3 참조)

 

성경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렇게 해서 좋은 평판과 인정을 받기 위해 경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서 ‘위선자’라고 말합니다. 위선자를 뜻하는 단어 ‘히포크리타’(hypocrita)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으려고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라는 뜻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잘하면 박수를 받을 수 있지만, 그것은 연기일 뿐 자기 자신이 아닙니다.

 

나를 만드시고 사랑으로 보살피시는 하느님께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당신 앞에 나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자신의 나약함으로 인해 부서지고, 함께 사는 사람들의 허약함과 인생의 고난 속에서 억눌린 영혼을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산다는 말은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지어내는 영적 위선이나 자신을 내세우는 영적 허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좋은 평가와 인정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것일 때 신앙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이지요.

 

 

사람 앞에

 

성경에서 말하는 ‘썩은 열매’는 위선자를 두고 한 말입니다. 위선자는 하느님 보다는 사람을, 하느님의 뜻 보다는 자신의 만족을 앞에 두는 신앙인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위선적인 신앙인들에게 일갈하십니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마태 7,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썩지 않을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신앙인으로서 지녀야 할 근본적인 태도를 분명하게 갖추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믿음의 근본적인 자세는 ‘하느님 앞에’ 사는 사람입니다. 라틴어로 ‘코람 데오(Coram Deo)’라고 하는 이 신앙의 태도는 썩지 않을 믿음의 열매를 맺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신앙의 기본자세입니다.

 

신앙인의 삶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원인은 ‘하느님 앞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 앞에(coram hominibus)’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으로 만난 사람들, 신앙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 인간적인 친목과 세속적인 의리에 얽혀 지낸다면 하느님보다는 사람들 앞에 사는 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성화를 위해 만나고 모이는 레지오 마리애도 성화를 위한 노력보다는 육적인 욕망을 채우려는 세속적인 만남에 머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싸구려 연대감으로 얽힌 신심단체나 신앙활동은 썩은 열매처럼 악취를 풍기고 다른 열매들을 썩게 만듭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이미 그런 모습은 신앙 공동체 안에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런 신앙인들을 향하여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그 좋은 것이 모욕을 받지 않게 하십시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그리스도를 이렇게 섬기는 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고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니 평화와 서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에 힘을 쏟읍시다.”(로마 14,16-19)

 

 

나를 눈여겨 보시는 하느님 앞에

 

예수님은 철저히 ‘코람 데오(Coram Deo)’의 삶을 사셨고, 당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부모가 어린 자녀를 눈여겨보듯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하느님 앞에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눈길을 의식합니다. 성화의 길은 하느님의 눈길 아래 머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내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하느님을 의식하며, 그분을 통해 시작하고 마칠 때 하느님 앞에 사는 신앙의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게 되는 것이겠지요.

 

성화의 소명을 충실히 살아가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하느님 앞에’ 사는 신앙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고 하느님의 사랑을 열매 맺기를 기원합니다.

 

“내 말을 잘 들으십시오. 육체의 욕정을 채우려 하지 말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은 육정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갈라 5,16;17)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7월호, 김영수 헨리코 신부(전주교구 치명자산 성지 평화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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